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입장 발표문엔 자신의 20개 범죄 혐의에 대한 인정도 부인도 담기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참담한 심정”을 언급하며 억울한 심정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4일 9시14분 논현동 자택에서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을 타고 출발해 5분 후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도착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하차 후 차량 바로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에 서 1분30초 가량 미리 출력해 온 대국민 입장문을 꺼내 들고 읽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9시20분 경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9시20분 경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운을 뗀 이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또한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과 이와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전직 대통령으로써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 만은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 “다만 바라건데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한다. 다시 한번 국민여러분께 죄송스럽다는 말씀드린다”며 입장 발표를 마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발표 직후 한 기자가 그를 따라붙으며 “국민에게 사과했는데 백억 원 대 뇌물 혐의 모두 부인하시냐”고 물었으나 이 전 대통령은 “위험하다”(묻는 기자에 계단 조심하라는 의미)고 대답했다. 이어 “다스는 누구꺼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으나 이 전 대통령은 답을 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건물 입구를 통과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9시20분 경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해 대국민 입장 발표문을 낭독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9시20분 경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해 대국민 입장 발표문을 낭독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한동훈 3차장과 티타임을 가진 후 신문에 들어 갈 예정이다. 이 전 대통령은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지난해 조사받았던 중앙지검 10층 1001호에서 조사받을 예정이다.

수사검사는 신봉수 첨단범죄수사1부장 및 송경호 특수2부장이고 이복현 특수2부 부부장검사가 수사지원 검사로 입회하게 된다.

강훈·피영현 변호사 등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 4인은 이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 10분 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건물로 들어섰다.

이날 조사는 ‘밤샘 조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전 대통령 박근혜씨는 지난해 3월21일 검찰에 최초로 소환돼 21시간30분 가량 조사를 받은 후 귀가했다. 다스 실소유주 및 뇌물수수 여부를 둘러싸고 치열한 법리 다툼이 이어질 전망인데다 20개 범죄 혐의를 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전 대통령 조사 시간은 21시간을 뛰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 10여 분 전, 포토라인 현장엔 “권력을 사유화 한 파렴치한 중범죄자 이명박을 구속하라”는 발언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퍼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검찰청 입구 앞에서 이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민주노총 등은 “이명박에게 모든 기준은 돈이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오로지 자신의 치부를 위해 이용하고 사용했음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며 “박근혜 뒤에 비선실세 최순실이 있었다면 이명박은 스스로 대통령이자 비선실세가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스와 친인척, 측근 등 차명인을 앞세우고 동원해 뇌물을 수수해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14일 오전 9시 경 검찰청 입구 앞에서 이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이치열기자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14일 오전 9시 경 검찰청 입구 앞에서 이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이치열기자

이날 검찰청은 서울중앙지검 관계자 및 사건관계인, 일부 허가받은 취재진에 한해 출입을 허용했다. 차량 출입구도 전면 통제됐다.

오전 9시 서울중앙지검 입구 앞엔 420여 명의 취재진이 집결했다. 취재진들은 이날 오전 5시부터 서울중앙지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현장 취재를 준비했다. 이 전 대통령이 출입할 문 주변에만 기자 100여 명이 모여 출입문 주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늘 장이 크게 섰어” “아주 커” 등의 우스갯소리가 취재진 간 오갔다.

기자들은 검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증과 신분증을 제시하고 비표를 받은 후 지검 관계자들 앞에서 가방 안을 보여주는 등 소지품·신체 수색도 거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100억 원 뇌물수수 혐의 및 다스 실소유주 여부와 비리경영 등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관 등을 통해 총 17억 여 원에 달하는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국정원장 등으로부터 뇌물로 수수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2007년 및 2009년 두 번에 걸쳐 대납한 다스 소송비 60억 원도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삼성전자가 다스 투자자문사 BBK에 투자한 140억 원을 회수하기 위해 미국에서 진행한 소송 비용 60억 원을 다스 대신 납부한 증거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회장으로 부터 22억5천만원, 대보그룹으로부터 5억원 등으로부터 33억5천만원 상당의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도 있다.

다스 전·현직 관계자들의 횡령, 배임 등으로 인한 불법 자금 규모는 270억 원대에 달한다. 다스 협력사 금강의 이영배 대표는 회사 자금 90억 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지난달 20일 구속됐다.

이 전 대통령의 ‘금고지기’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에겐 60억 원대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가 적용됐다. 이 국장은 2009~2013년 동안 홍은프레닝(다스 자회사) 자금 10억8천만원, 2009년엔 금강 자금 8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국장은 또한 2017년 12월 홍은프레닝 자금 40억원을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 소유회사 SM의 자회사 ‘다온’에 무담보 저리로 대출해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2008년 ‘다스 특검’(정호영 특별검사)이 파악한 다스 자금 120억 원은 경리직원 조아무개씨의 개인 횡령 범죄로 봤다. 검찰은 이 국장의 구속영장 및 공소장에 이 전 대통령을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적시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도 사고 있다. 검찰은 김백준 전 기획관의 국정원 특활비 불법 수수 혐의 수사 차 이 전 대통령 사무실이 있는 영포빌딩을 압수수색하던 중 국가위기관리센터, 민정수석실 등이 만든 ‘일일 상황 보고’ 문건 등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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