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보궐이사 선임에 반발해 국회 국정감사를 전면 보이콧했다가 지난달 30일 복귀한 자유한국당이 국감 마지막 날인 31일에도 상복(喪服)인 검은색 정장을 입고 국감에 임했다.

그러나 이번 국감에서 야심 찬 대여투쟁을 예고했던 한국당은 역설적이게도 당내 갈등과 공공기관 채용 비리 연루 등으로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30일 국감 복귀를 추인받은 의원총회에서 “우리가 당분간 여러분이 동의해 주면 공영방송이 사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검은 넥타이를 매겠다”며 “오늘부터 국감에 들어가면 우리의 의사표시 차원에서 상임위 노트북에 ‘민주주의 유린, 방송장악 저지’라는 문구를 부착하도록 하겠다”고 주문했다.

정 원내대표는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국감 중단은) 야당으로서 언론장악 음모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 수단이었는데, 이번에 국감을 재개하고 대여투쟁 강도를 높여가는 것에 대해 의원들이 같이 추인해 줬다”면서 “국민도 왜 우리가 국감 중단까지 하면서 이러한 사태에 임했는지에 대한 이해도나 인지도가 훨씬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31일 국감 대책회의에서도 “이번 국감 복귀는 투쟁의 현장을 국회와 국감장으로 넓혀 더욱 강력한 원내투쟁, 입법투쟁, 예산투쟁에 새롭게 돌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앞으로 문재인 정권의 독선과 독주,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극단화되는 상황이 지속한다면 한국당은 ‘강력한 제1야당’으로서 ‘단호한 추가 행동’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 국회 국정감사 보이콧 방침을 철회하고 복귀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31일 상복에 공영방송 근조 리본을 달고 국감장에 나왔다. 사진=민중의소리
국회 국정감사 보이콧 방침을 철회하고 복귀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31일 상복에 공영방송 근조 리본을 달고 국감장에 나왔다. 사진=민중의소리
결과적으로 한국당의 국감 보이콧과 복귀 명분은 초라했다. 정권 교체 후 야당이 된 한국당이 문재인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국정감사까지 보이콧 했는데도 한국당의 ‘방송 장악’ 프레임에 공감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실제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7일 전국 성인 500명(응답률 4.2%)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4.4%p)에 따르면, 구여권 추천 방문진 이사 2명이 최근 사퇴한 후 방통위가 방문진 보궐이사를 선임한 것에 대해 '불공정 방송의 정상화'라는 응답은 55.6%로 나왔다.

반면 ‘정부·여당의 방송 장악’이라는 응답은 26.8%(잘 모름 17.6%)로 공영방송 보궐이사 선임에 찬성하는 응답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보수 야당들의 반발에도 국민 다수는 공영방송 적폐에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 방침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 방문진 보궐이사 선임 ‘방송정상화’ 56%, ‘방송장악’ 27%]

한국당이 지난달 26일 국감 보이콧 선언 후 나흘 만에 국감 복귀로 결기가 꺾인 이유도 국감 등 국회 일정 보이콧을 이어가 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지난달 초에도 부당노동행위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장겸 MBC 사장 ‘지킴이’을 자임하며 정기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고 장외투쟁까지 돌입했지만, ‘문재인 정부 방송 장악’ 프레임이 여론의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자 슬며시 국회로 복귀한 바 있다.

지난달 27일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출석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만 하더라도 애초 여야의 격돌이 예상됐지만, 한국당이 빠진 채 고 이사장은 국감 위원들에게 집중포화를 받았다.

고 이사장은 오전 국감이 끝난 뒤 한국당 의총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져 과방위원들의 질타를 받는가 하면, “MBC가 공영방송이냐”는 질문에 “공영방송의 정의가 뭔지 모르겠다. MBC는 주식회사다”고 답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아울러 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 이상은 회장이 최대주주인 ‘다스’(DAS)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이 국감 이슈로 떠오르면서 한국당 친이계를 중심으로 국감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커졌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국감 복귀 후 대응 방안으로 “의원들이 질의할 때 여당에서는 ‘다스가 누구 것이냐’고 묻는다고 한다”며 “우리도 지금부터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음모와 유엔 북한규탄 결의안에 기권한 사태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질의 시작할 때 한마디씩 꼭 해 달라. 이것도 하나의 투쟁 방안”이라고 당부했다.

▲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달 26일 방송통신위원회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 선임에 반발하며 국회 국정감사를 전면 '보이콧'하고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달 26일 방송통신위원회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 선임에 반발하며 국회 국정감사를 전면 '보이콧'하고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하지만 한국당의 국감 복귀는 외려 정치권의 야유 대상이 됐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한국당의 국감 복귀 결정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따른 방통위의 이사 선임을 두고 국민과 헌법이 보장한 국감 전체를 보이콧하는 것에 국민은 납득할 수 없다”며 “MBC와 관련한 이야기만 나오면 돌변하는 제1야당이 공영방송을 망쳐온 인사들을 옹호하기 위해 스스로 ‘한국당 패싱(passing)’의 길로 들어서는 길이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한국당이 원내투쟁을 운운하기 전에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방송장악'의 잔혹사를 반성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고, 바른정당은 “한국당의 복귀에 국민은 큰 관심 없고 시간만 날렸다”고 꼬집었다. 박정하 바른정당 수석대변인은 “한국당은 100석이 넘는 거대 제1야당이지만 처절한 자기반성과 혁신의 토대 없이는 매번 이렇게 초라해질 수 있음을 고언한다”며 “이런 식의 대응만이 전부인 양 하다가는 양떼목장의 늑대 신세가 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이날 한국당의 국감 보이콧 투쟁에 대해 “최근에는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을 놓고 친박과 비박으로 양분돼 이전투구를 벌이면서 국민에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제 집안 단속도 안 되는 마당에 뜬금없는 가출 쇼까지 벌이는 것은 콩가루 집안이라는 것을 사방에 광고하는 한심한 모습일 뿐”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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