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 두 번째 국정감사도 파행을 거듭하며 삐걱대고 있다. 지난해엔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당이 제출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 투쟁에 돌입하는 등 여당이 1주일간 국감을 ‘보이콧’해 난항을 겪었다.

지난 12일부터 시작한 이번 국감도 초반부터 박근혜 정부 청와대 세월호 문건 조작 파문과 야당의 김이수 헌법재판소 권한대행 보이콧,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론조작 공방 등으로 국감이 중단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여당의 ‘적폐청산’에 맞선 야당의 ‘정치보복’ 프레임이 등장하면서 이번 국감도 극한 대결로 치닫는 중이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은 ‘민생·개혁·안보’ 의제로 이끌어가야 할 국감을 정쟁의 장으로 몰아가고, 파행으로 얼룩지게 하는 구태를 보이고 있다”며 “세월호 보고 조작,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론조작 의혹 등 사실상 박근혜 정부 국정감사가 되자, 이슈를 물타기 하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 10월 12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장을 방문해 야당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0월 12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장을 방문해 야당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우 원내대표는 “더욱이 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별위원회가 이미 검찰에서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이 난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를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하며 작정하고 국감을 기승전 정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면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 논의되는 민생 제일 국감, 품격 있는 국감이 되도록 야당의 협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첫 국감서도 ‘이명박근혜 정부 적폐’ 불거지자 야당 ‘보이콧’

사실 이번 국감에서도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각종 국정농단이 도마 위에 오를 것임은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었다. 국정원을 비롯한 각 정부부처의 개혁·진상조사위원회에서 국감 시작 전부터 전 정권의 적폐 문제들을 연이어 드러내면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과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감 시작 첫날인 지난 12일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벌어진 세월호 관련 문건 조작 사실을 발표하고 13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여야의 정쟁은 국정감사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은 12일 오후 춘추관에서 긴급 브리핑을 통해 지난달 국가위기관리센터 내 캐비닛에서 기본지침이 불법으로 변경된 자료를 발견했고, 국가안보실 공유폴더 전산 파일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상황보고일지를 사후에 조작한 정황이 담긴 파일 자료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2일 오후 춘추관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세월호 사고 당일 상황보고일지와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불법 변경, 조작에 대해 긴급 브리핑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2일 오후 춘추관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세월호 사고 당일 상황보고일지와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불법 변경, 조작에 대해 긴급 브리핑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이어 청와대는 13일 세월호 문건 조작 의혹 등과 관련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명의로 서울중앙지검 부패방지부에 수사를 의뢰했다. 청와대는 지난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침몰 당시 최초 대통령 보고 시점이 담긴 상황보고서를 6개월 후 오전 9시30분에서 오전 10시로 조작하고, 대통령 훈령을 정식 절차 없이 수정한 점에 공문서위조·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또 조작된 문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 자료로 활용한 점은 공문서위조 및 동행사, 당시 안행부 공무원 등이 임의로 불법 변경된 지침에 따라서 재난안전대책을 수립도록 한 점에 대해서는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한국당은 즉각 반발했다. 한국당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씨의 구속 연장 여부 결정 하루 전에 청와대가 세월호 문건을 공개한 것은 정치공작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이뤄지는 국정감사를 시작하자마자 청와대 비서실장이 확인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내용으로 생중계 브리핑까지 했다”며 “이것은 청와대가 물타기 의도로 국정감사를 방해하려는 정치공작의 행태이자 전 국민 앞에 사법부에 대고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연장하라’는 직접적 메시지를 보낸 강한 압박”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세월호 문건조작 수사의뢰, 한국당 노 전 대통령 일가 고발 응수

급기야 한국당 정치보복특위는 이날 김성태 위원장 명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일가에 대해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당의 고발 조치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부의 적폐 청산 작업에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자,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맞서며 정부·여당이 가장 민감해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흠집 내기 시도로 풀이된다.

