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13 총선 기간 중 국회의원 낙선운동을 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1일 오전 오세훈, 윤상현, 황우여, 이노근, 김을동, 나경원, 김석기, 최경환, 김진태, 김성태 등 정치인 10명에 대해 지난해 불법 낙선운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비롯한 ‘2016년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 관계자 22명 전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안 사무처장은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 받았고, 나머지 관계자들은 관여 정도에 따라 50만원~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집회를 개최하고 △확성 장치 등을 사용했으며 △후보를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현수막 등 광고물을 게시했다는 등의 공소 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후보에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을 게시하고 확성기를 사용하는 등 통행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방식으로 집회를 진행했다”며 “이는 의견을 개진하기 위한 기자회견이 아니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열린 집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넷’ 측은 당시 행사가 집회가 아니라 기자회견 형식이었고, 후보 이름이 적시되지 않은 현수막 및 피켓을 사용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총선넷’이 사용한 현수막에는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 낙선투어 기자회견, 이것도 모르고 찍지 마오~, 이런 후보 찍지마오~”라고 적혀 있었다.

반면 재판부는 ‘총선넷’이 홈페이지에서 35명의 집중 낙선 대상자 중 ‘최악의 후보’ 10명을 뽑도록 한 사실은 무죄로 봤다. 앞서 검찰은 이 같은 행위를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응답을 유도했다”며 선거법 규정에 어긋나는 여론조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온라인 투표는 원하는 사람이 직접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당초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자 선정이 불가능하다”며 불법 여론조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지난 20일, 참여연대는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총선넷’ 무죄를 탄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참여연대
▲ 지난 20일, 참여연대는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총선넷’ 무죄를 탄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참여연대
이번 선고는 대표자·책임자뿐 아니라 단순 실무자도 유죄 선고를 받았고, 벌금의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종전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례와 비교했을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소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감사는 “이전까지의 낙선운동 사례를 보면 대표자나 책임자 두 세명만 기소당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번에도 단순 참가자는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고 말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인 김선휴 변호사는 “자신이 든 피켓뿐 아니라 기자회견 현장에 존재하는 모든 피켓에 대해서 혐의를 적용한 것 같다”며 “또 다른 사람이 발언한 것까지 공소장에 포함됐다. 이번 선고 결과가 당황스럽고 화가 난다”고 밝혔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22명 중에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한 번도 발언을 하지 않은 참가자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전까지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례를 살펴볼 때 200만원~3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된 것도 이례적이다. 김 변호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벌금은 100만원을 넘느냐 안 넘느냐가 관건”이라면서 “피선거권 박탈 기준이 100만원이라 이 선을 넘으면 굉장히 큰 처벌”이라고 밝혔다. 공직선거법 제266조에 따르면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는 형 확정 후 5년 간 공직 임용이 제한된다.

대표적으로 2000년 치러진 제16대 총선에서 박원순 등 당시 총선연대 중앙집행부 7명은 공천반대인사 66명을 선정·발표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들은 100만원의 절반인 벌금 50만원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받은 안진걸 처장은 “기존 선거법 판결에 비해서도 더 가혹한 최악의 판결”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안 처장은 “황당한 선거법에 황당한 선관위, 황당한 재판부”라며 “판사가 신도 아닌데, 기자회견을 임의로 집회로 판단했다. 모든 행위를 불법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에 기존 판례보다 더 후퇴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측은 법 적용의 형평성 문제도 지적했다. 장소화 간사는 “보수단체의 낙선운동은 기소가 안 되고 의원들 이름도 적시하지 않은 ‘총선넷’이 기소됐다”며 “법이 형평성 없게 적용된 데 대해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제20대 총선 기간 당시 ‘월드피스자유연합’과 ‘4대개혁추진국민운동본부’는 ‘총선시민연합2016’이라는 연대를 만들고 총선 낙선 대상 후보자 명단을 발표했다.

한편, 이번 선고를 계기로 참여연대 측은 본격적으로 선거법 개정 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장 간사는 “전면 개정해야 할 정도로 선거법에는 과도한 제한이 많다”며 “그 중에서도 제90조와 제93조는 꼭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직선거법 제90조는 시설물설치 등의 금지에 관한 조항으로,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해 현수막 등을 집 앞이나 차에 붙여놓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제93조는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의 유인물 등을 배포 및 게시할 수 없게 한 조항이다. 이들 조항 모두가 이번 ‘총선넷’ 재판에서 문제가 됐다.

장 간사는 “이 조항들 때문에 시민들은 정당들이 유세 벌이는 걸 구경하는 게 정치 참여의 전부라고 보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이기 때문에 꼭 폐지해야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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