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댓글부대’ 사건으로 재개된 ‘MB 국가정보원 적폐’ 수사가 ‘연예인 블랙리스트(지원 배제 명단)’를 넘어 공영방송 장악, 정부 비판적 정치인·교수 비방전 및 보수매체 지원, 박원순 서울시장 비판활동 등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피해자 진술을 확보해 온 검찰은 연휴 후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들을 소환해 최종 책임자 규명에 총력을 집중할 모양새다.

‘연예인 블랙리스트’ 관련 현재까지 검찰에 공개 소환된 피해자는 배우 문성근·김여진·김규리 씨 및 방송인 김미화씨 등이다. 김미화씨의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프로그램 하차와 관련해 서아무개 전 라디오 본부장, 김아무개 전 PD 등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블랙리스트 피해자 중 한 명인 방송인 김제동씨도 조사할 계획으로, 김씨는 소환 여부 조율 후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예정이다.

▲ 최승호 전 MBC PD가 지난 9월26일 이명박 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 사건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최승호 전 MBC PD가 지난 9월26일 이명박 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 사건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언론인 블랙리스트’로도 알려진 MBC 방송 장악 기획 사건도 피해자 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검찰에 소환된 최승호 MBC 해직PD를 시작으로 이우환 PD, 정재홍 방송작가(전 PD수첩 메인작가), 김환균 PD, 한학수 PD 등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모두 MBC 프로그램 PD수첩 전 제작진으로, 국정원의 MBC 장악 문건(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에 이름 혹은 직책이 적시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MB 국정원 댓글여론전’의 또다른 피해자인 박원순 서울시장 소환에 대해 “명절 연휴 이후에 진행될 것”이라 밝혔다. 박 시장은 지난달 19일 이명박 전 대통령 및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국정원관계자 10명과 어버이연합 관계자 1명을 국정원법 위반,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배당했다.

‘정부 비판적 정치인·교수 제압 및 보수매체 지원’ 사건은 이제 막 수사에 착수한 단계다. 국정원은 지난달 29일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정부 비판세력 제압 활동’과 관련해 원 전 원장 등을 국정원법 위반(정치관여) 및 업무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송영길·박지원 의원, 조국·이상돈·곽노현 교수 등이 피해자로 지목된다. 이들은 검찰이 피해자 조사에 착수한 후 소환될 여지가 있다.

국정원 개혁위가 원 전 원장에 대한 수사의뢰를 검찰에 거듭 권고함에 따라, 원 전 원장의 검찰 소환 횟수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개혁위는 지난달 11일 ‘박원순 서울시장 비방전’과 관련해 국정원법상 정치 관여 금지 위반을, 연예인 블랙리스트 관련해서는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금지 위반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의뢰했다. ‘정치인·교수 비판활동 제압’ 사건에는 정치관여 위반 및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가 적용됐다. 횡령·배임은 국정원이 2010년 11∼12월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 5개 보수단체가 신문사에 시국광고를 게재할 수 있도록 5천600만원을 지원한 정황과 관련된 혐의다.

원 전 원장은 2010~2012년 동안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하면서 정치에 관여하고 이들에게 70억 원 가량 국가 예산을 지원함 혐의도 사고 있다.

‘국정원 댓글부대 대선개입’ 사태로 유죄를 선고받은 원 전 원장은 추가 기소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지난 8월30일 2012년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검찰은 국정원 전 간부들을 소환하며 윗선을 향한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 검찰은 지난 25일 신승균 전 국익전략실장과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 각종 문서, 개인기록물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지난 26일과 27일 신 전 실장과 추 전 국장을 각각 소환해 각종 불법 정치 공작 혐의와 윗선의 지시 여부를 추궁했다. 국정원 보고라인을 고려할 때 이들의 윗선은 원 전 원장을 좁혀진다.

▲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국내 정치공작을 지휘한 의혹을 받고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6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민중의소리
▲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국내 정치공작을 지휘한 의혹을 받고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6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민중의소리


원 전 원장 다음 소환대상은 누가 될까.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이 한목소리로 지목하는 대상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문성근씨는 지난 18일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서 “국정원이 블랙리스트 부분에 대해 이 전 대통령에게 직보했다는 게 확인됐다”며 “이 사건 전모를 밝혀내는 동시에 이 전 대통령도 직접 소환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승호 해직PD도 “대통령 지시가 아니면 어떻게 공영방송사에 그렇게 (장악) 할 수가 있겠나”며 “이명박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TF 위원장은 지난 17일 라디오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정치공작 혐의에 대해 “정황상 이명박 전 대통령이 3년 동안 대규모로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 여론조작에 관심을 기울였고 추진한 게 아니냐는 여러 방증이 나오고 있다”며 “이 전 대통령의 연루가 과연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라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보는게 저희 입장”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르면 내주 중 원 전 원장 및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혐의 등으로 기소할 예정이다. 오는 8일 민 전 단장 구속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추가 기소로 구속을 연장시킨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기한 내 기소를 할 것이고 (원 전 원장은 민 전 단장과) 공범으로 의율해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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