청와대가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방안을 담은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했다.

선거연령 하향 요구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해왔고 국회에서도 심도 있게 논의됐지만 선거법 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내용을 대통령 개헌안에 반영하는 파격을 선택한 것이다.

선거연령 18세 하향 파격

청와대는 22일 춘추관에서 선거제도 및 정부형태 내용과 관련한 대통령 개헌안 3차 발표를 하면서 “헌법으로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어 청소년의 선거권을 헌법적으로 보장했다. 이를 통해 청소년이 그들의 삶과 직결된 교육, 노동 등의 영역에서 자신의 의사를 공적으로 표현하고 반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선거연령 하향은 시대적 요구라고 밝혔다. 더 이상 국회의 논의 상태로 방치할 수 없었다는 뜻도 내비쳤다.

조국 민정수석은 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만 18세 또는 그보다 낮은 연령부터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 현행법상 18세는 자신의 의사대로 취업과 결혼을 할 수 있고, 8급 이하의 공무원이 될 수 있으며, 병역과 납세의무도 지는 나이라는 점, 청소년은 광주학생운동부터 4·19혁명, 부마항쟁, 그리고 촛불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청소년의 정치적 역량과 참여의식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18세로 선거연령을 헌법에 못 박게 되면 오히려 더 낮은 나이의 청소년의 선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은 “교육감 선거의 경우 학생들도 교육의 한 주체이기 때문에 선거권을 줘야 한다는 논의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선거 연령을 더 높이는 것은 안 되지만 선거에 따라 낮추는 것은 가능하도록 하는 게 헌법 취지에 맞는다. 따라서 국회에서 교육감 선거권 연령을 낮출 필요가 있다면 법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1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선거연령 18세 조정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고도 최종 개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치권이 선거연령 하향에 따른 유불리를 따진 결과라는 비난이 나왔다. 대통령 개헌안에 선거연령 18세 하향안이 명시됨에 따라 국회에서는 입법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며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정당득표수와 의석비율이 불일치되는 문제도 선거제도를 바꿔야 하는 문제인데 대통령 개헌안에 이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뒀다.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되어야 한다”는 선거 비례성 원칙을 명시하는 안이다.

청와대는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방식의 경우 과다한 사표가 발생하고 정당득표와 의석비율 불일치로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하는 문제가 있다며 20대 총선 결과를 예로 들었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합산득표율은 65%에 가까웠지만 의석 점유율은 80%에 이르렀고, 반대로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합산득표율은 28%였지만 두 당 의석 점유율은 15%에 그쳤다는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향후 국회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국회 구성에 온전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해 달라”고 촉구했다.

개헌에 대한 국민 찬성 여론을 높이고 동시에 국회도 개헌안을 합의해오라고 압박하기 위해 선거연령 하향안, 선거비례 원칙 명시, 국회의원직 박탈 방안 등 대통령 개헌안에 파격에 가까운 내용을 담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권이 반대하면 대통령 개헌안은 국회 통과가 어렵지만 부결을 시키면 국회 개헌안을 합의해서 내놓지 않으면서 파격의 대통령 개헌안을 명분없이 반대하고 있다는 국회 생떼론이 확산될 수 있다.

4년 연임제 채택, 총리 추천제 적극 반박

예상대로 정부 형태는 4년 연임제를 채택했다. 장기간 군사독재의 경험으로 채택한 5년 단임제의 수명이 다했고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국정을 안정되게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은 4년 연임제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형태와 관련해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거나 추천하는 안을 야권이 주장하고 있어 논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도 이를 의식한 듯 총리 선출 및 추천안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청와대는 국회가 국무총리 선출 및 추천을 하게 되면 대통령과 총리 사이 항상적 긴장관계가 유지되고, 여소야대 상황을 가정할 경우 국회 선출 및 추천으로 온 국무총리와 대통령이 정당을 달리하면서 이중권력상태가 돼 국정운영이 어려워진다고 반박했다. 또한 국회가 추천한 국무총리를 대통령이 거부할 경우 정국 혼란이 생기고 갈등 대립으로 인해 국민들이 결국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국회에게 국무총리 선출권을 주는 것은 분권이라는 이름 아래 변형된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4년 연임제는 국민헌법특별자문위원회에서 여론조사 등을 통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사안임을 강조하면서 정면돌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밝혔다.

