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달 4일부터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에 나섰다. KBS 공정성과 신뢰도가 후퇴한 데 대한 책임을 고대영 KBS 사장과 이인호 KBS 이사장에게 묻고 공영방송을 재건하자는 요구가 단체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벌써 40일을 넘겼다. 5년 만의 장기 파업이다. 앞서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 새노조)는 2012년 3월6일부터 95일 간 ‘특보 사장 퇴진’을 기치로 내걸고 MB 특보 출신 김인규 전 KBS 사장 퇴진과 방송 정상화 파업에 돌입했다. 

방송 정상화에 대한 열망은 컸으나 그해 국민은 총선·대선에서 새누리당을 과반 정당으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 대가는 공영방송의 끝 모를 추락과 세월호 보도 참사, 최순실 국정농단 등이었다.

공영방송 경영진들은 2012년 노조 파업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다. 실무자들은 꼼꼼히 이행했다. 법원은 MBC 등 방송사들의 파업을 정당한 것으로 판결했으나 파업 이후 방송사에선 해고를 포함한 대규모 중징계가 이어졌다. 해직자 6명을 양산한 MBC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KBS에서도 해고자가 나오며 노사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김인규 전 KBS 사장 재임 시절(2009년 11월~2012년 11월) 3년치 임원회의록에도 2012년 파업에 대한 사측 전략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이에 비춰 현재 고대영 KBS 사장과 경영진의 2017년 파업 대응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우국충정 있는 애들이 나서야”

김 전 사장이 “불법 파업 장기화 여부는 사내 여론전”이라며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KBS 경영진이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사내 게시판’을 통한 홍보전이었다. 경영진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파업 참여를 망설이는 이들을 포섭하기 위한 사내 여론전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2012년 파업 돌입 전인 1월 KBS 노사가 치열하게 대립했던 사안은 KBS 새노조 집행부 등 13명에 대한 징계였다. KBS는 1월30일 2010년 7월 공정방송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안 쟁취를 위한 총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엄경철 전 위원장을 포함해 새노조 집행부 13명에 정직·감봉 등 중징계를 내렸다. 1년6개월 전 사안으로 뒤늦은 징계에 착수한 것이다. 이에 KBS 기자들은 징계 철회 등을 요구하며 3월2일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이러한 노사 대치·긴장 국면에서 김 전 사장은 2012년 2월15일 KBS 임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내부 기강을 다잡았다.

“대내외적인 홍보전 중요하다. 홍보에서 지면 끝난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방 붙이는 방법, 코비스(KBS 사내 게시판) 게시, 메일 등 다양하게 해야지. 보도국장의 (제작 거부) 찬반 투표 중단 호소문, 이런 것도 방 붙여야지. 내가 보도국장 때 가장 먼저 붙였다. 대자보란 선전전이다. 전략적 마인드 가져야 한다. 노사 주간 얘기했지만 내주 파업 들어간다고 했을 때 대응이 중요하다. (중략) 오늘 아침에도 PD 하나가 (공정방송 혹은 사장 퇴진) 피켓 들고 있던데 나 같으면 붙잡고 들어간다. 부장, 국장은 뭐야? 자기 새끼들 아니야? 법적으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내버려둔다? 덤벼들어야지. 국장이 됐건 부장이 됐건….”

2월17일 파업 대책 회의에서는 KBS 새노조와 기자협회 등에 적대적인 극보수 성향의 ‘KBS공영노조’(제3노조)를 활용하려 한 정황도 나타났다. 김 전 사장은 “공정노조가 목소리 좀 내야 한다. 타 협회, 개인들도 글을 써야 한다. 우국충정 있는 애들이 나서야 한다. 쭈뼛쭈뼛하고 있는데 공정방송하자는 건데”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기회에 파트별로 용감한 글 올라오면 (사내 게시판에) 댓글도 달아주고, 여론전에 무관심한 것 같다. 내주부터 여기저기서 (파업 반대 글이) 치고 나와야 한다. 시니어뿐 아니라 ‘비전 있게 가고 싶은데 회사가 이렇게 흔들릴 수 있느냐’ 등 (파업이) 억지라는 시각 표출할 수 있게. 내가 사장이 아니라면 멋있는 전략을 짤 수 있는데. 징계 13명에 대해 초기 대응이 늦었다. 내가 외국 가고 없어서. 왜 그랬는지(징계를 내렸는지) 사측이 (대자보 등을) 붙이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냥 둬서 (노조에) 밀렸다.(중략) 코비스 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 많다. 찬성, 댓글 받고 그래야 힘 받는다.”

