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10일 제주도 성산읍 수산1리·신산리·난산리·온평리 주민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국토교통부가 “제주도 관광 활성화로 급증한 항공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한다”며 이들 마을을 공항 부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은 관련 기사를 보고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마을이 공항 부지로 선정된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그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일손도 다 놓고 모여서 오로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하는 말만 했어요.” 제주도청 앞에서 26일 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성산읍 주민 김경배 성산대책위(‘제주 제2공항 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고향이란게 삶의 터전이자 생명인데 국토부는 지역 주민에게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정했다”며 “첫 단추부터 잘못 꿰진 것이고 이를 제대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공항 건설 강행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2년 동안 반대운동을 해왔다.

▲ 김경배 대책위 부위원장이 단식 15일 차인 지난 10월 25일 제주도청 앞 천막농성장에 앉아 있다. 사진=오신범씨 페이스북
▲ 김경배 대책위 부위원장이 단식 15일 차인 지난 10월 25일 제주도청 앞 천막농성장에 앉아 있다. 사진=오신범씨 페이스북

“주민의견 들으면 10년,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국토부

김 부위원장은 지난달 10일 ‘제주 제2공항 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이하 성산대책위), ‘제2공항 전면재검토와 새로운 제주를 위한 도민행동’(이하 도민행동) 등과 함께 제주도청 앞에 천막농성장을 세우면서 단식을 시작했다. 계기는 지난 9월 추석 전 국토부가 제주도청에 ‘타당성 평가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조기 착수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그는 “기본계획 수립이 착수돼 버리면 공항 건설 강행은 더 막기 어려워질 게 뻔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2년 동안 제기하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전혀 지켜지지 않은 데다 마을 부지 선정 근거가 된 용역보고서가 엉터리”라는 것이다.

이들 마을은 ‘성산지구’로 분류된다. 성산지구는 2015년 9월 제2공항 부지 선정 관련한 도민 설명회가 열리기 전까지 공항 후보로 물망에 오른 적이 없다. 대책위에 따르면 도민설명회에서도 ‘검토 대상’ 수준으로 언급됐다. 이보다 앞서 진행된 2012년 ‘제주공항 개발 구상연구’ 용역보고서에도 이들 지역은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2012년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제주공항 확장안이 최적의 방안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기존 공항을 폐쇄하고 새로운 공항을 짓는 신공항 건설안도 주요하게 검토됐다.

김 부위원장에 따르면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어떻게 지역주민도 모르게 정할 수 있느냐’고 반발한 주민들에게 “예상후보지를 상대로 투기가 마구 활기를 치고 있었다”며 “사전에 공개를 했다면 감당이 안된다”고 답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민의견을 들으면 10년,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우리가 고향 버려야 할 ‘합당한 이유’ 대달라… 용역보고서 재검증 좀 해달라”

김 부위원장은 당초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청와대, 국토교통부, 국회, 한국개발연구원(KDI) 앞을 찾아가 1인 시위를 했다. 그러는 도중 이들은 국토부가 근거로 제시한 2015년 용역보고서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 타당성 검토 용역’을 직접 분석했다. 현재 성산대책위 홍보차장을 맡고 있는 제주도 출신인 오신범씨가 수 개월 간 해당 작업을 진행했다.

▲ 김경배 대책위 부위원장이 단식 14일 차인 지난 10월 14일 제주도청 앞에서 1인 연좌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오신범씨 페이스북
▲ 김경배 대책위 부위원장이 단식 14일 차인 지난 10월 14일 제주도청 앞에서 1인 연좌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오신범씨 페이스북

애초 “민주적 절차가 실종됐다”고 비판한 주민들은 용역보고서 검토 결과를 보고 “부실 용역보고서를 전문가에게 맡겨 재검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책위는 2015년 용역보고서를 ‘허위 보고서’라 못박고 지난해 12월28일 용역을 수행한 김병종 항공대 교수 등 5명을 제주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오신범씨는 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용역진이) ‘정석비행장’ 측의 비공식 기상데이터를 인용한 뒤 성산기상대의 자료를 인용했다고 조작·제출했다”고 주장했다. 정석비행장은 대한항공 소유의 민간항공 비행장으로 2005년 경부터 ‘제주 제2공항 부지’로 거론돼온 곳이다. 용역진은 평가항목 분석 중 ‘기상(연간 안개 발생일수)’ 항목에서 정석비행장의 연간 안개 발생일수 기상데이터를 활용하고도 ‘성산기상대’ 데이터라고 출처를 명기했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단순 오타’라고 해명했지만 대책위는 “같은 항목의 ‘바람’ 데이터에는 ‘성산기상대’라고 출처를 제대로 명기했다”며 허위 해명이라는 입장이다.

