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연기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캐스팅 디렉터(casting director)와 방송 출연 표준계약서. 이 두 가지가 방송 연기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받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게 주우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사무국장의 지적이다.

주 사무국장은 ‘드라마제작환경개선TF’(이하 TF)와 유성엽 민주평화당 의원, 홍영표·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9일 국회에서 연 드라마 제작 현장 노동 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방송 연기 노동자들의 어려움에 대해 털어놨다. TF는 전국언론노동조합,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청년유니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함께 꾸린 단체다.

▲ 9일 국회에서 드라마제작현장 노동인권개선을 위한 대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 9일 국회에서 드라마제작현장 노동인권개선을 위한 대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캐스팅 디렉터는 말 그대로 대본에 나오는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배우를 섭외하고 수수료를 받는 역할을 한다. 주 사무국장은 “캐스팅 디렉터가 제작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건 15년 쯤 됐다”며 “조연·단역을 발굴하고 섭외하다 최근에는 주연도 섭외할 정도로 역할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캐스팅 디렉터 힘이 커지면서 폐해가 나타났다는 게 주 사무국장 주장이다. 그는 “방송사나 제작사에 캐스팅 명목으로 배우 출연료 30%이상의 돈을 받고 있다”며 “캐스팅 디렉터들이 많은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여성 배우에게 접근해 출연을 미끼로 성추행·성접대를 요구하는 일도 생겨났다”고 비판했다. 이어 “캐스팅 디렉터들은 이런 과정에서 얻은 돈으로 연출자 등에게 접대하며 이런 구조를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문제를 방송사에 제기했지만 일부 디렉터들은 방송사·제작사에 턴키 식으로 계약을 받아 출연자의 출연료를 가로채기도 했다”며 “방송 출연 후 1년 이상 출연료를 못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작품 출연을 들먹이며 협박하기도 한다”고 했다.

주 사무국장은 이러한 행태에 대한 처벌과 관련해 “처벌 규정은 있지만 신고나 처벌 사례는 극히 드문데 부당한 사례가 적어서 그런 게 아니”라며 “신고하면 출연할 수 없게 되는 등 2차 피해가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캐스팅이 배역에 맞는 이미지나 배우 역량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계약서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지상파 방송사별 드라마 출연료 미지급 현황’에 따르면 KBS·MBC·SBS 드라마에 출연하고도 연기자들이 받지 못했던 출연료는 31억 원 이상이다. 계약서가 실질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주 사무국장은 “정부가 권고안으로 방송 출연 표준계약서를 내놨지만 무용지물”이라며 “강제이행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지만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있어 강제할 수 없다면서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지상파 드라마 미지급 출연료 31억 원, 방송사는 모른 척]

문화체육관광부는 표준계약서 실효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장경근 문체부 방송영상광고과장은 토론회에서 “KTV·아리랑TV 등 공공 영역 방송을 포함해 10개 정도 기관에 표준계약서를 준수해달라고 당부했다”며 “표준계약서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실태 조사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tvN ‘화유기’의 첫 방송이 있던 날 해당 드라마 세트장에서 조명을 달던 스태프가 추락해 큰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사진=한국일보 보도 화면 갈무리
▲ tvN ‘화유기’의 첫 방송이 있던 날 해당 드라마 세트장에서 조명을 달던 스태프가 추락해 큰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사진=한국일보 보도 화면 갈무리

드라마 제작 현장의 노동 조건이 열악하다는 것도 재차 지적됐다. 박상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주일에 72분짜리 드라마 두 편을 만드는 나라”라며 “중국의 시상식을 보면 출품되는 드라마 중 50분을 넘는 게 단 한 편도 없다. 72분을 50분 이하로, 1주일에 1회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오광혁 방통위 편성평가정책과장은 “한국은 특이하게 일주일에 두 편씩 드라마를 제작한다. 일본 등은 주 1회 제작하고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 사전 제작을 한다”며 “한국도 사전 제작에 가까운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조건 대기하고 장시간을 소모하는 근무 시간 관련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며 “방통위가 재승인·재허가 평가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미성년 연기 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감시의 사각지대로 꼽힌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소속 김동현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의 노동 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연기자들도 참고 버텨야 다른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법을 위반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또 이들은 형식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니 근로 감독 대상도 아니라는 맹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경근 문체부 과장은 “청소년 연기자·연습생에 대해서는 올해 상반기에 표준계약서를 제정하고 생활 수칙도 개정해 사각지대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