이날 회의에서 전용길 KBS 콘텐츠본부장은 “회사 입장에 반대하는 간부들도 이번 기회에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 전 사장도 “확실히 되면…. 정리하라고”라고 호응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2012년 3월6일부터 95일 간 ‘특보 사장 퇴진’을 기치로 내걸고 MB 특보 출신 김인규 전 KBS 사장 퇴진과 방송 정상화 파업에 돌입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2012년 3월6일부터 95일 간 ‘특보 사장 퇴진’을 기치로 내걸고 MB 특보 출신 김인규 전 KBS 사장 퇴진과 방송 정상화 파업에 돌입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파업 반대 여론 조성을 위해 KBS 간부들을 마치 ‘사내 댓글부대’처럼 활용하는 정황은 구체적이다. 2월23일 임원회의에서 김 전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총국장들 글 진정성 있게 썼다. (노조에서) 충성 경쟁이다, 운운하는데 댓글 저쪽(노조 측)에서 100여 명이 몰려다니는 것 같다. 출근과 퇴근 시 게시판 ‘제안/아이디어’ 코너 체크해야 한다. 150~170명 몰려다니는데 (우리 쪽에서) 4500명이 대응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야 저쪽에서 포기한다. 간부들이 간과하고 있다. (댓글) 촉구를 20명씩 하면 얼마냐? 국장들 믿을 만하나? 제목 잘 보고, 찬·반 잘못 건드리지 말고. 중요한 거다. (사내 여론전할) 300명 갖고 있어? (중략) 장악하려면 확실히 하라.”

파업에 참가한 KBS 구성원들을 등급별로 구분하기도 했다. 김 전 사장은 2월27일 임원회의에서 “파업 참가 등급 분류 기준(A·B·C) 합당한가? 민주사회 다양한 의견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후배 감싸지만 불법 행위에는 단호하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도와주는 것”이라면서 “이번주도 여론전 확실히 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말고 선제 여론 조성하라. 홍보·노사(담당 부서), (방송문화)연구소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연합 사측 위해 전재료 삭감 요청”

2012년 파업은 KBS는 물론 MBC,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 등 언론사들의 대규모 연쇄파업 기간이었다. 김 전 사장은 타 사업장 파업에도 신경을 썼다. 연합뉴스 노조가 타깃이었다. 연합뉴스 기자들이 전면 파업 중인 상황에서 연합뉴스와 계약을 맺고 뉴스와 사진을 제공받는 기사 ‘전재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다고 판단, 김 전 사장은 3월25일 파업 대책 회의에서 “MBC는 (노사) 타결 전망이 없고 YTN은 약화됐다. 연합은 처음이라 서툴다”면서 “(연합뉴스) 서비스가 안 된 만큼 (기사) 전재료 삭감 요청해야 한다. 그게 사측(연합뉴스 경영진)을 도와주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사장은 3월28일 회의에선 새노조가 사내에서 소수인 것을 적극 공략했다. 그는 “시청자네트워크, KBS 총국장, 의회, 의원 등에 ‘극소수 파업’이라는 걸 알려야 한다”며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김인규 OUT’이 나왔으니 ‘김인규 IN’이라고 해야 할 거 아니야. 황우섭(3노조 공영노조위원장) 배짱 있다”고 말했다.

황우섭 위원장이 주도한 KBS공영노조는 새노조 투쟁에 대해 “정연주 시대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주도한 것”, “주요 선거를 앞두고 외부 세력과 동조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노골적인 정치 투쟁의 일환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폄하했다.

“최경영 비판 글 쓸 애국자 없어?”

2012년 MBC 파업과 마찬가지로 KBS 파업에서도 해고자가 나왔다. 지금은 뉴스타파 기자인 최경영 전 KBS 기자가 4월13일 김인규 전 사장에게 “이명박의 강아지 나가라”, “쥐새끼야 나가라”, “김인규 너 나가 인마” 등의 문자를 보낸 것이 발단이었다. 최 기자는 2012년 6월 재심을 통해 정직6개월 처분으로 감경됐으나 앞서 4월20일 인사위에서는 품위유지 위반 등을 이유로 해고 처분을 받았다.

