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16일 오전 9시30분, 좌현으로 크게 기울어진 세월호에 승객들이 가득 있었다. 세월호 상공에는 구조 헬기가 도착했지만 그 누구도 세월호 승객에게 당장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지 않았다. 오히려 선내 방송에선 ‘가만히 있으라’는 말 뿐이었다.

이때, 정부는 컨트롤 타워도 없이 중구난방이었다. 탑승객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이 혼란을 정리해야 할 대통령은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 늦게야 나타난 대통령은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구조하기가 그렇게 힘이 듭니까”라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댔다.

당시 청와대의 관계자들은 대통령에게 10시에 보고했으며 10시15분 관련된 첫 지시가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일을 엉망으로 하는 정부·청와대 직원들이 사고인지 후 1시간이 넘도록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청와대의 비서실장이라는 김기춘이라는 자는 국회에 나와 “재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15분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한 박근혜씨. 사진=청와대
▲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15분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한 박근혜씨. 사진=청와대
하지만 이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그리고 조작이 있었다.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은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안보실 공유폴더에서 지난 정권의 전산파일을 발견해 공개했다. 여기서 나온 문서를 보면, 위기관리센터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오전 9시30분에 세월호 상황을 보고했다.

하지만 이후 이 보고시간은 10시로, 30분이나 늦춰졌다. 이 말인 즉 박근혜씨는 오전 9시30분에 보고를 받고 45분이나 아무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를 숨기기 위해 청와대가 보고시간을 일부러 30분이나 늦췄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30분은 결코 적지 않다. 가천대 초고층방재융합연구소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만약 9시45분 경 퇴선명령을 내렸다면 탑승자 476명이 전원 탈출하는데 불과 6분17초밖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박근혜는 무려 45분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국민들은 이날 방송 생중계로 배가 기울어지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들, 그것도 학생들이 있었다는 것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정말 많은 국민들이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있기를 기원했다. 그야말로 모두가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45분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10월14일자. 사설.
조선일보 10월14일자. 사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 30분이 하찮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조선일보는 10월14일자 사설 <국정 운영 우선순위 심각하게 전도돼 있다>에서 “그 30분 때문에 사람들이 더 죽었다는 얘기까지 뒤따르고 있다”며 “세월호가 처음 알려졌을 때 일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지시한다고 사고 현장에서 사람을 구조하고 지시 안하면 구조 않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몰라서 저런 주장을 펼치는지, 알고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저런 주장을 펼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당시 정부의 구조 활동이 ‘아예 없었다’고 주장한다. 구조랍시고 한 일은 이미 선실 밖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배나 헬기에 옮겨 태우는 수준이었지 안에 있는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한 활동은 없었다는 것이다.

재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태에서 각 정부부처의 협조와 공조가 절실했던 그 순간에,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대통령은 실종 상태였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대통령이 있건 없건 구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을 쓴 논설위원은 2014년 4월16일에 대체 어디에 있었던가?

조선일보는 또한 말한다. “그 30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정말 수도 없는 비난을 받았다. ‘30분’으로 얼마나 타격을 더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구조 실패, 아니 구조조차 하지 않은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박근혜씨가 이미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고 이 일을 묻어두자는 투라니, 이 글을 쓴 논설위원이 박근혜의 고통에 공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희생된 국민과 그 국민들의 유족, 그들을 바라보는 많은 국민들의 고통에는 전혀 공감능력이 없는 모양이다.

▲ 지난해 9월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세월호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해 9월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세월호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청와대의 긴급 발표를 두고 “다음날 박 전 대통령 구속을 연장하기 위한 여론전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라며 “실제로 그 외에 달리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국민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아직 신원을 찾지 못한 대형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제외하고 또 찾아야 할 이유랄 것이 있을까?

조선일보는 “국민들은 전례 없는 안보 불안을 느끼고 있다”며 안보에나 신경 쓰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12일 미국의 2인자로 꼽히는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북핵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며 이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견해임을 강조했다. 물론 현재의 위기를 과소평가해서도 안되겠지만 조선일보처럼 모든 것에 우위에 놓을 만큼 과대평가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국가 에너지 대계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원전 정책이 비전문가들 손에 넘어가 있고 미·중과의 통상마찰,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문제 등은 앞으로 우리 경제에 어떤 후폭풍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주장이 사실이어도 전 정권의 기만, 공문서위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이들에 밀릴 ‘후순위’임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된 일에도 지면을 할애하는 조선일보가 선순위 후순위를 운운하니 우습기도 하고, 몇 백의 고귀한 목숨이 오갔던 그 안타까운 30분을 하찮게 취급하는 모습을 보니 분노스럽기도 하다. 피해를 받은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이런 사설은 대체 누가 쓴 것인가? 이것이 정말 조선일보 전체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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