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파업을 통해 과거와 제대로 단절했는가?”
현장을 제대로 취재하지 않은 이른바 ‘노룩취재’, 지인을 내세운 시민 인터뷰 등. 지난달 ‘권력에 굴종하지 않겠다’는 반성으로 돌아온 MBC가 연이은 부실취재 논란을 일으켰다. 시청자들이 SNS 등을 통해 이를 지적하고, MBC는 그제야 사과 방송을 내보내는 일이 반복됐다.
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MBC본부)는 이러한 일들이 “타성과 관행이 낳은 사고”라며 ‘저널리즘의 기본을 잠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MBC본부는 4일 사내 프로그램 감시 기구인 민주방송실천위원회(민실위) 보고서를 통해 문제의 보도와 그 원인을 짚었다.
가장 최근 논란은 MBC 인턴 출신과 그의 친구, 취재기자 지인, MBC 본사 직원 등을 ‘시민 인터뷰’로 내세운 리포트다.
‘뉴스데스크’는 지난 2일 방송에서 “여론을 왜곡할 우려가 있는 보도 행태일 뿐 아니라, 취재윤리를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고 사과했지만, ‘표피’만 짚었다고 민실위는 지적한다.
첫째, 여론조사조차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시민 몇 사람의 인터뷰로 여론을 들어봤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MBC 보도프로그램 준칙은 “사회현상이나 갈등 등을 다룰 때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경우 가급적 다양한 사회계층의 견해를 폭넓게 소개한다”는 다양성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시민을 상대로 한 거리 인터뷰를 ‘일반화된 여론’처럼 보도해선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도 정해놨다.
더구나 개헌을 다룬 지난 1일 리포트는 “시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그 국정농단을 막아내지 못했던 정치 시스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습니다”라는 기사의 근거로 문제의 지인 인터뷰가 등장했다. 민실위원들은 “리포트의 구색을 위해 반사적이고 습관적으로 방송용 인터뷰를 하는 관행이 곪아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MBC 전국부는 지난달 26일 오후 5시 이후 확보한 CCTV ‘그림’에 맞춰 데스크가 기사를 작성하고 외근 중이던 기자가 복귀해 리포트를 준비했다. 영상 내용을 확인하는 ‘취재’는 없었다. 민실위는 사건사고 기사에서의 CCTV 및 블랙박스 만능주의, 낡은 타성과 속보 관행이 만들어낸 사고라고 지적했다. “그림 좋아?”라는 익숙한 질문이 정당한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취재부실의 또 다른 사례는 ‘반론 없는 기사’다. 역시 첫날 보도된 “‘MB, 다스 미국 법인 왔었다’… 퇴임 후 방문” 리포트는 지난 2014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 미국 법인에 방문했다는 제보를 전했다. 다스 미국법인 하청업체 관계자 인터뷰도 담겼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반론은 없었다. 이른바 ‘MB 다스 실소유주’ 의혹이 재론되는 시점인 만큼 보도가치는 인정됐을지 몰라도 의심을 뒷받침할 ‘반론 취재’가 없었던 것이다.
MBC 시사 보도프로그램 제작 준칙은 “고발이나 비판적 보도의 경우 그 대상의 반론도 존중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를 보장하지 않은 리포트는 이 전 대통령의 항의를 받은 데 이어 지난달 28일 언론중재위에 제소됐다. 보고서는 “의욕이 넘쳤지만, 조급했고 준비가 부족했다”는 반성을 담았다.
지난 7년 방송장악도 이 그릇된 관행의 틈을 파고들었기에 시작됐고 가능했다는 자성도 나온다. 민실위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처절하게 싸웠는가. 공영방송 저널리즘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였다”며 “우리는 공영방송 저널리스트로서 준비돼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고 고백했다.
민실위는 앞서 제기된 사례 외에도 추가적인 문제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도국장, 보도제작국장, 뉴미디어뉴스국장, 스포츠국장 등과 협의해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정책 발표회’도 가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