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지만 우리는 1박2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뭔가를 만들어 냈습니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 경험했듯이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지난해 한국 최초 글로벌 미디어 해커톤, 서울에디터스랩의 폐회사에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말 될까? 마지막 순간까지 걱정을 놓을 수 없었지만 마지막 순서, 5분 단위로 쏟아지는 스피드 피칭을 들으면서 벅찬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미디어 해커톤은 단순히 우승팀을 가리는 대회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확장을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실험하는 협업 프로젝트입니다. 저널리스트와 개발자, 디자이너가 한 명씩 모여 팀을 이루고 브레인스토밍과 토론, 시행착오, 멘토와 멘티의 협업을 거쳐 미디어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게 됩니다. 뭔가 복잡해 보이지만 1박2일은 막연한 아이디어를 실체로 구현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중요한 건 모험과 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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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참가팀들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시죠.

“참여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합니다. 이렇게나 짧은 시간 안에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니 어느덧 프로젝트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내 자신을 실험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단 이틀 만에 너무나 대단한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20개가 생기는 걸 보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탄핵 이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지난해 서울에디터스랩의 주제는 ‘정치와 미디어’였습니다.

휴대전화 잠금 화면에서 광고를 보면 정치 후원금을 기부하는 서비스를 만든 팀도 있었고 제한된 예산으로 선거 공약을 구매하도록 하는 공약 쇼핑몰을 만든 팀도 있었습니다. 정치인 발언을 모아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타임라인을 만든 팀도 있었고 실시간 팩트체크 서비스를 만든 팀도 있었습니다. 당장 서비스가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팀도 있었고 아이디어와 스케치만으로도 감탄이 쏟아졌던 팀도 있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스트리아 티켓을 따낸 프라이어팀은 뉴스 사전이라는 서비스를 내놓았습니다. 크라우드 소싱 방식으로 주요 이슈를 20대 눈높이에서 풀어내겠다는 아이디어었는데 심사위원들은 뉴스 서비스와 연계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오스트라이 본선에 다녀온 프라이어팀은 경험을 살려 미닛이라는 이름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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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디터스랩은 비영리 미디어 그룹 글로벌에디터스네트워크가 주관하는 미디어 컨퍼런스 GEN 총회(summit)의 부대행사로 열리는 글로벌에디터스랩의 한국 예선입니다.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스와 영국에서는 가디언과 BBC, 스페인에서는 엘빠이스 등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참여하는 함께하는 글로벌 미디어 해커톤 대회입니다. 한국에서는 미디어오늘과 구글 코리아가 공동 주관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 서울에디터스랩은 4월13일과 14일 이틀 동안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구글 캠퍼스서울에서 열립니다. 

글로벌에디터스랩과 서울에디터스랩의 목표는 편집국의 칸막이를 허물고 저널리즘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저널리스트와 디자이너, 개발자가 협업하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저널리즘 방법론을 모색하고 한계를 극복하자는 제안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행사에서는 직접 미디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경험도 소중했지만 뉴스룸의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얻게 된 것도 큰 성과였습니다.

“언론사는 IT쪽 인력이 굉장히 부족하고, 사이트 하나 만드는 것도 기술과 기자의 협업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기획자가 콘셉트를 만들고 스토리까지 다 짜면, 그 이후에서야 디자이너와 협업을 한 다음 개발팀에 넘겨 퍼블리싱을 했던 게 이전의 방식이었죠.” “콘텐츠의 확장성을 고민하지 않게 되는 구조였죠.”

“기획 단계부터 함께 논의를 하면 ‘개발자 입장에서는 어때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어때요’라고 묻게 됩니다. 기획자 입장에서도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어떻게 논의를 해야 소통이 원활해질지도 계속 고민하게 되는 거죠.”

4월13일과 14일 이틀 동안 열릴 올해 서울에디터스랩의 주제는 ‘독자 참여’와 ‘커뮤니티 활성화 방안’입니다. 독자 참여는 많은 언론사들의 화두죠. 독자 커뮤니티 역시 미디어 기업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뉴스의 제작과 유통에 독자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독자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독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확대하는 방안 등의 모든 종류의 아이디어가 가능합니다.

