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 MBC에서 도려내야 할 프로그램으로 ‘PD수첩’을 꼽았다면 KBS에선 ‘추적60분’이 치우고 싶은 눈엣가시였다.

일례로 2010년 11월께 원세훈 원장의 국가정보원은 “PD수첩 최승호 PD 전출, 김미화 교체, 추적60분 담당 PD 인사 조치”라는 내용이 담긴 ‘VIP 일일보고’를 작성했다.

지난달 26일 MB 국정원의 방송장악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서 직접 이 문건을 접한 최승호 전 MBC 해직 PD는 “VIP보고니까 MB에게 보고됐을 것”이라며 “앞으로 최승호, 김미화, 추적60분 PD 등에 대해 조치하겠다는 계획 보고인 듯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국정원의 ‘VIP 일일보고’ 직후인 2010년 12월 KBS 추적60분에선 4대강 편 불방(방송 보류) 사태가 불거졌다. MB 언론 특보 출신 김인규 전 KBS 사장 재임 시절이다.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추적60분 제작진들은 MB 정부 공영방송에서 ‘성역’으로 간주됐던 4대강 아이템을 다루려 했다. 당시 국토해양부와 경남도 등 지자체가 갈등을 빚고 있던 ‘4대강 사업권 회수’ 문제를 중심으로 4대강 공사 속도 논란, 불법 폐기물 및 농경지 침수 등 사업 전반을 조명하려 한 것. 그러나 KBS는 4대강 관련 재판을 앞두고 있다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라 방송 보류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증폭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KBS 새노조)는 2010년 12월1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 KBS 정치외교부 기자의 내부 정보 보고(2010년 12월3일자)를 공개하며 청와대 인사의 보도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따르면, 김연광 청와대 정무1비서관은 KBS 기자에게 “홍보 쪽은 물론이고 김두우 (청와대) 기획관리실장도 KBS가 천안함 (아이템) 추적60분에 이어 경남도 소송 관련 추적60분을 하는 등 반정부 이슈를 다룬다, KBS가 왜 그러냐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고 발언했다. KBS 추적60분 4대강 아이템이 ‘윗선’인 MB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됐던 까닭이다.

당시 새노조에 따르면 이와 같은 보고 이전까진 추적60분 제작진이 수월하게 제작을 진행했으나, 청와대 정보 보고가 있은 3일 이정봉 KBS 보도본부장이 조대현 부사장에게 방송 보류 검토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 외압 논란에 불을 붙였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 2010년 12월1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 KBS 정치외교부 기자의 내부 정보 보고(2010년 12월3일자)를 공개하며 청와대 인사의 KBS 추적60분 보도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 2010년 12월1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 KBS 정치외교부 기자의 내부 정보 보고(2010년 12월3일자)를 공개하며 청와대 인사의 KBS 추적60분 보도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김인규 전 KBS 사장 재임 시절(2009년 11월~2012년 11월) 3년치 임원 회의록에도 추적60분 4대강 편은 주요한 문제로 다뤄졌다. KBS의 불방 결정 공식화가 있기 하루 전인 2010년 12월6일자 임원회의록에는 김 전 사장 발언으로 “추적60분 ‘사업권 회수 논란, 표류하는 4대강’ 불방”이라는 기록이 있다.

KBS 기자의 청와대 정보 보고를 공개한 12월14일자 KBS 새노조 기자회견도 다음날 임원회의에서 언급됐다. 김 전 사장은 2010년 12월15일 임원회의에서 새노조 기자회견에 대해 “선전 포고로 본다”며 “간부들 무신경하고 무대응이다. 보도본부장 명의, 정치부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불방 결정 이후인 12월15일 KBS 심의실에서 ‘방송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낸 것에 대해서도 이틀 뒤 임원회의에서 문책이 이어졌다. 2010년 12월17일자 임원회의록을 보면 KBS 심의실장은 “(방송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은) 해당 심의위원 개인 의견일 뿐 심의실 견해는 아니다. 심의지적 평정위원회를 열어 방송 여부 결정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에 김 전 사장은 KBS 심의실장을 크게 혼냈다. 김 전 사장은 “안 되면 (심의를) 외부에 맡기겠다”며 “심의실장 자신 없으면 외부에 의뢰해라. 심의 기능 마비다. (중략) 겁먹은 거야? 헌병이 겁먹으면 무슨 헌병이야. 집에 가 쉬는 게 낫지. (중략)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정확히 해야지”라고 질책했다. 이는 추적60분 불방을 결정했던 사측과는 180도 다른 KBS 심의위원 의견을 김 전 사장이 못마땅해 하는 모습이다.

김 전 사장은 “심의실장은 어려운 자리다. 동료, 친구들과 싸워야 한다. 옛날로 말하면 사관이다”라며 “정확히 심의 다시 해서 사내에 공개해라. 이런 것까지 사장이 다 얘기하고 움직이면 조직이 어떻게 되겠나? 밖에서 보면 이 회사는 사장 혼자서 싸우는 모양새(로 비쳐진다)”라고 거듭 질책했다.

김 전 사장은 이어 “자기 직책에서 해야 할 일을 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조(대현) 부사장이 중심이 되어 확실히 하라고. 이게 뭐야? 아침마다 혈압 오르게 하니 말이야. 뭐 겁이나? 겁나나?”라고 질책한 뒤 “나이 먹을 대로 먹었다. 무서울 게 뭐 있나. 후배들 몇 명 떠드는 것을 왜 신경 쓰나. 절대 희생 없이는 권리 찾을 수 없다. 밖에서 보면 굼벵이처럼 보인다”고 경고했다.

