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객관적인가.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사실이라도 언제·어떻게 알려지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성범죄 보도의 경우, 누구의 입을 통해 사실이 알려지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가 생긴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Me Too)’는 그에게 닥칠 2차 피해를 각오하고 본인이 카메라 앞에 섰기에 박수와 주목을 받았다. 이후 많은 성범죄 관련 보도가 나왔다.

2월 초, 한 기자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정부부처 내에서 성범죄가 발생했는데 가해자는 징계 받지 않은 채 해당 조직을 떠났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를 A사건이라고 하자. ‘2차 피해가 일어나서 안 된다’며 구체적인 시기를 밝히지 않고 익명처리 했지만 정작 그 기자는 꽤 많은 정보를 언급했다. 물론 사건을 은폐한 그 정부부처를 비판했고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조사해야한다고 했다. 당시 이슈가 됐던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다음날 한 종합일간지에서 같은 사건을 정부부처 발 단독보도로 다뤘다. 물론 목적은 비슷했다. 해당 정부부처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는 논조였다. 역시 익명처리를 했지만 꽤 많은 정보를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미투운동과 함께 ‘위드유(#With You)’운동이 힘을 받고 있던 때였다. 이 기사들은 미투도 아니고 위드유도 아니었다. 미투를 강요하는 듯했고,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을 더 숨게 만드는 보도가 됐다.

충격적인 건 최근 A사건이 한 지상파 뉴스에서 단독보도라며 또 등장한 것이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해당 부처는 여전히 조사할 방침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10여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자가 ‘미투’를 외치지 않았다는 건 이 사건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A사건은 그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이나 관련 업계에서 어느 정도 알려졌다. 이 방송사 보도 역시 틀린 게 없고, 앞선 보도들에 비해 추가로 밝힌 사실관계도 있으니 ‘단독’보도라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럼 문제가 없는가.

▲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게티이미지
▲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게티이미지

보통 성범죄 사건은 증거를 찾기 어렵고, 양 당사자 모두 사실관계를 알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뇌물 사건과 비슷하다. 기자들은 사건 실체를 그려내기 위해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게 최대한 정보를 받아 이를 기사에 녹인다. 이때 중요한 건 ‘팩트냐 아니냐’다.

허나 뇌물사건은 양 당사자가 모두 용의자이지만 성범죄 사건은 그렇지 않다. 성범죄 사건과 뇌물 사건은 모두 당사자들이 프라이버시를 주장하며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들은 수사 중인 사건을 당사자들에게 확인하지 못한 채 경찰·검찰 쪽에 확인하고 기사를 쓰게 된다.

정부 관계자가 확인해줬다는 점에서 위 보도들은 중립적인 것처럼 보인다. 프라이버시는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다. 뇌물사건 당사자들이나 성범죄 가해자는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싶었을 뿐이다. 프라이버시를 인정받아야 할 사람은 성범죄 피해자다. 사건이 알려지면 어떻게 되나. 가해자는 범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피해자는 범법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

한국의 성폭력 신고율이 2~6%에 불과하다. 알려질 경우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피해자들이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때론 공론화 자체가 가해자의 무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성범죄 사실을 알릴지 말지의 판단을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피해자들에겐 ‘사실관계가 맞으면 된다’는 식의 언론 태도는 무의미하다. 피해자는 사건을 알리고 나서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기억하기 싫은 시공간을 떠올리며 불편한 질문을 감당해야 한다.

가해자와 공방을 주고받아야 한다. 직장 내 성범죄라면 가해자와 회사에 동조하는 직장 동료들의 가시 박힌 공격을 마주해야 한다. 정말 자신의 사건을 진정성있게 변호해줄 대리인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 감수성 떨어지는 질문들을 쏟아내는 경찰·검찰 등과 대면해야 한다. 노동위원회·민사소송·노동부 진정·형사소송 등의 기나긴 절차들을 겪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증거가 부족하면 무고죄·명예훼손 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

이 무거운 짐을 피해자가 긴 시간 홀로 짊어져야 한다. 이에 비하면 언론보도는 찰나에 가깝다.

2월 초 한 유력 종합일간지가 1면에 정부부처 발 성범죄 소식을 보도했다. B사건이라고 하자. 기사 제목에는 ‘미투’가 들어갔다. A사건을 다룬 기사들처럼 정부조직을 비판하는 기사였다.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밝힌 사건은 아니었다. 해당 기사가 이날 오후 온라인에서 삭제됐다.

미디어오늘은 기사가 삭제된 경위를 물었다. 해당 일간지 관계자는 “팩트가 틀린 기사는 아닌데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요청이 있어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종합일간지의 온라인뉴스부는 A사건과 B사건을 인용해 보도했다. 역시 제목엔 ‘미투’가 들어갔다. 이쯤 되면 언론이 ‘미투’ 열풍에 편승해 피해자의 입을 막는 꼴이다.

▲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게티이미지
▲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게티이미지

사정기관을 출입하는 한 방송사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감찰 단계에서는 피해자가 원치 않을 경우 조사도 안하는 게 성추행 건인데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건을 확인했다고 죄다 기사화하는 것은 명백히 2차가해고, 이 부분에 대해 힘들어하는 분도 봤다”고 말했다. “예전에 보도가 났던 사건의 피해자를 찾아다니는 경우도 꽤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 일간지에서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인 C씨를 접촉해 기사를 냈다. C씨의 사연은 여러 매체에서 보도한 바 있다. C씨는 해당 일간지에서 연락 온 것까지는 문제 삼지 않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매체에서 온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그는 힘든 얘기를 반복하는데 대한 피로감을 토로했다. 

미투 분위기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피해자들은 자신이 언론에 노출될까 불안해하고 있다.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당사자가 직접 제보를 하더라도 최종 보도가 나올 때까지 긴장감이 지속된다. 제보자와 기자 간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고, 기사작성이 끝났는데 제보자가 보도를 원치 않기도 한다.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거칠게 질문을 던져 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성범죄 사실을 폭로하는 건 힘든 일이다. 피해당사자가 제보를 해도 이런데, 당사자가 원치 않는 보도는 어떨까.

사실관계를 철저하게 따지는 것만으로 2차 피해를 막을 수 없다. 흔히 저널리즘은 공적영역으로 분류된다. 공적영역에는 감수성이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게 공적규범이자 전문성이라고 간주한다. 사정기관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더욱 이런 규범을 강요받는다. 고통에 민감한 이들은 업무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것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것만이 저널리즘 윤리여선 안 된다는 말이다.

‘유능한 기자이지만 감수성이 좀 부족해 2차 피해가 발생했다’고 이해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기사가 피해자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 올지 제대로 알았더라면 이런 보도는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는 것’과 ‘감정’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공감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완전히 체화했을 때 나온다. 때로 안다는 건 상처받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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