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이 “담을 허물자”며 7편의 글을 썼다. 이웃에 살고 있는 인간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담”을 허물자는 의도에서다. 담이 가로막은 존재는 이주민이다. ‘담’ 기획단은 한국에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이주민 7명을 만나 그들의 굴곡진 삶을 생애사로 기록했다.
한국사회는 2016년 촛불로 사회 전반에서 개혁 국면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주민 인권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미디어오늘은 ‘세계 이주민의 날’(매년 12월18일)이 있는 12월을 맞아 담 기획단이 발간한 이주민 구술 생애사 책 ‘담을 허물다’에 실린 글 전편(서문 포함)을 기획연재한다.

▲ 이주민구술생애사 프로젝트 &lt;담&gt; 기획단이 발간한 책 &#039;담을 허물다&#039; 표지.
▲ 이주민구술생애사 프로젝트 <담> 기획단이 발간한 책 '담을 허물다' 표지.

“그들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제7의 인간: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여전히 죽음으로 호명되며

2016년 겨울을 환히 밝혀주었던 빛은 크고 작은 변화들로 일상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정의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던 촛불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열망하는 촛불로 이어졌습니다. 변화가 시작되었던 그 곳, 광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날의 목소리는 변화를 일구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변화의 길목에서 함께 불을 밝혔지만 이름이 아니라 죽음으로, 숫자로 불립니다. 올해도 몇 번을 새하얀 국화꽃을 놓으며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산업재해나 사고, 강제추방과 단속, 신변 위협으로 인한 자살, 젠더폭력 등으로 많은 이주민들이 사망했습니다.

▲ 추티마씨 사망 사건을 지원하는 이주노동자 및 여성 인권운동 단체, 법률가 단체 등은 23일 오전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추모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추티마씨 사망 사건을 지원하는 이주노동자 및 여성 인권운동 단체, 법률가 단체 등은 23일 오전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추모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집이 된 비닐하우스, 빗물이 새서 전기가 흐르는 벽, 잠기지 않는 방, 휴식시간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생산량을 위해 제거되는 안전장치는 이주민에게 닥친 한국사회의 잔혹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죽음과 고통은 언제쯤 멈추어질까요? 이들의 외침은 언제쯤 가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에

“가난한 나라에서 왔지?” “이상한 냄새 나” “말귀를 못 알아들어” “답답하게 구네” “힘든 일 하러 온 건데. 뭐 어때”…

쌓여진 담 너머 사람이 있습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을 만큼 울부짖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차별의 시선을, 혐오의 언어를 맨몸으로 받아내며 가해지는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울부짖고 있습니다. 울부짖는 그이들의 곁에 머물며 안부를 묻고 삶에 말을 건네려 합니다. 그이들도 나도 사람이기에. 이보다 더 마땅한 이유가 필요할까요? 그저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에.

당신의 목소리를 ‘담’아, 높게 쌓인 ‘담’을 무너뜨리고

어느새 높다랗게 쌓인 회색빛 ‘담’은 목을 뒤로 젖혀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가 나눈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그이들에게 붙인 부정적인 이름들을 떼어내려 합니다. 가난하고, 냄새나는, 답답한 사람이라는 편견과 낙인을 떼어내고 개개인의 이야기를 건져 올리려고 합니다.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삶에 문을 두드리고 말을 건네어, 그이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합니다.

▲ 책 &#039;담을 허물다&#039; 중 김복주씨 이야기 부분.
▲ 책 '담을 허물다' 중 김복주씨 이야기 부분.

오고가는 이야기는 오롯이 기록되어 높게 쌓인 담에 균열을 주기 시작할 것입니다. 기록된 이야기는 꺼칠꺼칠하고 차가운 담을 흔들 것입니다. 사회가 붙여놓았던 이름들은 오롯이 한 사람의 이름으로, 삶으로 불릴 것입니다. 집단이 아닌 한 사람으로 불리고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이야기될 때, 보다 평등해지지 않을까요?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본다면 누군가를 담 너머로 밀어내지 않고, 이쪽과 저쪽을 나누어 벽을 쌓지 않을 테니까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며

아직은 낯설지만 새로운 세상을 마음껏 상상하며 한걸음씩 내딛겠습니다. 이주민구술생애사 프로젝트 <담>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이 죽음으로만 이야기되지 않도록, 숫자로 남겨지지 않도록, 혐오와 차별의 이름표가 붙여지지 않도록 가라앉은 이야기에 말을 건네어 ‘담’에 균열을 내겠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그이들의 삶이, 이름이 끝없이 이야기되기를 바랍니다.

2017년 12월

이주민구술생애사 프로젝트 <담> 기획단을 대표하여 사월 씀

※ 담 기획단이 발간한 서적 ‘담을 허물다’를 구매하실 분은 기획단 이메일 rotefarhe@hanmaila.net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기획 연재 싣는 순서]

①서문 : “그들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②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이야기 : “쑤쑤!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해요!”
③북한이탈주민 김복주 이야기 : “난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④이주노동자 오쟈 이야기 : “그건 선택이 아니었다.”
⑤이주청소년 황윤호 이야기 : “혼자, 당연한 것 별거 아닌 것 낯선 것”
⑥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 이야기 :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⑦종교적 난민신청자 ‘A’ 이야기 : “그는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⑧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이야기 : “그냥 내 나라예요, 거기도!”

[경기지역이주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 ‘The Rainbow' 소개]

이 프로젝트는 경기지역이주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 The Rainbow (경기이주공대위)에서 기획하여 진행하였습니다.

경기지역이주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이하 경기이주공대위)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추방반대! 노동비자쟁취!’를 위해 2004년에 지역에서 구성한 단체입니다. 노동자연대 경기지회, 노동당 수원/오산/화성 당원협의회, 녹색당 경기도당,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변혁당 경기도당, 수원이주민센터, 아시아의 친구들, 오산이주민센터, 이주노조, 지구인의 정류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화성이주민노동자쉼터가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기이주공대위는 경기지역에서 강제추방 감시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출입국사무소와 보호소의 단속추방 규탄, 이주노동자 문화제와 노동법·인권 교육을 진행하였고 중요한 이주관련 문제에 관하여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언론기고 등도 해 왔습니다. 또한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해 대법원 기자회견과 투쟁에 참여하여 이주노조가 합법화에 기여하기도 하였습니다.

2017년에는 경기이주공대위의 활동을 강화하여 건설현장의 내국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단결을 촉구하는 여러 활동을 하였고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 경기지역 기념대회 및 토론회를 제안하여 성황리에 진행하였습니다. 노동자대회를 맞아 민주노총에 이주관련 유인물 제작을 제안하여 고용허가제로 인한 죽음과 비닐하우스 주거문제 등을 알리는 선전물 5,000부를 직접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청년들을 이간질하고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을 주장하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한 국회의원 홍철호를 규탄하기 위해 김포의 시민단체들과 연계하여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이주공동행동과 함께 이주아동추방, 이민단속 강화하는 트럼프방한규탄 성명과 기자회견을 공동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이밖에도 최근에는 한국인 남성 동료에 의해 살해당한 타이 여성노동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추모하는 추모제와 기자회견을 주도하여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에 미등록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알리기도 했습니다.

경기이주공대위는 매월 1회 회의를 거쳐 경기도내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전반의 인권과 노동권을 증진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경기이주공대위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 경기이주공대위 카페 http://cafe.daum.net/-kmw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