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택시 노동자가 20m 높이의 전신주에 간신히 몸을 의지한 채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4일 새벽,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 기습적으로 올라갔으니, 그가 하늘에 몸을 맡긴지 무려 한 달이나 지났다. 그 노동자의 이름은 김재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장이다.

그가 올라간 조명탑은 사실상 전봇대나 마찬가지다. 원래 사람이 발 딛고 서 있을 공간도 없었다. 하지만 김재주 지부장은 스스로 몸을 의지할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들어 조명탑에 올렸다. 이 구조물은 넓이가 70cm에 불과하고 길이가 2m 에 불과한, 0.3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그는 택시지부 조합원들의 도움으로 밥을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김재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장. 사진=김재주 지부장 제공
김재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장. 사진=김재주 지부장 제공
사실 김재주 지부장과 택시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이들은 전주시청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했다. 그리고 그때의 요구사항과 지금의 요구사항은 다르지 않다. 즉 김재주 지부장은 무언가 ‘같은 이유’로 전주시와 오랫동안 싸워왔고 결국 생명을 담보로 고공농성까지 시작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 요구사항은 ‘전액관리제’다. 택시는 ‘사납금’제로 운영되어 왔는데 이는 택시 노동자들이 하루에 일정 금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나머지 금액만을 챙겨가는 제도다. 이 제도는 부작용이 많았는데, 첫 번째는 택시 노동자들이 들쭉날쭉한 임금에 불안정 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장기노동에 시달려 승객의 안전에 위협이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주노총 택시 노동자들은 ‘전액관리제’를 요구하고 있다. 전액관리제는 택시 기사들이 그날 수익금을 모두 회사로 송금한 뒤 회사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에 맞춰 임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월급제’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1997년 이미 도입된 제도다. 즉, 택시 노동자들의 요구는 ‘새로운 법을 만들라’가 아니라 ‘있는 법을 지키라’일 뿐이다.

지금은 명목상 전액관리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택시 업주들은 택시 노동자에게 ‘공제금’ 형태의 사납금을 물린다. 그리고 전액관리제의 취지에 맞게 남은 돈으로 임금을 지급한다. 문제는 이때 택시 업체들이 노동자들과 계약을 최소 시간으로 한다는 것이다. 택시지부 정준호 경주지회장에 따르면 경주는 이 계약시간이 2시간20분에 불과하다.

전주시청 인근 조명탑에 매달려 있는 김재주 지부장. 사진=김재주 지부장 제공
전주시청 인근 조명탑에 매달려 있는 김재주 지부장. 사진=김재주 지부장 제공
정리를 하면, 택시 노동자들은 하루에 회사에 납부해야 할 사실상의 ‘사납금’이 있다. 하지만 정작 회사와 노동계약을 한 시간은 2시간 남짓이다. 사납금을 7만원 넣어야 하는데, 2시간으론 절대 그 돈을 벌 수 없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일을 10시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받는 일당은 계약시간 2시간의 시급 12000원 정도와 함께 사납금을 납부하고 남은 돈이다.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150만원 정도 된다는 것이 택시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이것은 하루에 10시간 가량 일했을 때 나오는 결과다. 즉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택시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타개해 보고자 김재주 지부장 등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전주시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택시의 운영·관리·감독 권한이 지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농성에 성과가 났다. 전주시 측이 택시 업주들과 노동자들을 불러 모아 갈등을 중재하며, 연구 용역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리고 나름 공정한 과정을 통해 사측이 추천한 전북대와 노측이 추천한 부경대 연구팀을 선정하고 두 용역팀이 하나의 결론을 내기로 했다.

김재주 지부장에 따르면 이 용역팀의 공동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소정근로시간을 6시간 50분으로 늘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주 40시간 노동을 채운다. 그리고 ‘기준금’, 즉 사납금을 물리지 못하게 한다. 이는 현행법인 전액관리제와 사실상 비슷한 결과다. 그런데, 갑자기 전주시가 이 연구용역의 결과를 받지 않고 사실상 사업주 편을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김재주 지부장 및 택시지부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김재주 지부장이 고공농성장 아래 조합원들을 향해 발언하는 모습 사진=김재주 지부장 제공
김재주 지부장이 고공농성장 아래 조합원들을 향해 발언하는 모습 사진=김재주 지부장 제공
김재주 지부장은 “우리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전주시청 앞에서 농성하며 전액관리제, 완전 월급제를 요구했다”며 “그러다 2016년 2월, 노사정 합의를 통해 외부기관에 용역을 줘서 나온 결과를 실시키로 합의 하고 천막농성을 접었는데 그걸 전주시청에서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김재주 지부장이 고공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김 지부장은 “전주시청 출근투쟁에 들어갔는데 얘기도 없고 의지도 없어 보이더라”며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 최고로 이슈화 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이것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올라오니, 시청에서 조금이나마 움직여보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김 지부장이 주장한 전주시의 '움직임'은 이미 완성된 연구용역안을 수정하는 것이다. 사측이 사납금을 받아야겠다며 물러서지 않으니 사측의 입장을 좀 더 반영해서 새로운 용역안을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택시지부 노동자들은 주장한다.

김 지부장은 “택시 사업주가 임금 표준안이 잘못됐다고 거부하니까 연구용역 납품을 받지 않고 용역비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시에서 전북대 측에 사업주 요구안을 추가로 표준안에 넣으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국 사업주들이 요구하는 걸 넣으면 도로 사납금제”라며 “이렇게 할거면 굳이 세비를 들여 용역은 뭐하러 했냐”라고 비판했다.

결국 지금 이 싸움은 이미 존재하는 전액관리제 법을 준수하라는 주장과 함께 노사 양측이 공정하게 용역팀을 꾸려 합의안이 도출됐으니 그 합의안을 지키라는 것이다. 하지만 존재하는 법도, 나온 합의도 자꾸 택시 업주들이 변형을 시키고, 시는 이를 방관하거나 사업주 편만 들고 있다는 것이 택시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김재주 지부장이 고공농성장 아래 조합원들을 향해 발언하는 모습 사진=김재주 지부장 제공
김재주 지부장이 고공농성장 아래 조합원들을 향해 발언하는 모습 사진=김재주 지부장 제공
때문에 아직까지 고공농성은 이어지고 있다. 김재주 지부장은 “용역안을 받아 확정해서 각 회사로 공문을 보내야 한다”며 “6시간 50분의 소정근로시간과 기준금 미달 공제 불가는 절대 양보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머지는 너희 맘대로 정하라”고 덧붙였다.

김 지부장과 전화로 인터뷰 한 4일은 추석날이다. 김 지부장은 90세 노모와 고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산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어머니는 농성만 하시는 줄 알고 있다”며 “연세가 많이 드셔서 어머니가 걱정을 하시니, 집에는 못 들어간다고 말은 했는데 고공농성을 한다고는 말씀을 못 드렸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은 노동자들의 최후의 보루다. 1931년 평원고무농장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임금삭감에 항의하며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붕으로, 굴뚝으로, 전광판으로 올라갔다.

특히 노동탄압이 극심했던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정욱·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차광호 스타케미칼 노동자 등 많은 노동자들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번 추석, 전주에는 택시 노동자가 보기에도 불안한 조명탑에 올라가 있다. 그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이랬다.

“여기서 나름대로 운동도 하고요, 앉았다 일어서기도 하고 푸쉬업도 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좀 불면 흔들거리기는 하는데 사람 하나 누울 정도의 공간은 있습니다.”

(택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미디어오늘 팟캐스트 - 미오캣을 통해 더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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