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기사에 대해 직접 수정을 요청했던 양상우 한겨레 사장(대표이사)이 23일 “유쾌하지 않은 일로 입길에 오르내린 것에 대해 반성의 마음을 담았다”면서 “편집권 침해 의도는 없었다”고 입장을 냈다.

이에 한겨레21 기자들뿐 아니라 한겨레 기자들을 포함한 구성원들은 “편집권 침해 행위를 인정하는 게 먼저”라고 비판했다. 양 사장이 편집권 침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자 한겨레21을 넘어 한겨레 편집국으로 문제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양 사장은 지난 6일자로 나온 한겨레21 1186호 표지이야기 ‘어떤 영수증의 고백’ 기사가 최종 출고되기 전 출력물을 펜으로 그으며 문제점을 지적해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에게 전달하고 표지에서 뺄 것을 주문했다.

▲ 한겨레21 1186호 표지
▲ 한겨레21 1186호 표지

한겨레21 기자들은 “이들(한겨레 경영진)의 말이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LG쪽 해명 및 부탁과 정확하게 일치해 깜짝 놀랐다”며 양 사장이 편집권 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김종구 편집인뿐 아니라 고경태 출판국장도 해당 기사가 표지이야기 감으로 적절치 않고 콘텐츠 질을 높이기 위해 사장이 기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은 지난 21일 “(한겨레21 기사 관련) ‘최종적 결정권’은 한겨레 사장 혹은 주주로부터 위임된 권한이라 편집인 또는 사장 의견을 경청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며 “사장이 기사에 대한 여러 의사 표시를 한 사실은 있지만 편집권을 결정적으로 침해하는 선을 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틀 뒤 양 사장은 최근 논란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오해와 갈등을 풀고, 당면한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한겨레 노보, 한겨레21 기자들의 성명 등을 통해 수많은 사실이 오갔지만 쏟아지는 ‘사실’ 중 일부는 내가 아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며 편집권 침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겨레 경영진은 최근 삼성 광고가 줄면서 매출 증대 방안에 대해 고민 중이다. 한겨레 광고 담당 임원은 해당 기사가 나오기 전 한겨레21 취재기자를 만나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며 “LG는 고마운 기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5일 한겨레가 주최하는 ‘2017 아시아미래포럼’을 소개하는 기사가 1면에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행사 협찬 기업에는 LG 계열사들도 있었다.

▲ 15일자 한겨레 1면 기사
▲ 15일자 한겨레 1면 기사

양 사장은 “이번 논란에 관한 한겨레 구성원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위태로운 한겨레의 물적 기반을 지탱하려 백병전을 치르는 모든 동료 여러분께도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양 사장이 편집권 침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문제를 봉합하려 하자 한겨레 구성원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 양상우 한겨레 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7 아시아미래포럼'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한겨레가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한 해당 행사 협찬기업에는 LG계열사들도 포함됐다. 사진=한겨레TV 화면 갈무리
▲ 양상우 한겨레 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7 아시아미래포럼'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한겨레가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한 해당 행사 협찬기업에는 LG계열사들도 포함됐다. 사진=한겨레TV 화면 갈무리

양 사장이 입장을 낸 지 반나절 만에 한겨레 기자 등 구성원 78명은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태 본질은 편집권 독립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수호해야 할 한겨레 사장이 기사를 직접 데스킹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사장은 이 ‘진실’을 ‘거친 지적’, ‘애써 취재한 기사에 대해 격려보다 지적부터 전해 듣게’한 일로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러면서 ‘편집장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실제로도 그러했다’며 책임을 한겨레21 편집장에게 떠넘겼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구성원들은 “편집권을 침해해놓고 꺼낸 ‘존중’은 문제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면피성 발언에 불과하다. 참담하고 부끄러운 심정”이라며 “출판국장과 편집장이 편집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해도 ‘사장의 편집권 침해’라는 사태의 본질을 감출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 편집인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이들은 “편집인은 사장의 편집권 개입을 방조했다”며 “문제가 공론화한 뒤에는 ‘너무 조악하고 침소봉대’, ‘함량이 떨어진다’는 인격 모독성 표현을 동원하며 해당 기사를 극단적으로 깎아내리고 편집권 개입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데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김 편집인은 지난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도 “발제만 봐도 함량이 떨어졌다”, “격의 없이 논쟁하는 게 한겨레 아름다운 전통인데 이런 식으로 나왔다”, “논리 전개, 사실 조합 등 모든 면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기사여서 한두 군데 손봐서 될 일은 아니었다”, “(취재기자의) 경제 기초상식을 의심하게 한다”, “박근혜 정부 화이트리스트 실상이 얼마나 쏟아졌는데 갑자기 (취재기자는) 별나라 있다가 온 것 같이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고 하니 허무하다” 등 해당 기사와 취재기자 등을 평가했다.

한겨레 구성원들은 “우리는 이번 사태를 ‘질 낮은 표지기사를 고집해 분란을 일으킨 한겨레21’과 ‘콘텐츠 질 제고 차원의 개입이 지나쳤던 경영진’이라는 양비론으로 규정하는 시각을 단호히 배격한다”며 “편집권 침해 인정, 재발 방지 대책의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대책 마련 요구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파국을 막을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사장의 행동을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