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후퇴시킨 대통령들의 불법행태는 대개 5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국민을 우롱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손실은 한국사회의 정의, 신뢰, 사법부를 훼손해 불신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부정·비리가 드러나면 부인하거나 거짓말부터 하는 것이 첫 단계다. 그러다가 거짓말이 부분적으로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하면 측근을 탓하는 것이 2단계다. 결국 사법부로 넘어가게 되면 정치보복이나 사법부의 공정성을 탓하며 투쟁하는 것이 3단계다. 마지막으로 법의 단죄를 피할 수 없게 되면 그렇게 부정하던 사법부의 특혜·사면을 택하는 것이 4단계. 다시 전직 대통령 예우와 함께 국가원로 대우를 받으며 자서전 발간 등을 통해 역사왜곡에 나서는 것이 마지막 5단계다.

재판 보이콧을 선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수순을 한치의 오차없이 따라가고 있다. 그 뒤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쫒아가는 형국이다.

첫 단계로 드러난 부정, 비리에 대해 부인이나 거짓말로 대응하는 행태는 박 전 대통령이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박 전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실종사건에서 30분이 조작됐다는 최근 발표가 나왔다. 골든 타임 30분이 아니라 어쩌면 7시간 30분 자체가 거짓이며 그날 보고나 지시가 제대로 있었는지 불신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아직도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세계일보가 2014년에 ‘청와대 십상시’ 건으로 특종을 터뜨리자 거꾸로 문건유출 사건으로 규정, 언론사를 겁박하는 방식으로 큰 비리를 덮기도 했다. 

▲ 지난 10월12일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춘추관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세월호 사고 당일 상황보고일지와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불법 변경, 조작에 대해 긴급 브리핑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 지난 10월12일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춘추관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세월호 사고 당일 상황보고일지와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불법 변경, 조작에 대해 긴급 브리핑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노태우 전 대통령도 4천억 원 비자금설이 터지자 “전직 대통령 이름을 아무데나 갖다 붙여서 명예를 훼손해도 되는 것이냐”며 “수사를 해서라도 명예를 회복했으면 한다”고 오히려 역공을 펼쳤다. 그는 1995년 8월 심지어 “퇴임후 동네북처럼 맞을 때도 참았다. 민주발전에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참는 나도 이젠 못참는다”고 펄쩍 뛰었다. 전직 대통령들의 거짓과 부인전략은 새로울 것이 없다.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국정원의 불법과 탈법, 다스 비리 등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지만 부인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직 1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2 단계로 진척될 전망이다.

두 번째 단계는 책임을 측근에게 돌리는 것이다.

재판 6개월만에 처음 입을 연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되어 주 4일씩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참한 시간들이었다”면서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되돌아왔고 이로 인해 저는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측근 최순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재임 기간 그 누구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고 재판 과정에서 사실이 아님이 충분히 밝혀졌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잘못이 있다면 측근에게 있고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여야가 탄핵을 결정했고, 헌법재판소가 그 탄핵이 타당하다고 최종심판 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도 부정하고 이제 사법부마저 부정하며 자신의 결백을 강조할 수 있는 이유는 측근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는 오만한 발상 때문이다.

세 번째 정치보복을 주장하며 사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단계.

자신이 집권할 때는 사법부를 시녀처럼 부려먹고 이제 자신이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되자 정치보복이라며 법도 사법부도 모두 부정한다.

▲ 지난 10월16일 박근혜씨가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10월16일 박근혜씨가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은 “저에 대한 구속 기간이 끝나는 날이었으나 재판부는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며 “며 “정치적인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저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 마침표가 찍혀졌으면 한다”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제기했다.

미디어오늘이 인용한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및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활동”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찬성 의견이 77.1%로 나와 반대 의견 20.9%에 비해 무려 55.2%p나 높게 나타났다. 여론은 압도적으로 부정부패 척결이라고 지지하지만 자신은 정치보복이라고 강변하는 셈이다.

이는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1심 재판 때와 비슷하다. 각각 12·12사태 반란수괴죄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두 전직 대통령 재판에서도 변호인단은 두 차례 집단 사임하며 재판을 흔들었다. 당시 변호인단 역시 ‘재판의 공정성’을 문제삼았다. 전상석·이양우 변호사 등 8명은 당시 서울지법 형사30부(재판장 김영일)가 주 2회 재판을 강행하는 등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다며 그해 7월8일 총사임했다. 그러나 변호인 총사임 뒤 재판부가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자 “국선변호인 아래서는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또 재판 출석을 거부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인치 방침을 내비치자 다시 나와 재판을 받는 식이었다.

네 번째 사면특혜를 받아내는 것이다.

재판은 부정했지만 법이 베푸는 특혜는 곧잘 받아내는 전통이 한국에는 존재한다. 부정부패를 넘어 내란수괴·뇌물수수와 군사반란중요임무종사·내란 등의 무시무시한 혐의로 사형과 무기징역 등 중범죄자로 규정받은 전직 대통령들이지만 대법원 판결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면논의가 시작됐다. 국민화합이란 명분으로 바로 사면, 복권시켜주는 정치권의 야합과 무원칙한 사면남용은 국민을 우롱하고 사법정의를 부정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유무죄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벌써 사면 주장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이러다가 또 다시 ‘동서화합’이나 ‘국민화합’ ‘미래로 나아가자’는 식의 정치권의 원칙없는 타협이나 절충이 물밑에서 논의되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촛불정신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시대정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단계, 5단계는 사면 복권 후 다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으며 역사와 법치사회를 왜곡하는 행태다.

▲ 1996년 8월26일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판 시작에 앞서 서있는 모습. 사진=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 1996년 8월26일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판 시작에 앞서 서있는 모습. 사진=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노태우는 동생과 비자금을 둘러싼 땅소유권 분쟁으로 국민적 분노를 초래했다. 전두환은 29만원 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측근들과 해외 골프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심지어 역사왜곡 자기미화 자서전 발간에 나서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자서전을 펴내며 자기홍보와 치적자랑, 부정비리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 수사대상자로 떠오른 이 전대통령의 국정원을 앞세운 국정농단 백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수치를 모르는 전 대통령들의 이 같은 억지와 부정이 계속되는 이유가 뭘까. 여전히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외에 달리 설명이 안된다. 그들의 눈에 국민은 ‘개·돼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하는 것은 모두 정의요 법이며 이를 막는 것은 정치보복이라는 논리. 그 이면에 사면이라는 카드도 이들의 오만을 꺾지 못하는 히든카드가 되고 있다. 앞으로도 정치인에 대한 사면은 어떤 포장을 하더라도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이뤄지는 더러운 정치적 거래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만이라도 제대로 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