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거듭될수록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활용해 스스로 실생활 미세먼지 정보를 알아보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미세먼지 측정 장소가 일상 공간과 멀리 떨어져 있고, 당국의 발표치가 실시간 자료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강동구에 사는 회사원 신아무개씨의 하루 일과는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켜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집을 나서서, 지하철역에서, 사무실에서 한 번씩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한다. 중국산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7만원에 구매해 사용한 지 1년 정도 됐다는 신씨는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실시간으로 수치를 체크하고 싶기도 했고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주변 사람들에게 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해 초 어느 날은 사무실에서 미세먼지를 측정한 후 측정값을 사장님께 보여드리며 “오늘은 창문을 닫으셔야 한다”고 말했던 적도 있다. 그는 최근 크라우드 펀딩으로 국내 업체의 휴대용 측정기를 두 개 더 샀다.

▲ 지난4월 신아무개씨가 지하철역 안에서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신씨 제공
▲ 지난4월 신아무개씨가 지하철역 안에서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신씨 제공
신씨가 새로 산 휴대용 측정기는 국내 A사의 제품이다. A사는 올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모금했고 목표 금액의 472%인 2360만원을 모았다. 여기에는 소비자 382명이 참가했다. A사 황윤식 대표는 “미세먼지 상황이 워낙 안 좋기도 하고 발표되는 데이터도 1시간 전 데이터다 보니 불안한 소비자들이 일종의 체온계를 사듯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며 “문의의 90%는 어린이와 함께 사는 주부들”이라고 밝혔다.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성은씨는 매일 아침 통학길 지하철로 한강을 건널 때 보이는 뿌연 도시 풍경에 미세먼지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이씨는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씨는 “거의 매일 갖고 다니면서 측정해봤다”며 “그러다보니 지하철이 들어올 때 불어오는 바람보다 열차 내 미세먼지 농도가 더 높다는 내용도 관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휴대용 측정기를 직접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곳은 서울시 산하의 서울디지털재단이다. 재단은 지난 10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시민 메이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육 대상 시민 60명을 대상으로 6주간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열흘만에 137명이 지원했다. 서민영 서울디지털재단 미래사업팀 책임은 “돌아다니다보면 전광판 등에 시내 미세먼지 농도 측정 수치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우리 집’ 수치는 아니다”라며 “그런 차원에서 자신과 가까운 데에서 재보자는 수요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 한 시민이 직접 만든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지하철에서 시험해보고 있다. 사진=서울디지털재단 제공
▲ 한 시민이 직접 만든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지하철에서 시험해보고 있다. 사진=서울디지털재단 제공
실제로 재단 교육에 참여한 시민 전원은 각자 휴대용 측정기를 최소한 한 개씩 만들었다. 레이저 센서를 활용해 특정 범위 안에 들어있는 불순물(미세먼지) 입자의 수를 세 화면에 표시하는 방식이다. 재단은 또 측정기에 GPS를 탑재해 인터넷에도 연결했다. 측정기가 켜져 있으면 시민들이 일상 공간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가 자체 홈페이지에 기록돼 그래프로 나타난다. 14일 현재 서울시내에서는 시민들이 만든 측정기 14개가 1분 단위로 측정값을 전송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환경 당국이 발표하는 미세먼지 측정값을 보완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상돈 서울디지털재단 전략기획팀장은 “미세먼지 측정소가 실제 시민들의 생활 공간에 없는 상태이다보니 기존 데이터의 보완으로서 세부적이고 작은 단위의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 시민들이 직접 만든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의 측정값이 전송되는 홈페이지 ‘서울 공기 우리가 지켜본다’ 갈무리.
▲ 시민들이 직접 만든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의 측정값이 전송되는 홈페이지 ‘서울 공기 우리가 지켜본다’ 갈무리.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울시내 도시대기측정망의 위치가 너무 높다는 점을 짚었다. 당시 송 의원은 “측정구 높이가 시민들이 호흡하는 위치보다 높기 때문에 측정 결과가 시민들의 체감 오염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도시대기측정망의 설치 기준은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의 2016년 ‘대기오염측정망 설치·운영지침’에 규정돼 있다. 지침에 따르면 시료채취구의 높이는 원칙적으로 사람이 생활·호흡하는 높이인 지상 1.5~10m로 하되 불가피한 경우 외부 조건에 최대한 영향이 적은 곳을 택해 높이를 조정할 수 있다. 이때 높이는 30m를 초과하지 않게 했다.

그런데 송옥주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도시대기측정소 25곳의 시료채취구 높이 평균은 15m로, 지침에서 규정한 것보다 약 5m가 더 높았다. 서대문구와 마포구에 설치된 측정소는 각각 24.6m와 27.8m로 20m를 훌쩍 넘었다. 또 당국이 발표하는 오염도는 한 시간마다 한 차례 발표하다보니 실시간 정보를 알고 싶을 경우에는 휴대용 측정기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휴대용 측정기의 데이터는 정확할까. 휴대용 측정기 2개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B회사의 경우 올해 7달동안 측정기 약 2400개를 판매했다. B회사의 정아무개 마케팅 부장은 “수 천만원이 넘는 TSI 계측기나 ‘그림’사의 측정기와 비교해봤을 때 수치값이 90% 이상 일치했다”고 말했다.

▲ B사의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시연해보고 있다. 측정기를 들고 흡연구역 근처로 가자 초미세먼지(PM2.5)의 수치가 빠르게 올라갔다.
▲ B사의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시연해보고 있다. 측정기를 들고 흡연구역 근처로 가자 초미세먼지(PM2.5)의 수치가 빠르게 올라갔다.
박기홍 광주과학기술원(GIST)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국내에서 표준 및 인증 시스템이 없어 시중에 판매되는 휴대용 측정기의 정확성에 대해 일반 사용자들은 거의 알 수 없다”며 “종류에 따라 틀리지만 오차값이 10%가 아니라 훨씬 클 수 있어 지속적인 보정 및 유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그러나 “정확한 값을 제공하지는 못하더라도 고농도, 저농도 등 큰 구간에 대한 정보는 빠르게 얻을 수 있고, 이러한 정보가 개인에게 직접 노출되는 미세먼지 농도라 측정소의 농도보다 매우 중요하고 유익하다”고 강조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도시대기측정망 설치 기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대기환경연구과 관계자는 “최대 30m 높이를 초과할 수 없게 했던 규정을 20m로 강화하는 개정안을 추진 중”이라며 “환경부의 검토가 끝나면 늦어도 내년 초에는 개정안이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설치돼있는 측정소에 더해서 일시적으로 측정이 필요할 때 활용되는이동측정차량을 이용해 측정값을 보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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