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 현장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감사위원인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녹음파일이었고, 그 안에는 케이블업계 2위 티브로드의 관리자가 직원들을 불러모아놓고 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협력사 직원 수백명에게 분노를 갖고 실적을 닦달하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말고 협력사 사장들한테 표출하라. 정당하게 갑질하라.” “정의당 그 미친X 하나 있죠. 이름이 뭐야 그거. 국회의원 그 미친X 이름 뭐야, 그거. 그때 청문회에서. 확 그냥 입을 찢어 죽여 버릴까 진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과 이웃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갑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강연이 있다면 거기에나 어울릴 만한 내용이었고, 몰상식의 극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말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 녹음파일을 듣고 또 들으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티브로드 관리자가 고백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런 갑질과 강요와 폭압적 조직문화로 굴러오지 않았을까.

내가 청춘을 바쳐 일해온 회사 티브로드는 녹음파일에 나와 있는 대로다. 말할 나위 없는 최고의 갑질 기업이다. 태광그룹 계열인 티브로드는 이호진 전 회장 일가와 사모펀드의 이익을 위해 매년 천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절망퇴직, 부당전보, 성과연봉제와 같은 ‘학대해고’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리고 현장 업무를 대부분 ‘외주화’ 했고, 설치수리기사들에게 한 시간에 4건의 업무를 꽂는 등 ‘중복할당’을 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노동개악을 폐기하고 성과퇴출제를 없애는 분위기인데 티브로드는 시대를 역주행한다.

아마 노동지옥이 있다면 티브로드일 것이다. 티브로드는 노동조합, 시민단체, 국회의 문제제기에도 꿈쩍을 않는다. 무능, 탐욕, 부도덕, 악덕… 이런 수식어를 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번에 터져나온 녹음파일은 그래서 쉬쉬하며 넘길 사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이번 기회에 청산해야 할 적폐 재벌이 바로 태광 티브로드라는 사실을 티브로드 스스로 입증했다.

발뺌할 수 없을 것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티브로드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바로 그 증거다. 우리는 지난 십여년 영업실적과 기술지표 압박에 시달려왔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겁이 날 정도였다. 원청의 개입과 지휘감독을 받는 협력사들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실적압박에 현장을 더 쥐어짰다.

▲ 최성근 케이블방송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 지부장
▲ 최성근 케이블방송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 지부장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일상이었다. “협력사 직원들이 수백명 있는데.. 한명도 우리가 마음대로 부려 먹지 못하는 뭣 같은 상황‥ 분노를 가지고 실적을‥ 가서 닦달하세요. 저기 TSC들한테 가서 야 이 XX들아 너 네 씨 이거밖에 안 해? 야! 너 죽고 나 죽자. 어차피 나 들어가면 정XX 팀장한테 죽으니까 너희 죽이고 여기서 죽을란다.” 티브로드는 공개적으로 협력사 노동자를 쥐어짜서 ‘실적을 올리라’ 지시를 하고 협력사 노동자가 ‘어디서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여 그 증거를 찍어오라’고 지시했다. 치가 떨리는 현실이다.

팀장 한 명의 일탈이 아니다. 티브로드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을 실적 올리는 기계, 쓰다 버리는 소모품으로 치부한다. 문제의 녹음파일은 티브로드 전체가 협력사와 노동자를 대하는 수준이 겉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날 그 회의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십수년 동안 전국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진 갑질이고 욕설이고 압박이다. 티브로드에서 노사분규가 왜 매년 일어나는지 시민, 고객 여러분들도 이제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티브로드가 해결해야 한다. 이번 국정감사에 티브로드 강신웅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정규직에게 절망퇴직과 성과연봉제를 강요한 것, 설치수리업무를 외주화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중복할당과 실적압박을 한 것에 대해 강신웅 대표는 이 자리를 빌어 사과하고 반성하길 바란다. 그리고 노동 적폐를 바로잡고,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약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 티브로드 노동자들은 한 달 넘게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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