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섭 교수가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 때 KBS 이사에서 부당하게 해임된 그가 다시 공직을 맡았다. 지난해 12월26일 방송통신위원회 산하기관 시청자미디어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은 미디어 교육을 수행하는 각 지역의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총괄하는 준정부 기관이지만 박근혜 정부 때 ‘비리 기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실 출신 이석우 초대 이사장은 신입사원 채용비리, 파견근로자 부적절 채용 등이 밝혀져 해임 건의안이 제출되기까지 했다. 자유한국당 보좌관 출신 고위 간부는 직원들에게 수차례 폭언 욕설을 해 면직됐다. 센터에 국정 홍보영상을 틀고, 미디어 교사들에게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는 서약서를 강제하면서 미디어 교육 기관으로서 부적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신태섭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신태섭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사실상 ‘재건’이 필요한 재단을 맡게 된 신태섭 이사장은 참여정부 때 처음 건립된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 설립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는 “지금의 시청자미디어재단의 모습은 처음 설립 때와는 다르다. 지난 9년 동안 정체하거나 일부는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시청자미디어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시청자미디어재단 산하 센터 설립에 관여했다고 들었다.

“2004년 시청자미디어센터를 만들자는 논의가 시민사회 영역에서 강력하게 제기됐고 이 제안을 참여정부가 받아들였다. 제3섹터까지는 아니지만 방송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의 전신)가 국가 영역에서 지원을 하고 자문을 하면 미디어 운동을 하는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이 곳을 기반으로 자율성을 갖고 운영을 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 처음 만들어진 곳이 부산 센터였고 당시 건립 추진위원을 맡았다.”

-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왜 필요한가.

“당시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예견된 상황에서 미디어에 대해 비판적인 해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어느 나라든 주류미디어의 여론 영향력이 너무 컸다. 선진국의 경우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공론장이 확보됐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사정이 나았지만 한국은 주류언론에 의해 좌우되는 정도가 너무 심했다. 언론개혁은 주류미디어에 대한 것도 중요하겠지만 시민들이 스스로 표현할 줄 알고, 주류미디어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공론장을 활성화하는 방향도 있다.”

- 지금 설명하는 설립 당시 센터의 모습과 현재의 시청자미디어재단은 괴리가 있는 것 같다.

“발전하기보다는 정체되고 부분적으로는 퇴보한 상태로 9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자율적으로 운영되던 시청자미디어센터였는데 지난 정부에서 ‘재단’이라는 중앙 조직을 만들고 방송통신위원회 산하기관으로 만들었다.”

- 이명박 정권 이래로 방송통신위원회 조직의 성격이 변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건가.

“방송통신 융합에 대비해 방송위를 강화하는 건 참여정부 때 설계한 내용이다. 단, 융합 과정에서 공론형성이 시민의 자주성에 기초해 잘 되도록 돕는 것이 방통위의 주된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 기능을 위축시키고 방통위를 독임제 부처처럼 만들면서 언론규제 기능을 강화했다. 박근혜 정부 때 진흥 기구인 미래창조과학부를 별도로 분리하면서 또 다시 위축됐다. 미래부는 산업논리로, 방통위는 규제논리로 접근하는데 정작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방송통신의 핵심적인 의무를 수행할 기관이 없어진 것이다.”

▲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 사진=이치열 기자.
▲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 사진=이치열 기자.

- 현 정부 시청자미디어재단은 어떤 식으로 미디어교육을 할 생각인가.

“전시행정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주류미디어가 갖는 점유율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주류미디어와 시민미디어의 격차를 줄여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센터가 되도록 정비해야 한다. 전체 미디어 지형에서 시민공론장의 몫은 5%에 불과하다고 본다. 시민 공론장을 키우면 어느 언론이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중심을 잡고 받아들일 수 있다.”

-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건가.

“센터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와서 스마트폰 사용법 정도를 익힐 수도 있다. 이게 시작이다. 학생, 학부모, 시장 상인, 노동자 등 누구든지 간에 센터의 시설, 장비를 활용하고 이 과정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돕는다. 재단은 토양을 형성하는 인프라가 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한 끝에 시민들이 ‘이 기구는 민주주의를 위해 뭔가를 하는구나’라고 느끼기를 바란다.”

- 지난 정부 때 재단이 마을미디어를 비롯한 시민사회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마을 미디어나 지자체 센터 등이 있는데 이들과 힘을 합칠 것이고 수평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할 것이다. 회의를 함께 하고 공동사업도 많이 하면서 말이다. 방송위원회 때는 시민사회와 함께 ‘운영위원회’를 구성했다. 최종의결은 방송위가 하더라도 심의기능은 운영위에 맡겼다. 각 센터장은 운영위에서 선발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과제를 고민할 것이다.”

- 자유학기제 때 시청자미디어재단 차원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디어 정규교과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미디어 전문 교사를 양성하고 미디어 교육 개별 과목을 만들자는 주장이 있는데 보편적인 사례도 아니고 정착되기도 힘들다고 본다. 개별 과목에서 미디어 교육을 응용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직접 교육을 맡겠다고 할 필요는 없다. 기술적 측면의 교육의 경우 교사들이 우리의 전략을 필요로 하는 부분을 도와드릴 수는 있다.”

▲ 신태섭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신태섭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법 개정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각 부처별로 산재된 미디어 교육 기능을 방통위 또는 문화체육관광부 중심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부처 이해관계 등의 이유로 제대로 조율되지 않고 있다.

“법을 어떻게 만드는 게 최적인지 연구가 더 필요하다. 사회적 논의도 더 풍부해야 한다. 당장 내 구역, 네 구역 구분하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지금은 과도기라고 봐야 한다. 당장 법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법과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 한다. 제대로 일을 하고 이게 쌓여 성과가 나면 법의 방향성도 잡힐 거라고 본다. 단, 학교 미디어 교육과 사회 미디어 교육 등을 기본권으로 제정하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 센터 추가 건립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있나. 기존 센터가 비효율적인 권역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센터 확충이 필요하다. 7곳이 있는데, 더 많은 지역에 만들어져야 한다. 비효율적인 권역이 문제인 것도 맞다. 현재는 강원센터에서 경북 일부 지역까지, 울산센터는 대구경북 지역까지 커버해야 한다. 지금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센터를 옮길 수는 없으니 현재 상황에서 보완책을 마련하는 식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 단, 지자체 사정과 예산과 인력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의 적정선을 찾아 반영해야 한다.”

- 이사장 부임 이후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게 있나.

“개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재단과 센터가 함께 있는 구조가 좋다고 생각한다. 와서 보니 뚝 떨어져 있더라. (현재는 센터는 각 지역에 있고 이를 총괄하는 재단 사무실은 서울 여의도에 있다.) 현장에서는 정책을 짜는 쪽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을 짜는 분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 다음에 광역센터를 건립하게 되면 논의를 해서 한 센터와 재단을 함께 쓰는 통합센터를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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