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방송사 독립제작·비정규직 문제 개선을 시사하고 나섰지만 갑질은 끊이지 않고 있다. 뉴스를 통해 사회 문제를 고발해온 방송사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8일 한겨레21에 따르면 프리랜서 촬영감독 A씨는 지난해 SBS 예능 ‘동상이몽’ 시즌1 제작 당시 밀린 임금 6개월치 가운데 900만 원 가량을 백화점 상품권으로 받아야 했다. SBS는 A씨에게 “(회계처리를 위해)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상품권이 가면 안 된다”며 복수의 개인 정보를 알아오라고도 요구했다.

방송업계 ‘상품권 페이’ 논란은 사회적인 문제로 번졌다. SBS PD의 ‘문제 없다’는 식의 태도는 공분을 샀고,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SBS의 사과에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상품권 페이가 SBS만의 문제가 아닌 방송계 전반의 ‘관행’이라는 점도 드러나고 있다. 문제 개선을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도 진행되고 있다.

▲ SBS 사옥.
▲ SBS 사옥.
언론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당사자들은 예외다. 포털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75건에 달한다. 그러나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 결과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에서 관련 보도는 한 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침묵을 지키는 당사자인 SBS는 2015년 10월22일 라디오를 통해 서울우유가 임금 대신 유제품을 지급한 사실을 비판한 바 있다. 이날 방송에서 한수진 앵커가 “근로기준법에 근로자에게 임금을 통화, 돈으로 지급하라고 명시가 돼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현금 대신 물건이 아니라 상품권으로 줘도 안 되는 건가요?”라고 묻자 임제혁 변호사는 “명확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답했다.

방송사들의 침묵은 이번 뿐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아프리카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독립PD들이 열악한 제작여건 속에서 늦은 시간까지 차를 몰다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고 박환성 PD는 출국하기 직전 불이익을 감수하고 EBS에 맞서며 열악한 제작환경 문제를 공론화했다. 지상파 3사와 종편은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이후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조문을 하고 이낙연 국무총리가 직접 문제 개선을 지시했고 지난해 12월 5개 정부부처가 공동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개선방안 발표 때까지 반년 동안 지상파3사와 종편 중 관련 사안을 다룬 매체는 MBC 뿐이다. MBC는 정부의 개선방안 마련 소식을 한 꼭지 다루며 자사의 갑질 사례를 언급했다.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다름 아닌 방송사들의 일관된 침묵이다. 자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사소한 일들까지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사들이 두 PD들의 죽음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 지난해 8월10일, 두 PD 죽음 직후 독립PD협회 ‘불공정행위 청산과 제도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방송사의 침묵을 비판했다.

▲ 지난해 7월29일 오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김광일(왼쪽), 박환성 PD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해 7월29일 오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김광일(왼쪽), 박환성 PD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사진=금준경 기자
지금 방송가에선 반성이 잇따르고 있다. MBC는 메인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반성을 쏟아냈고, SBS 역시 2015년 위안부 한일합의 보도 등 과거 문제적 보도에 대해 사과하며 자사의 치부를 드러냈다.

그런데 정작 방통위와 시민사회가 또 다른 정상화 과제로 주목하는 독립제작인력과 비정규직에 대한 ‘갑질’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2일 발표한 모니터 보고서를 통해 “자사 혹은 방송계의 치부가 될 수 있는 이런 이슈에 매번 침묵한다면, ‘보도에 성역은 없다’는 주장도, ‘변화할 것’이라는 약속도 모두 공허한 구호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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