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한국에서도 ‘#미투’가 가능할까?
한국에서도 ‘#미투’가 가능할까?
[비평] ‘한샘 성폭력 사건’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 의미 있지만 여성 목소리 충분했을까

미국의 유명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6일(현지시간)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을 선정했다. 소셜 미디어에서 진행된 ‘#MeToo’(미투·나도 당했다) 캠페인에서 자신이 겪은 성폭력 경험을 증언한 이들이다. ‘미투’ 캠페인은 지난 10월 미국 헐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이 폭로되면서 촉발됐다.

‘미투’ 캠페인은 연예계를 넘어 정계와 언론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마크 핼퍼린 NBC 정치분석가의 계약이 중지됐고, 로이 프라이스 아마존 대표는 사임했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배우 케빈 스페이시씨도 에미상 수상이 취소됐다. 여성들의 용기있는 폭로와 연대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피해 여성들의 폭로에 해당 업계의 동료와 관계자, 또 사회 전체가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 12월9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제작진은 백 건이 훌쩍 넘는 성폭력 피해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 12월9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제작진은 백 건이 훌쩍 넘는 성폭력 피해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지난 9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세 번의 S.O.S, 그리고 잔혹한 응답 – 한샘 성폭행 사건’편은 한샘 신입사원 성폭행 사건으로 알아본 우리나라 성폭력의 실태를 진단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 10월 말 인터넷 사이트 ‘네이트 판’에 한샘의 신입사원 김지영씨(가명)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그것이 알고싶다’로 밝혀진 김씨가 겪은 일을 나열해보자. 김씨는 지난해 동료가 몰래카메라를 찍으려 했다는 사실을 신고 후 해당 사건에 도움을 준 사람이자 교육 담당자였던 강아무개 계장에게 한 차례 더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김씨의 의사를 반영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회사 인사팀은 가해자에 적절한 처벌을 내리기는커녕 김씨에게 진술서 수정을 요구했다. 수정된 진술서로 인해 강 계장의 징계는 해고에서 정직 3개월로 완화됐다. 동료들로부터 ‘꽃뱀’이라고 비난 받았다. 부서 이동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인사팀장도 김씨를 강간하려고 했다. 인사팀장은 해고됐지만 김씨는 ‘풍기문란’이라는 사유로 6개월간 10% 감봉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처럼 폭로의 대가는 가혹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김씨가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불합리한 일들을 끈질기게 추적해 밝혔다. 그 과정에서 김씨가 강 계장으로부터 고소 취하 압력을 받았다는 점과 경찰의 새 수사관이 김씨가 고소를 취하한 후에야 연락을 시도했다는 점도 알아냈다.

제작진이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강 계장에 대해서 검찰은 결국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김씨와 강 계장 사이의 관계에서 강제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김씨가 자발적으로 모텔에 들어갔고, 피임 도구를 써 달라고 요청했으며 자발적으로 고소를 취하했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였다.

▲ 12월9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 12월9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제작진은 이로부터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지적했다. 방송에서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가 피해자라고 하는 ‘상’이 있다”며 “흠잡을 데 없는 순진무구한, 순결한 여성, 그리고 적극적으로 어떤 피해 상황에서 죽을 만큼 대응해야 하는 여성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경 우석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동의 여부에 초점을 맞추면 상황이 달라진다”며 “동의 여부에 초점을 둬야 하는데 거부했느냐에만 우리 사회가 너무 집중해서 바라본다”고 꼬집기도 했다.

방송이 꼽은 유일한 방법은 “적극적인 폭로”다. 그러면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일어난 ‘미투’ 캠페인을 긍정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그런데 앞서 한샘 사건의 피해자인 김씨가 겪어야 했던 불합리한 일들이 모두 피해 경험을 회사에 알린 후 벌어졌던 일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보여줬듯이 성폭력 피해자가 용기를 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용기를 내도 한샘의 피해자처럼 수차례의 2차 가해에 노출될 위험도 있다. 지난 10월 김씨가 인터넷에 그의 경험을 공유하고 나서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꽃뱀’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폭로를 해도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지기는 힘든 상황임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염려되는 대목이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긍정적인 사례로 꼽은 ‘미투’ 캠페인의 경우 폭로 이후 업계의 적극적인 대처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처벌받았거나 적어도 이전 범죄 사실에 대한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이 우리의 경우와 다르다.

또 아쉬운 부분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폭로 캠페인이 있었음에도 언급을 빠트린 점이다. 바로 ‘#○○계_내_성폭력’ 캠페인이다. 예컨대 ‘#문단_내_성폭력’ 캠페인에서는 현재 활동중인 시인 및 소설가 수십명에게 위계에 의한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몇몇 문인들은 이를 인정하고 자숙 기간에 들어가기도 했다. ‘미투’ 캠페인보다 규모는 작았을지언정, 문단의 자성을 촉발하고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반성적인 시각을 이끌어냈음에도 언급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 '그것이 알고싶다' 트위터 공식 계정에서 방송 전 올린 홍보 이미지. 방송에 참여한 유명 인사들의 얼굴이 담겼다. 사진='그것이 알고싶다' 트위터 공식 계정
▲ '그것이 알고싶다' 트위터 공식 계정에서 방송 전 올린 홍보 이미지. 방송에 참여한 유명 인사들의 얼굴이 담겼다. 사진='그것이 알고싶다' 트위터 공식 계정
또 이번 방송은 연예인 유재석씨와 인기 그룹 엑소(EXO)의 카이씨, 유병재씨,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며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됐다. 제작진은 이들을 성관계에서 동의 여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침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이끌어내는 데 활용했다.

방송은 후반부에서 마이클 키멜 스토니브룩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성폭력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비판이 이는 대목도 이 지점이다. ‘침묵하지 않겠다’며 나선 이들은 모두 남성 유명인사들이었다. “여성들의 용기있는 고백에 남성들도 응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방송 후반부에서 이어진 남성 유명인들의 다짐은 자칫 ‘우리가 도와주겠다’는 시혜적인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면에서 비판 받을 여지가 컸다. 방송에서 이나영 교수가 “특히 직장 안에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 상사 편을 드는 게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에서 안전한 위치를 보장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일종의 카르텔이 형성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과 연결시킨다면 이러한 내용을 구성한 제작진의 의도도 짐작할 수 있다. 성폭력 문제 해결에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짚어낸 ‘그것이 알고싶다’의 노력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도 여성들에게 충분한 발언권을 줘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10일은 세계인권선언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어느때보다도 인권, 특히 성평등 문제에 관련된 관심이 높아져 있다. 한샘의 성폭력 사건도 이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한층 더 높였고,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 높아진 관심 속에서 생각해볼 지점을 짚어낸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방송으로 인해 시청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닫고 연대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면 그것도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수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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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2017-12-10 15:35:14
김지숙 기자의 '그알' 기사는 처음 읽어보는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