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취재 차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중국인 가이드는 의아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선 정치인들이 매일 싸우는데, 좋게 말해 역동적인 정치환경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극심한 갈등을 야기하는 정쟁인데 혼란스럽지 않느냐는 호기심 어린 질문이었다. 함께 있는 2박3일 내내 가이드에게 일당 체제 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 질문을 쏟아냈더니 돌아왔던 역공이었다.

중국 방문 당시 미디어 업계 최대 거물로 꼽혔던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의 굴기도 벌써 꺾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 1억명이 본다는, 순전히 인공지능만으로 운영되는 중국 뉴스앱 ‘진르터우탸오’는 한국 IT업계의 큰 화두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지금도 여전히 언론을 통제하는 일이 자연스럽고 중국 인민들은 중국공산당만의 통치체제를 유지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자본주의와 기술은 세계 어느 국가 못지않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면서도 정치 체제만큼은 유교 질서와 일당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이상한’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정치학자 조호길과 리신팅이 공동으로 쓴 책 ‘중국의 정치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는 중국이 어떤 질서로 ‘이상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서구 정치의 시선에서 이상하게 보이는 중국 정치 체제가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운영되고 있으며 어떤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낸다. 저자 조호길은 중국공산당의 고위간부를 교육하는 중앙당교의 교수로 25년간 재직했다. 

중국의 정치 기반은 당과 국가가 일치하는 체제다. 저자들은 중국은 5000년 역사 가운데 2000년 동안은 주권국가이자 중앙집권제 국가를 유지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당이라는 표현은 그리 긍정적인 단어로 사용되지 않는다.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는 모이기는 하되 당으로 뭉치지는 않느니라”라고 했다. 송나라 때 다시 등장한 ‘정당’이라는 용어 역시 당시 사대부들이 신구 정당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와중에 사용했다.

중국 역사에서 정당이라는 단어는 나라 운명이 벼랑 끝에 몰려있던 청나라 말기에 다시 등장한다.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 내부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는데 당시 300여개가 넘는 정당과 정치조직이 등장했다. 서구 열강의 침입은 2000년 간 이어온 중국의 군주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한방이 됐다.

한국과는 비교도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땅 덩어리와 56개에 달하는 소수민족을 하나의 국가체제로 운영해온 나라가 극심한 분열로 위기를 맞았을 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대동단결을 외치는 일이었을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정당의 의미가 중국공산당만을 가리키는 의미로 재탄생하게 된 이유였다. 중국 전역의 모든 자원을 총 동원하고 인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데 정당, 즉 중국공산당이 가장 큰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 큰 땅을 하나의 국가체계로 유지하기 위해선 다양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든 인민들은 국가를 위해 동원될 준비가 돼있어야 했고 당은 사회 곳곳에 침투해 대중과 결합해 통합의 역할을 해냈다. 한 세대가 끝나도 지속가능한 당-국가 체제 유지를 위해 당은 엘리트를 길러내고 선발해 국가를 통치할 인재를 동원할 기반도 마련했다. 국가 운영을 선거가 아니라 당의 인재 선발과정을 거친 엘리트에 맡기는 이유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중국이 일당체제를 어떤 질서로 유지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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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한국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들은 한국 정치 제도를 보여주는 사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든다. 김 전 대통령은 40여 년의 정치 인생에서 9개 정당에 가입했고 스스로 3개 정당을 만들었다. 한국은 1945년 이후 70여 년 동안 300여 개의 정당이 탄생하고 개명하고 합병하고 사라지는 수많은 과정을 겪었다. 이 책에선 한국 민주정치의 특징을 “과도한 충돌과 통합의 결핍”이라고 규정한다.

저자들은 선거제도를 기반으로 한 서구식 민주주의의 한계도 지적한다. 선거가 언제나 옳은 결론을 낳지도 않을뿐더러 결과가 반드시 사회의 보편성을 담보하지도 않는다는 논리다. 국가가 유지해야 할 공동체주의를 위해 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책임 사이에 균형을 이뤄내야 하며, 그 역할을 일정 수준의 국가 거버넌스가 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역설적으로 중국이 그 많은 소수민족과 땅 덩어리를 하나로 엮기 위해 지탱해온 중국만의 정치 체제를 한 책에 걸쳐 설명하고 한국과 대만처럼 공동체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서구 정치체제를 받아들인 국가가 실패한 지점을 짚는 이유는 중국의 공동체주의가 맞고 있는 도전 때문으로 읽힌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 이후 급속히 도입된 자본주의와 빈부격차는 중국의 대동사회를 흔드는 또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중국 일각에서 시작된 자유주의와 인권 중시 풍토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직 사회 일각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개인이 국가를 위해 동원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선 서구식 자유주의를 받아들이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유주의자들은 중국의 특권계층이 공권력을 이용해 거액의 부당이득을 취하면서 빈부격차가 벌어졌고 개인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런 변화 앞의 중국에 대해 이 책이 내리는 결론은 중국인답게 느긋하다. 저자들은 “시장경제를 매개체로 중국 전통의 토대 위에서 타국의 선진적인 문화적 성과를 흡수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가치를 형성해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중국 정치체제를 이어가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역시 “빅데이터 같은 정보 플랫폼이 인류와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바탕”이 될 것이며 “어떤 인간 내지 세력도 이 바탕을 독점할 수 없고 그저 모든 인류가 공유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저자 중 한 명인 조호길과 나눈 대목도 흥미롭다. 이 전 지사는 조호길에게 중국공산당이 망하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를 물었다. 조호길은 “중국 현실을 알지 못한 채 서구중심주의로만 중국을 이해해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라며 “선진국과의 엄청난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에 대해 조호길은 “자유와 통제 간의 균형을 잡는 것이 정치”라며 “정치는 예술이지 과학이 아니”라는 모호한 말로 설명을 대신한다.

중국 정치학자가 공산당 일당 통치체제의 지속성에 낙관 어린 전망을 내놓는 데에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겼던 현재 서구 자본주의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에서 일부 근거를 찾는다. 조호길은 “넥스트 자본주의 시대에는 중국의 정치체제가 더 유리하다”며 “문제 해결의 핵심은 국가와 시장의 관계에서 국가능력을 되찾는 것”이라고 짚는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정치제도가 이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국가주의에 기반한 과거 정부와 맞서 시민 권리를 쟁취해온 투쟁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를 생각해보면 유교식 대동사회를 지향으로 삼은 중국과는 달리 한국 근대 정치가 싹튼 토양 자체에 정당 간 대립과 갈등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 책과 지난해 가이드의 질문은 우리가 ‘이상하다’고 보는 중국에 비해 한국 정치가 진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는 시사점이 있다.

2016년 이후 국민의당이 등장하며 한국에도 서구 민주주의식의 다당제 구도가 펼쳐졌다고는 하지만 과거 양당제 구도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국가 기관을 동원해 예술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탄압하고 언론기관을 체제 순응적 보도를 위한 존재로 만들었던 지난 정권의 사례는 중국과 다르지 않다. 촛불 혁명 당시 광장 민주주의가 의회 정치를 이끌면 위험하다고 했던 일부 정치학자와 정치인들의 주장은 엘리트 중심 정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중국 정치학자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중국 정치제도가 옳은지 서구 정치제도가 옳은지는 그 누구도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조호길의 말마따나 어느 정치제도도 완벽하진 않다. 더욱이 정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은 제도 자체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미국과 같은 정치제도 하에서 한국은 미국이 해내지 못한 대통령 탄핵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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