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위 대변인인 장제원 의원은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고발 이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노 대통령의 서거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지만, 뇌물수수 사실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시인한 사안”이라며 “죄를 지었으면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곧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재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 자유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별위원회 대변인인 장제원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일가에 대해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고 밝혔다. 사진=민중의소리
자유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별위원회 대변인인 장제원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일가에 대해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고 밝혔다. 사진=민중의소리
이에 대해 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은 “적폐를 덮기 위한 막가파식 정쟁몰이”라고 비판했다. 백혜련 민주당 대변인은 “한국당의 행태는 국민을 우롱하고 기망하는 것”이라며 “국민은 적폐를 덮기 위한 졸렬한 물타기와 적폐 세력의 후안무치한 행태에 대해 더는 관용을 베풀 생각이 없으며,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세월호 문건 조작과 은폐 의혹 대해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청와대의 검찰 수사 의뢰 후 국회 차원에서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위증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로 한 것이다.

민주당 국감종합상황실장인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16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보고기록 조작과 대통령훈령 조작 사건은 국민 생명 기본권을 위반한 반헌법적 행위이고 공문서위조와 훼손, 직권남용 등 범죄행위”라며 “미궁에 빠진 7시간 반뿐만 아니라 구조의 골든타임이었던 9시 반부터 10시15분까지의 행적을 규명해 생명보다 정권 유지에 급급했던 추악한 권력의 민낯을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16일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16일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박 부대표는 “그동안 국회와 청문회,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에 출석한 박근혜·김기춘·김장수 등 피고인과 증인들은 박근혜 청와대가 짜 맞춘 시나리오와 각본에 따라 앵무새처럼 거짓을 이야기했는데 최초 기획자가 청와대의 누구였는지를 밝혀내야 한다”면서 “또 박근혜 청와대와 변호인단에서는 10시15분에 대통령 유선 지시가 있었다는 통화기록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고 알리바이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의 조작 가능성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 ‘김이수 수모’ 야당 비판… 야당 “헌재소장 지명 안 한 대통령 책임”

지난 13일엔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에게 업무보고도 하지 못한 채 ‘보이콧’ 당한 후,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까지 야당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지속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오후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를 통해 “헌법재판소법에 의해 선출된 헌재소장 권한대행에 대해 위헌이니 위법이니 하며 부정하고 업무보고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국회 스스로 만든 국법질서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수모를 당한 김 권한대행께 대통령으로서 정중하게 사과한다. 그리고 국회의원들께도 삼권분립을 존중해 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1시간30여 분간 인사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있었다. 사진=민중의소리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1시간30여 분간 인사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있었다. 사진=민중의소리
추 대표도 이날 야당을 향해 “이유 안 되는 이유로 조자룡 헌 칼 쓰듯이 마구 국감을 보이콧 하고 스스로 위헌·위법을 하고 있어 정치 수준이 낮다”면서 “헌법도 헌법재판소법도 헌법재판소법 규칙도 안 찾아보고 정말 법도 모르는 국회의원님들 나리께서 ‘당신은 위헌·위법이야’라고 주장하는데 김이수 권한대행이 얼마나 속이 답답하겠나”라고 힐난했다.

그러자 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야 3당이 합세해 정부·여당을 공격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지금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둘러싼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서 시작된 것”이라며 “이런 사정을 모른 척하며 논점을 물타기 하는 대통령의 태도야말로 참으로 위선적”이라고 비판했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은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6년 임기의 새로운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하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데,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헌법재판소 국정감사 파행을 국회에 있는 것처럼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페이스북 글 게재, 추미애 대표의 망언, 민주당 당직자의 SNS 여론 왜곡 선동으로 이어지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행태는 건전한 여론형성을 왜곡시키는 행위이며 국정 운영의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감이 진행되는 와중에 여야 정치공방이 격해지자 17일 “이번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민생 공동체로 거듭나, 국민을 안심시키고 희망을 드리는 모습을 한 번 보여주기를 바란다”며 “비방과 고성이 오가는 국감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불꽃 튀는 토론이 오가는 국감 현장이 되기를 간절히 당부한다”고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하지만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 대해 검찰에 적극적인 수사를 거듭 요청하고, 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의 취업 특혜 의혹까지 재차 거론, 남은 국감도 비루한 여야 정쟁으로 파행은 불가피하게 됐다.

▲ 16일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노트북에 '문재인정부 무능심판'이라는 문구를 써 붙여 여당의 항의를 받았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6일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노트북에 '문재인정부 무능심판'이라는 문구를 써 붙여 여당의 항의를 받았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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