행사 첫날에는 GEN에서 에디터스랩을 총괄하는 사라 토포로프(Sarah Toporoff)와 구글 뉴스랩의 아이린 제이 류(Irene Jay Liu) 를 비롯해 메디아티의 강정수 대표와 지디넷미디어연구소의 김익현 소장 등의 강연이 준비돼 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히어켄(Hereken)과 한국의 YTN과 빠띠 등의 사례 발표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박스앤위스커의 강규영님과 생활코딩의 이고잉님, 콘텐츠 기획자 최장현님, SK경제경영연구소의 조영신님, 동아사이언스의 홍민기님 등이 멘토로 참여해 브레인스토밍과 기획과 개발 과정에 아이디어를 보탤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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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GEN에디터스랩에서 비슷한 주제로 지역 예선이 몇 차례 열렸는데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2017년 3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시드니에디터스랩에서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소개한 ‘NewsFeel’은 메신저 기반의 뉴스 추천 서비스입니다. 어떤 기사를 보내주고 독자의 기분을 물어봅니다. 기쁘거나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당혹스럽거나 등등. 그리고 반응에 따라 관심이 있어할 만한 다른 기사를 추천해 주는 거죠. 이러한 감정 피드백을 추적해 1주일에 한 번씩 ‘emotional journey’ 리포트를 보내주기도 합니다.

컨버세이션그룹팀의 ‘HearMe’도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임베디드 툴입니다. 기사를 읽다 보면 ‘HereMe’ 버튼이 튀어나오고 ‘좀 더 알려줘’, ‘더 자세히 알려줘’, ‘증명해봐’ 등의 옵션이 제시됩니다. 기사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되죠. 이 서비스를 좀 더 발전시키면 로봇으로 자동응답을 하거나 관련 기사를 검색한 결과를 보여주거나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주키미디어팀의 ‘SpeakUp’도 눈길을 끄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기사 페이지에서 편집국의 슬랙 채널로 피드백을 보낼 수 있는 기능을 집어넣었습니다. 이걸 유형화해서 편집국에게 전달하면 좀 더 인터랙티브한 뉴스 편집이 가능하겠죠.

2017년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뉴욕에디터스랩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팀의 ‘CountingUp’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 달에 5건의 무료 기사를 제공하는 뉴욕타임스와 달리 독자들의 활동 정도에 따라 무료 기사를 늘려주는 위젯을 기사 페이지에 심는 아이디어였죠. 댓글을 달거나 공유를 하면 무료 기사가 하나 더 늘어난다거나 하는 방식인데, 이들은 더 열심히 기사를 읽고 더 열심히 기사를 공유하게 됩니다. 참신하면서도 효과가 확실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워싱턴포스트팀의 ‘MyMix’도 흥미로운 아이디어였습니다. 국제 뉴스와 지역 뉴스의 비중을 조절하거나 논평과 의견의 비중을 늘리거나 줄일 수도 있고요. 관심 주제를 고르거나 배제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성(Diversify) 지표를 슬라이더로 조절하는 부분은 아이디어만으로도 매력적이었습니다.

2016년 4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핀란드에디터스랩에서는 공영방송 YLE팀이 ‘The Beef’라는 서비스의 아이디어를 소개했습니다. 뉴스를 읽다가 중요한 부분을 강조할 수 있게 하는 간단한 서비스였습니다. 최소한의 독자 참여와 집단 지성을 극대화하는 아이디어였죠. 기사를 다 읽지 않고 하이라이트된 부분만 읽어도 되고 다른 독자들의 관점을 살펴볼 수도 있고요. 프로토타입에 그쳤지만 어느 언론사라도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생각해 보면 당장 한국에서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있고 더 멋진 아이디어도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아무 아이디어가 없어도 됩니다. 지난해 경험을 보면 1박2일의 해커톤을 치르면서 새로운 인사이트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좌뇌와 우뇌가 충돌하고 뉴스룸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놀라운 경험. 저널리스트와 디자이너, 개발자의 협업, 수많은 사례와 아이디어가 공개됩니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미디어 해커톤 대회, 이달 말까지 참가팀을 모집합니다. 로켓에 몇 자리가 남아있으니 등록을 서둘러 주세요. 간단한 평가를 거쳐 15개 팀을 모시겠습니다.

등록 안내와 자세한 행사 소개는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고요. http://seouleditorslab.com/

글로벌 에디터스 랩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https://www.globaleditorsnetwork.org/programmes/editors-lab/seoul-editors-lab-2018/

지난해 1회 대회 기사는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beta.mediatoday.co.kr/topic/68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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