해고 조치에 반발하는 사내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에 김 전 사장은 4월24일 임원회의에서 “최경영에 대해 확실히 (비판 게시글) 쓸 사람 없느냐”며 “아무리 동료지만…. 애국자 없어? 보도 쪽은? (중략) 다른 본부에서 쓰는 게 좋은데 소신 있는 사람 찾아보지”라고 말했다. 징계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시킬 간부들을 물색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 최경영 전 KBS 기자는 2012년 4월13일 김인규 전 사장에게 “이명박의 강아지 나가라”, “쥐새끼야 나가라”, “김인규 너 나가 인마” 등의 문자를 보냈다가 4월20일 인사위에서는 품위유지 위반 등을 이유로 해임 처분을 받았다. 2012년 6월 재심을 통해 정직6개월 처분으로 감경됐다. 사진=김도연 기자
▲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 최경영 전 KBS 기자는 2012년 4월13일 김인규 전 사장에게 “이명박의 강아지 나가라”, “쥐새끼야 나가라”, “김인규 너 나가 인마” 등의 문자를 보냈다가 4월20일 인사위에서는 품위유지 위반 등을 이유로 해임 처분을 받았다. 2012년 6월 재심을 통해 정직6개월 처분으로 감경됐다. 사진=김도연 기자
비난 여론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다. KBS 경영협회, 기자협회, 방송그래픽협회, 방송기술인협회, 아나운서협회, 여성협회, 촬영감독협회, 촬영기자협회, 카메라감독협회, PD협회 등 10개 직능단체는 24일 공동 성명을 통해 “최경영 기자가 ‘9시의 거짓말’이라는 책을 출간해 김인규 사장을 비판하고, KBS 새노조 공추위 간사로서 KBS 뉴스 비판, 사장 비판을 위한 ‘김인규 걸작선’ 제작, 불법사찰 진상조사위원장 수락 등의 행위를 한 데 대한 보복성 징계차원이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비판했다.

4월25일 임원회의에서 김 전 사장은 KBS 직능단체 공동성명을 체크한 뒤 “이번 주는 최경영 해임으로 가는데 너무 안이한 것 같다”며 “자신감 갖고 하라. 30년 일한 사람들 아니야. 다들 후배 아니야. 전략, 전술에서 뒤져서 그런 건지, 의욕이 없어선지 모르겠지만 경영, 기술협회는 파업(중이) 아니잖아. 저쪽에서는 집요하게 하는데 모든 신경 곤두세워야 한다. 경영협회장은 인적자원실 소속 아니야? 밤새 얘기하라. 사소한 것 같지만 아니다. 파업 중단하라는 성명이 나오기는커녕 거꾸로 (최경영 지지 성명이) 나오고 말이야”라고 임원들을 질책했다.

그러면서 김 전 사장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심리전이기 때문에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한 노력해야 한다. 사내 여론전을 강화해야 한다”며 “본부장들은 협회장들과 매일 통화해야 하지 않나? 본부장이 안 되면 밑에 누구라도 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사장은 파업 불참자에 대한 ‘보상’을 강조하기도 했다. 6월4일 임원회의에선 “불법 파업 엄단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격려도 중요하다”며 “열심히 일하면 회사가 보상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중략) 그래야 나가서 총 들고 싸우지. 파업하는 사람들 만나 봤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집에 찾아가봤어? 케이크라도 들고 가야지. 반성들 해, 반성!”이라고 임원들을 압박 지시했다.

“설득 어려우면 지역으로 보내라”

KBS 새노조는 장기간 파업 끝에 6월5일 경영진과 잠정 노사 합의안에 서명했다. 잠정 합의안 내용은 △대선 공정방송위원회 강화(사장과 노조위원장이 대표로 참석) △탐사보도팀 부활 △라디오 주례 연설 조만간 폐지 △징계 최소화 및 본부장 거취에 대한 책임 등이었다.

김 전 사장은 다음 날인 6일 오후 파업 대책 회의에서 “이번 파업은 분명 불법”이라며 “회사가 크게 망가지지 않았다. MBC와 다르다. 파업하기 쉬워도 접기 어렵다. 더 이상 무모한 파업 말아야 한다는 교훈 남겼으면 나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지난 2009년 11월 KBS 사장 취임 당시 KBS 간부들의 호위를 받으며 KBS 내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지난 2009년 11월 KBS 사장 취임 당시 KBS 간부들의 호위를 받으며 KBS 내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김 전 사장은 “파업 둘러싸고 적대적으로 선을 넘었더라도 적군과 아군으로 나눠서는 안 된다”면서도 “사규나 법률 위반하지 않는 한 감싸야겠다는 마음가짐은 돼 있는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 진정성을 갖고 설득하고 설득 어려운 사람들은 지역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파업 참여자에 대한 인사 배제를 지시한 정황으로 읽힌다.

이어 “설득해야 할 사람들에 노력해야지 (설득이 안 되는 사람들은) 그냥 타부서로 보내라”며 “문제 직원들을 방출만 시키려 하면 안 된다. 임원들이 모여 공감대 형성 필요하다.(중략) 문제가 있는 놈 자르려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 (중략) 90일 넘게 했으면 후유증 시간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파업 대가는 혹독한 징계였다. KBS는 2012년 7월 파업 특별인사위원회를 열어 당시 김현석 새노조위원장에 대한 해임(이후 재심에서 정직 6개월)을 포함해 노조 간부들에게 정직 1~6개월 및 감봉 1~3개월 등 모두 18명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의결했다.

2012년 새노조 파업 집행부는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재판에도 넘겨졌지만 대법원은 지난 4월 김현석 전 위원장 등 전·현직 집행부 5명 등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던 원심을 확정했다. 파업은 적법한 절차를 밟았고 사측에 큰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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