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 ‘김치녀’ ‘한남충’ 등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혐오 등 젠더이슈와 관련한 혐오표현들이다. 여성의 과소비를 지적하고, 여성들이 남성의 돈만 보고 접근한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진 건 처음이 아니다. 1920~30년대 신문에 실린 만문만화에는 당시 신문물을 받아들인 ‘모던걸’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내용을 보면 21세기에 벌어지는 여성혐오의 양상과 비슷하다. 만문만화란 작가 안석영 등이 1925년 최초로 연재한 장르로 만평에 짤막한 해설을 덧붙인 형태의 풍자물이다. 일제를 겨냥한 비판은 거의 없었고, 모던걸·모던보이를 주로 비난했다.

‘한남’ 피해 헬조선 탈출

▲ 1928년 11월4일자 조선일보 만문만화
▲ 1928년 11월4일자 조선일보 만문만화

1928년 11월4일 조선일보는 만문만화에서 남자가 다이아몬드를 사주지 않으면 화성으로라도 시집을 가겠다는 모던걸의 황금만능주의를 풍자했다. 여성들이 목마를 타고 우주로 가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고 “이땅에 사나희는 실혀요”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만화 설명으로는 “따이아몬드! 왜 나를 사랑한다면 따이아몬드 반지 하나에 치를 떠셔요! 백만원짜리 따이아몬드 오백원의 갑보다 더 놉흔(높은) 내 이 귀엽고 아름다운 청춘을 오로지 당신께 밧친다면! (중략) 이 땅의 사나희(사나이)가 따이아몬드를 안 사준다면 나는 ‘아라비아’ 사나희나 ‘아푸리카’ 늬그로(흑인을 폄하해 가리키는 말)에게라도 쉬집(시집)을 가겟습니다. 그곳 사나희도 안사준다면 나는 화성으로 쉬집을 가겟습니다.”등의 내용이 있다.

▲ 1930년 7월19일자 조선일보 만문만화
▲ 1930년 7월19일자 조선일보 만문만화

여성들의 소비행태를 비꼬는 내용도 있다. 1930년 7월19일자 조선일보 만문만화는 백화점 앞에 길게 줄 선 여성들의 그림이 있다. 방학이 되자마자 미쓰코시나 조지야 백화점으로 달려가 쇼핑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라고 그린 것이다.

만화 설명으로는 “시골 영감님의 말삼(말씀)을 드러보면(들어보면) 알 일이다. ‘거-아비 돈으로 학비를 쓰는 것이여서 그 돈이 그 돈이지만, 아-그래 방학해 도라온다(돌아온다)는 것이 제 화장품만 사가지고 앗지(왔지) 온! 서울에 그 흔한 누깔사탕도 안사다 주는게…’하며 혀끗(끝)을 차는 이가 잇다면 결코 우슬일(웃을일)은 아니겠지”라고 돼있다.

여성상위시대가 오면

▲ 1930년 1월12일자 조선일보 만문만화
▲ 1930년 1월12일자 조선일보 만문만화

여성에 대한 주류사회의 관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만문만화는 1930년 1월12일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여성선전시대가 오면’이란 제목은 최근 ‘여성상위시대’를 말하는 일각의 주장을 연상하게 한다. 신체를 상품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여성에 대한 편향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녀자의 다리는 더욱더 사나희의 눈을 끌기에 너무도 아름다워진다…만약 ‘녀성 푸로파간다-시대가 오면’ 다른 곳보다도 그 다리를 광고판 대신 쓸 것 갓다(같다)”는 사진설명과 함께 여성의 다리에 각종 문구가 있는 그림이 실렸다.

그림 속 여성들의 다리에는 “나는 신경질입니다. 이것을 리해(이해)해주어야 해요. 나는 처녀입니다. 돈만 만흐면(많으면) 누구나 조하요.” “나는 집세를 못내엿습니다. 구원해주어요. 나는 쵸코렛을 조아해요. 그것 한 상자만” “나는 외국류학생(유학생)하고 결혼하고저 합니다. 나는 아즉 독신입니다.” “나는 문화주택만 지여주는 이면 일흔살도 괜찬어요. 피아노 한 채만 사주면.” 등의 문구가 써있다.

▲ 1930년 1월15일 조선일보 만문만화
▲ 1930년 1월15일 조선일보 만문만화

‘여성선전시대’를 우려하는 시각은 다른 만화에서도 드러났다. 1930년 1월15일자 조선일보 만문만화를 보면 아내가 남편 목을 조르는 그림과 함께 “시집만 가면 먼저 남편부터 들복는 ‘모던-껄’이 만타. 악을 고래고래 질러 동내방내 떠들석하야 밤에 잠을 못이루게 하나니 만약 ‘녀성 푸로파간다-시대가오면’ 유리집을 짓고 남편을 들복는 광경을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게 보히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설명을 달았다.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

조선일보는 지난 2015년 11월21일자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라는 칼럼에서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여자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고 이들을 비난한 바 있다. 1929년 6월3일자 동아일보 만문만화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동아일보는 ‘서울의 눈꼴틀리는 것’이란 컨셉으로 만화를 연재했는데 이날은 ‘전차에서도 화장’이란 제목으로 전차에서 화장하는 여성을 그렸다. 마음의 아름다움은 꾸미지 않고 외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세태를 눈꼴사납다고 지적하는 내용이다.

▲ 1929년 6월3일 동아일보 만문만화
▲ 1929년 6월3일 동아일보 만문만화

해당 만화 설명에서 “그녀자는 뎐차(전차)에서도 분을발랏다 그러나 그는 아모리(아무리) 미에도 충실한 녀성이었다만 마옴(마음)의 추를 미를 위한 노력의 대가로 나타나뵈엇슴에 어찌하랴! 그래도 몰르고 미인인체하는 것이 그녀자의 용감한곳”이라고 했다.

▲ 1929년 6월12일 동아일보 만문만화
▲ 1929년 6월12일 동아일보 만문만화

동아일보의 ‘서울의 눈꼴틀리는 것’ 연재는 이 뿐이 아니다. 1929년 6월12일자 만문만화에서는 ‘술취한 여자’를 등장시켰다. 만화 설명에선 “아즉까지도 여자가 술집 문 아페서(앞에서) 비틀걸음치는 것은 눈골에 말맛는일이 못되는 모양. (중략) 여자의 주뎡(주정)은 그들의 감정이 단순한 그것만큼 표정도 단순한 까닭인지 구역이나서 혼자 보기가 앗갑다(아깝다)”고 했다. 이 신문은 같은달 5일 ‘눈꼴틀리는 것’으로 신식 옷을 입고 양산을 든 채 종로 네거리를 가는 여성을 그리며 ‘남성들의 시선을 즐기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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