청와대는 4년 연임제가 문재인 대통령에 적용돼 집권이 연장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현행 헌법 제128조에 따라 개헌안은 제안 당시 대통령에 대해 효력이 없을 뿐 아니라 이번 대통령 개헌안 부칙에도 “개정 헌법 시행 당시의 대통령의 임기는 2022년 5월9일까지 하고 중임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는 것이다.

조국 수석은 “4년 연임제로 개헌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씀 드린다”며 “일각에서 마치 문재인 대통령이 4년 연임제의 적용을 받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 주장”이라고 말했다.

▲ 3월21일 오전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지방분권’과 ‘경제부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사진=청와대
▲ 3월21일 오전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지방분권’과 ‘경제부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사진=청와대
국회 권한 강화하는 방안도 대폭 담아

대통령 개헌안에는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원수로서의 지위를 삭제한 것, 대통령 특별사면권 행사시 사면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한 것 등이다.

헌법재판소장의 인사는 헌법재판관 중 호선하는 것으로 바꿔 대통령 인사권을 제한했다. 국무총리는 현행 헌법에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 통할 권한을 행사하도록 돼 있는 것을 해당 문구를 삭제해서 총리의 재량을 확대했다.

또한 감사원을 독립기관으로 두고 감사위원 중 세 명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현행 헌법에서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이고, 감사위원 전원은 감사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국회의 정부 통제권 강화 방안으로 정부가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할 시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의무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대해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은 “국회법에서 구체적으로 범위와 한계를 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회의원 10명 중) 일정 수 이상은 (법률과 관련한)해당 상임위원을 반드시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법률안에 대한 국회의 이해가 한결 높아지고 국회 동의 기반도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법제도와 헌법재판제도를 대폭 손질하는 안도 담겼다.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무기로 내세워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과거 정부의 사례를 들면서 대법관은 대법관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제청하도록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인사권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둬서 전횡을 막겠다는 취지다.

일반 법관 역시 법관인사위원회의 제청과 대법관회의에서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했다. 대법원장이 가지고 있는 인사권 중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중앙선거관리위원 3인 선출권도 대법관회의로 넘겼다.

사법 민주화를 위해 국민 재판 참여를 넓히는 방안으로 배심제를 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청와대는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배심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국민들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헌법은 법관 자격을 가진 사람만이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될 수 있었지만 이번 개헌안은 법관 자격이 없어도 재판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헌법재판관의 구성을 다양화해서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 등 각계각층의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조국 수석은 “프랑스 등에서는 외교관과 법학교수 등 법과 자격이 없어도 헌법재판관을 할 수 있다. 법을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느냐고 하는데 헌법재판소에 법률적 훈련을 받은 연구관들이 있다. 직업 법관 이외에 보통 사람의 생각을 반영되게 하는 안”이라고 말했다.

국회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

청와대는 20일부터 22일까지 세차례 걸쳐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설명을 마치면서 본격 발의 준비에 돌입했다. 청와대는 이날 국회와 각 당 지도부에 개헌안에 대해 보고하고 전문을 전달할 예정이다. 국회의장 보고, 법제처 송부 이후 개헌안 전문은 언론에 배포된다.

진성준 비서관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국회 설득 작업으로 대통령 국회 연설, 각 정당 지도부와의 만남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오는 26일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하더라도 여전히 국회에서 개헌안을 마련해 합의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면서도 위헌을 받은 국민투표법을 개정할 수 있는 시한은 오는 4월27일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국민투표법은 국내 주민 등록이 있는 국민만을 대상으로 투표인명부를 작성하게 돼 있다.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는 현행 국민투표법이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박탈하고 있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지난 1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6·13 지방선거와 개헌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기 위해서는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대통령이든 국회든 개헌안을 발의하더라도 국민투표를 부칠 수 없다. 국민투표법을 개정하는 것은 국회의 개헌 의지를 볼 수 있는 잣대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방선거 동시 투표를 위해 선거인명부를 작성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해 역산하면 4월27일까지는 국민투표법이 개정이 돼야한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국회가 개헌안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데드라인은 4월27일”이라고 말했다. 조 수석은 “국민투표법을 고치지 않으면서 개헌을 저지한 것인지 독자적 개헌을 발의할 것인지 어떤 선택을 하든 4월27일에는 위헌이 된 국민투표법만큼은 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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