오 씨는 환경성 평가도 부실하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으로 ‘오름절취’ 문제와 ‘수산동굴 훼손’ 쟁점을 지적했다. 오름절취 문제는 2015년 용역보고서도 ‘성산읍과 구좌읍 일대 10개 오름이 저촉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씨는 “오름 절취해야 하는데 환경성에서 가장 높은 점수 받았고 산(오름)을 자르면 토공량이 나오는데 그 부분도 거의 만점을 받았다”며 “항공법 상 오름이 장애물로 분류되는데 장애물 항목도 만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오씨는 부지에서 1km 가량 떨어진 곳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산동굴’이 있음에도 용역진이 이 부분과 관련된 항목에도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용역보고서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및 곶자왈과의 중첩이 없으며, 관리보전지역(경관, 생태계, 지하수자원)과 훼손을 최소화하고 산재된 용암동굴과도 중첩되지 않음’이라고 썼지만 명백한 거짓”이라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문제는 주민들이 직접 문제제기를 하며 용역 연구 재검증 요구를 해도 국토부와 제주도청은 전혀 듣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공항 건설 부지 선정 이후에도 주민들이 절차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지적이다.

김 부위원장은 “남의 생명을 뺐으려면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우리는 우리가 떠나야 하는 합당한 이유를 대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라 말했다. 그는 이어 “절차를 중단하고 첫 단추인 용역보고서가 잘 됐는지 못됐는지 검증을 한 후 진행하자”며 “잘못된 게 없다면 대책위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 지난 9월18일 열린 '제주 제2공항 추진상황 설명회'는 성산대책위 등 제주도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대책위는 기본계획 수립 용역 발주를 하기 위해 형식상 '공론화' 절차를 거치는 것이라 반발했다. 사진=오신범씨 페이스북
▲ 지난 9월18일 열린 '제주 제2공항 추진상황 설명회'는 성산대책위 등 제주도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대책위는 기본계획 수립 용역 발주를 하기 위해 형식상 '공론화' 절차를 거치는 것이라 반발했다. 사진=오신범씨 페이스북

공군, 새 부대 창설에 ‘제2공항’ 언급… “미군 군사기지화 일환 아니냐” 의혹도

지난 3월 정경두 당시 공군참모총장(현 합참의장)은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서 열린 ‘딘 헤스 미 공군 대령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해 “제주에 남부탐색구조부대를 창설할 계획으로, 부대 위치는 제2공항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가 국토부·제주도청의 일방적인 건설 강행 이유로 ‘제2공항 군사기지화’ 의심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국방부의 남부탐색구조대 설치사업은 총 사업비 2950억 원 규모로, 2021부터 2025년까지 추진될 예정이다. 연구용역은 2018년 착수될 예정이다. 정경두 전 공군참모총장은 지난 8월18일 합참의장으로 임명됐다.

오 홍보차장은 “당시 제주 강정 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에 관여했던 송영무 해군참모총장이 현재 국방부 장관이고 정경두 전 공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이 됐다”며 “제2공항도 공군기지화될 의심을 배제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대책위는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부터 “제주도를 미국의 대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거점으로 삼겠다는 정부 의도가 명확히 드러났다”고 비판하고 있다.

공군 측은 이에 남부탐색구조부대는 현 공군 제6탐색구조비행전대의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서 조난당한 조종사 등을 안전하게 구조하는 임무를 담당할 것이라 밝혔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4월 제주도의회 답변을 통해 “성산에 설치될 제2공항은 공군의 어떠한 부대 시설과 사용을 배제한 채 (진행되도록) 새 대통령과 협의해 쟁점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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