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의 고질적인 악습 가운데 개선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범죄사건에서 구속단계까지만 취재가 집중되고 판결단계에 가서 유무죄가 확정될 때는 거의 무시하거나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무죄판결이 나오면 과거 보도에 대한 정정도 해명도 하지 않는 관행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구속, 불구속 단계에 일반 미디어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판결이 나올 무렵이면 잊혀졌거나 관심도가 낮기 때문이다. 미디어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살아남는 언론의 입장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이 납득할 수 없는 판결에 대한 감시, 견제를 게을리해도 된다는 면죄부는 되지 않는다.

최근 비슷한 사안에 대해 납득하기 힘든 사법부의 판결이 나왔다. 법관이 오직 ‘양심과 법’에 따라 심판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문제는 어느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습 폭행과 상습 성추행에 대한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큰 판결을 비교하고 문제제기하는 것은 저널리스트의 책무다.

부산지법 형사10단독 장기석 판사는 최근 상습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중·고 배구 감독 A(46세)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A 씨는 2011년 5월부터 2015년 3월까지 같은 재단의 여중·고 배구부 선수 세 명을 18차례에 걸쳐 상습 폭행한 혐의가 인정됐다. 특히 한 중학생을 연습 경기 도중 양 손바닥으로 뺨과 머리를 10차례, 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20차례 이상 때린 것을 시작으로 고교 배구부 시절까지 15차례나 폭행했다. 발로 허벅지를 걷어차거나 머리를 벽 등에 찧고, 하키채나 배드민턴 라켓을 동원해 때렸다. 또 다른 학생은 배구공을 띄워 얼굴을 맞혀 코피가 나게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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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폭력행사를 반복한 배구감독에게 장 판사는 “배구부 감독으로서 미성년 제자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발달에 해를 줄 정도로 여러 차례 체벌을 가한 죄책은 가볍다고 할 수 없다”며 “사건 이후 감독직에서 물러나 지도자의 길을 포기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장 판사도 집행유예로 풀어주는데 대해 부담을 느꼈는지 “죄책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면서도 ‘지도자 길을 포기한 점’을 강조했다. 장 판사의 딸이나 아들이 이렇게 배구지도 감독에게 상습구타 당해도 이런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같은 시기 대법원은 1심 판결을 끝까지 유지하며 상습 성추행 교사에 대해 중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자신이 담임을 맡은 초등학생 여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추행한 30대 교사에게 징역 6년을 확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3세 미만 미성년자들을 강제로 추행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강모(36세)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심이 명령한 신상정보 공개 6년과 전자발찌 부착 6년도 확정됐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였던 강씨는 2014년 6월 피해 아동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속옷을 만지는 등 당시 10∼11세인 여제자 7명을 38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피해자 진술 중 일부 불분명한 부분이 있지만, 피해자들의 지적능력 수준 등을 고려할 때 꾸며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진술로 보인다”며 “피고인에게 성폭력 범죄의 습벽(습성·버릇)과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1심과 2심 모두 징역 6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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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상식의 집합체라는 말이 있다. 상식을 배반하고 비슷한 판례와 상반될 때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법관이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 결과가 이것이라 하더라도 판결에 이렇게 편차가 많이 나 예측을 불허하는 것은 상식적인 사회가 아니다.

물론 한 사건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했고, 다른 사건은 상습 상해죄를 물었기 때문에 결과도 달라졌다고 사법부는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저널리즘 영역에선 적용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결과가 이렇게 천양지차가 난다는 것을 문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13살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을 가중 처벌하도록 하는 특례법까지 만들었지만, 실제 처벌은 솜방망이인 것으로 조사됐다. YTN 보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3살 미만 대상 성범죄자의 재판 결과를 분석했더니 절반에 가까운 41%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특례법까지 만들어도 무력화시키는 판결은 법과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장기간에 걸친 어린 제자 상습구타로 법원까지 왔다면 그가 지도자를 그만 뒀든 그만두지 않았든 그것이 솜방망이 처벌의 주요 고려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가 반성하고 있다는 상투적 이유를 내세우는 판결은 스스로 법리가 궁색하다는 변명인 셈이다. 법치를 부정하는 ‘봐주기 판결’은 우리 사회, 사법부, 정의논리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법원은 초등·중학교 남자 동창을 감금한 뒤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돈을 뜯어내거나 유사성행위까지 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등학생들에게 징역 3년, 6년 등의 중형을 선고했다. 고교생들에게 묻는 책임을 감독에게도 똑같이, 어쩌면 더 철저하게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법관은 판결로 말하고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그 판결이 그 사회 의식수준을 나타낸다면 기자는 의식수준을 낮추거나 높이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판결문은 보다 쉽게 전문이 공개돼야 하고 법조출입 기자는 감시, 견제를 기소단계가 아닌 판결단계에서 더욱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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