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생명권을 보장하라. 청와대는 건강권을 보장하라.” 2일 오후 세종로 공원 앞에 모인 시민 500여명이 ‘그래서 낙태죄 폐지는요’,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등의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2일 오후 세종로 공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낙태죄 폐지를 요구했다. 지난 26일 ‘낙태죄 폐지 요구’ 국민청원에 조국 민정수석이 홈페이지와 유튜브 등을 통해 공식 답변을 내놓은 지 약 일주일만이다. 이에 참가한 건강과대안, 성과재생산포럼, 한국여성민우회 등 11개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해왔다.
시민단체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나영 활동가는 선별적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는 현행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성폭력의 맥락을 제대로 이야기하고 임신을 중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피해자는 얼마나 많은 낙인과 차별을 감당해야 할까”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르면 △부모가 우생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흠결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서 임신된 경우 등에만 예외적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 앎씨는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여성은 수사기관에 의한 2차 피해를 받거나 무고죄로 몰릴 위기에도 처해진다”고 밝혔다.
장애여성인권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의 노다혜 활동가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 일반 여성보다 산부인과 진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 활동가는 “국가는 국민으로서, 시민권을 가진 개인으로서 장애여성의 권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가 정부에게 바라는 것은 친절함이 아니라 명확한 입장과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유림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은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고 강조했다. 이 기획위원은 “호주제 폐지의 역사를 살펴봐도 법무부가 직접 민법개정안을 제출해 폐지를 이끌어냈다. 행정부 소관이라는 것”이라며 “지금 청와대는 헌법재판소 위헌법률심판이 진행 중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위헌법률심판은 길게는 10년도 걸린다”고 즉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날 세종로 공원 앞 인도에서 집회를 시작한 뒤 행진을 시작해 경복궁과 자하문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거쳐 다시 공원 앞으로 돌아와 집회를 이어갔다. 이날 참가자들은 생식권(임신, 출산, 피임 등등 여성의 생식기능과 관련된 사항에 있어서 여성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검은 색 옷을 입거나 검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한편 청와대는 지난 26일 ‘친절한 청와대’ 영상을 통해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국민 청원에 답변했다. 영상에서 조국 민정수석은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재개하겠다며 “실제 법 개정을 담당하는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