김 전 사장은 다시 KBS 심의실장에게 “심의실 올려 주려는데 이래 가지고 되겠느냐”며 “심의가 눈치 보면 안 된다. 제작진이 잘못한 것도 말도 못하고 말이야”라고 꾸짖었다.

▲ 2010년 12월 KBS 대표 시사 프로그램 ‘추적60분’ 4대강 편이 불방된 후 추적60분 사무실에 나붙었던 현수막.
▲ 2010년 12월 KBS 대표 시사 프로그램 ‘추적60분’ 4대강 편이 불방된 후 추적60분 사무실에 나붙었던 현수막.
앞서 추적60분 제작진은 불방 사태에 대한 항의 의사 표시로 KBS 시사제작국 사무실에 “추적 60분 불방,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KBS 심의실장을 크게 질책한 뒤 김 전 사장은 “현수막 사무실 건에 대해서는 대응이 필요하다”며 “코비스(KBS 사내 게시판)에 자기들이 올려놨지 않았느냐. 법이 무너지면 남는 게 없다. 그런 조사는 속전속결로 해야 한다. 다들 겁을 먹었다. 법을 어겼으면 처벌 받아야 한다. 지금부터 제 역할 못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인사로 바꾸겠다”고 임원들을 재차 압박했다. 실제 현수막과 관련해 추적60분 제작진 3명은 2011년 5월 ‘경고’ ‘견책’ 등 징계를 받았다.

추적60분 4대강 편은 2010년 12월22일 논란 끝에 방송됐다. 2011년 1월7일 임원회의에서 김 전 사장은 “심의 규정이 강화돼야 한다”며 “4대강 나가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 나갔다”고 지적했다.

김 전 사장은 KBS를 대표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자사 이익을 위한 ‘무기’로 간주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2010년 7월 방송인 김미화씨가 ‘KBS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자 김 전 사장은 2010년 7월7일자 임원회의에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기자들을 불러라. 방송계의 판을 흐리게 하려는 의도 막아야 한다”며 “(KBS뉴스)해설로 내일 또 다뤄라. 아주 중요한 일이다. (뉴스 코너 가운데 하나인) 이슈&뉴스, 추적60분에서도 다뤄라. KBS 사활 건 문제”라고 지시했다. 추적60분을 통해 김미화씨를 ‘보도 공격’하라는 노골적 지침이었다.

2012년 1월 케이블TV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KBS 2TV’ 재송신을 중단했다가 지상파 방송사들과 합의를 통해 재개한 데 대해 김 전 사장은 그해 1월18일자 임원회의에서 “일부 케이블사들의 횡포 계속 보도하라”며 “KBS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SO 횡포가 심각하다. 추적60분 등 (SO를 비판할 프로그램) 많잖아. 송출료(전송망이용료) 5000억 원씩 받으면서 콘텐츠 비용 안 내겠다는 거다. 그 돈 다 어디다 쓰는 건지 말이야. 탐사보도도 있고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과거 동아일보와 붙었을 때는 바로 백기 들더라. ‘KBS는 보복이 덜 할 거다’라고 보는 인식이 문제다. 직원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재송신에서) KBS를 빼자고 한 사람 끝까지 추적해 사과하게 해야 한다.” 김 전 사장이 추적60분을 KBS 이익을 위한 공격 도구쯤으로 판단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 KBS는 2011년 10월22일 오후 4대강 개방 행사인 ‘4대강 새물결맞이’ 특별 생방송을 여주 이포보(한강)와 금강, 영산강, 낙동강 스튜디오에서 4원 생중계로 방송했다. 사진=KBS 화면
▲ KBS는 2011년 10월22일 오후 4대강 개방 행사인 ‘4대강 새물결맞이’ 특별 생방송을 여주 이포보(한강)와 금강, 영산강, 낙동강 스튜디오에서 4원 생중계로 방송했다. 사진=KBS 화면
KBS 임원회의록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김 전 사장과의 만남에서 4대강 사업 홍보 방송 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있다. 2011년 10월21일자 KBS 수신료 대책 회의에서 김 전 사장은 이 전 대통령과 방송사 사장단 간 대화를 공개하면서 “KBS가 뭐 4대강 한 게 있나? 낼 모레 중계하지 않느냐고 해서 요즘 날마다 시위하고 난리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실제 KBS는 2011년 10월22일 오후 4대강 개방 행사인 ‘4대강 새물결맞이’ 특별 생방송을 여주 이포보(한강)와 금강, 영산강, 낙동강 스튜디오에서 4원 생중계로 방송했다. 이날은 10·26 재보궐 선거를 나흘 앞둔 날로 공영방송이 선거에 영향을 주는 정부 홍보 생중계를 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컸다.

이날 방송에 직접 출연한 이 전 대통령은 “안전하고 행복한 생명의 강으로 돌려드린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며 “4대강이 살아나면 전국 방방곡곡이 골고루 살아날 것이라 생각한다. 민심도 4대강 따라 흐르면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회가 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2006년 11월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 대운하 국운 융성의 길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이명박 당시 전 서울시장이 ‘한반도대운하 국운융성의 길’이라고 적힌 플래카드 옆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006년 11월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 대운하 국운 융성의 길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이명박 당시 전 서울시장이 ‘한반도대운하 국운융성의 길’이라고 적힌 플래카드 옆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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