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전 국내 신문들, 그 중에서도 큰 신문들은 마치 한·미 동맹관계가 끝장이라도 날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지난 3월 김대중 대통령이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 부시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미 대북정책에 무지한 한국언론

첫째 이유는 김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동성명이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의 보존·강화”를 다짐함으로써 부시 대통령의 국가미사일 방어망(NMD)계획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 때문에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하 대세가 바뀌었다”는 식의 이러한 예측은 필자가 예상했던 대로 빗나가고 말았다(미디어오늘 3월 15일자 ‘부시파동의 겉과 속’ 제하의 본란). 지난 6일 부시대통령이 ‘북측과의 대화재개’를 밝힌 성명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같다”는 게 미국언론의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제네바 핵합의의 “이행을 개선”하고, 북측 미사일 계획의 “검증가능한 규제”, 그리고 “보다 덜 위협적인 재래식 군비태세”가 추가됐다. 부시 대통령이 강조해온 ‘검증’과 재래식 군비의 축소·재배치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로써 한국의 언론도 미국의 대외정책이 미국내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집단들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기본적인 특징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집권당이 바뀌었다고 해서 대외정책이 뿌리째 바뀔 수 없는 구조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언론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6·15 공동성명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6월 15일자 조선일보의 사설을 예로 들어보자. 이 사설은 <조선일보가 보는 6·15 1년>이라는 이례적인 제목부터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도 이 한편으로 사설란을 채운 야심작이다.

이 사설은 햇볕정책이 김대통령의 창작이 아니라는 데서부터 말문을 열고 있다. “북한을
공존의 상태로 끌어내는 정책”은 70년대 중반부터 대북정책의 대종으로 삼아 왔고, “햇볕
정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을 끌어내리는 이 말은 박정희 시대인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에 영광을
돌리는 색다른 해석이다.
박정희는 공동성명을 빌미삼아 유신독재 개헌을 강행했고, 김일성은 ‘적화통일’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황당한 해석이다.
박정희를 이은 전두환·노태우 그리고 북의 김일성이 내세운 ‘평화공존’은 실현가능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체제유지용의 정략적 수사(修辭)였다.
이 사설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6·15 공동성명 이후의 상황을 김대통령의 “무원칙한 북한
비위맞추기나 일방적 짝사랑”, 그리고 그에 따르는 우리측의 ‘정체성의 동요’를 비판·
비난하는 데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사설은 북측에 대해 ‘남한 다수파 주류세력’ 또는 ‘남한 주류진
영’을 존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결국 이 사설은 군사정권의 맥을 이은 지금의 실권집단
의 시각을 대변하는 정치사설이다.
남북관계가 답보상태에 빠진 것은 우리로서는 불쾌하지만 워싱턴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 김정일이 관망상태로 후퇴했기 때문임을 이 사설은 말하지 않았다.
원래 6·15 공동성명은 한·미 공조의 산물이라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이라는 ‘필요조건’을 준비했고, 클린턴 대통령이 범 세계적 공조체제를 조직하고
페리조정관 평양방문(1999)을 통해 햇볕정책을 뒷받침하는 ‘충분조건’을 제공했을 것이다.
지난 15일 제주도 서귀포에서 개막했던 ‘6·15 제주포럼’에서 페리가 김대통령으로부터
극진한 치하를 받은 데에는 그만한 공헌이 있었음을 뜻한다.
6·15 공동성명도 그만큼 넓은 시야를 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
김용갑의원의 ‘이중대론’이나 ‘조선일보가 보는 6·15 1년’처럼 정치일변도의 비난은
특정집단의 정치적 증오심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증오심은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독약이다.

조선일보 ’정치사설’은 독약
북한이 김일성주의 왕조국가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산권 붕괴이후 식량난 속에
서 체제붕괴 위험을 무릅써야 되는 오늘의 북은 1970년대와도 다르고 80년대와도 다른 상황
속에 있다.
모든 상황은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에게 지워진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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