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영화의 투자, 제작, 배급, 상영 모두를 관여하는 현재 영화 시스템을 해체하면 영화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난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각각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은 대기업이 영화 상영과 배급을 분리하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영비법 이후,CGV와 같은 대기업 측은 영화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영화감독과 배우들은 대기업이 빠진 자리에 다양한 주체의 투자가 이뤄질 수 있기에 투자 위축은 단기적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영화, 어디쯤 가고 있는가: 영비법 개정 이후를 경청하다’ 토론회에는 제작사, 투자배급사, 멀티플렉스(대기업), 영화 감독, 배우, 영화 노동조합 등 다양한 영화 주체들이 참여했다.

▲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국영화, 어디쯤 가고 있는가' 대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국영화, 어디쯤 가고 있는가' 대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현재 한국 영화 생태계는 롯데, 메가박스, CGV 멀티플렉스 3사가 93%의 스크린을 장악한 상황이다. 하지만 대기업 측은 투자와 배급, 극장 상영을 분리하는 영비법이 시행될 경우 영화에 대한 투자가 위축돼 영화 산업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자는 “영화는 사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나 수요 예측이 어려운 특성을 가진 ‘고위험군’ 사업”이라며 “안정적인 배급과 상영 유통망을 미리 확보하지 못할 경우 영화 투자에 대한 위험이 늘어나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성진 담당자는 이러한 투자 위축은 영화 다양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비법의 모태인 미국의 파라마운트 법이 제정된 1948년 이후 관객이 감소하면 바로 극장이 폐쇄되고, 영화 제작이 위축돼 오히려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영비법이 시행되면 영화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과, “다양성 영화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에 영화 주체들은 어느 정도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대기업이 빠진 자리에는 다양한 투자 주체들이 생길 것이기에 투자 위축은 단기간일 것이며, 다양성 영화에 대한 지원을 국가가 시행할 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는 “영비법이 개정되면 현재의 대기업이 아닌 따른 메이저 기업이 등장해 투자를 할 것이라고 본다”라며 “영비법 개정과 함께 문화예술 분야, 다양한 형태의 공적지원구조, 예술인 복지 등에 국가가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진 엣나인 필름 대표 역시 “영화관을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초기 비용이 많다 보니 영화관의 운영주들이 바로 눈앞의 수익에 집중할 것이며, 다양한 영화보다는 돈이 되는 영화를 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대표는 “다양한 영화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과 개인들이 독립예술영화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프랑스의 경우 규제 정책과 함께 객석율 30% 미만 선 지원금 지급, 극장 시설 개선 비용 지원 등의 국가 차원의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반면 대기업의 투자가 위축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영화배우 김의성은 “영비법이 개정되면 투자가 위축된다는 생각은 계열 분리를 싫어하는 쪽의 협박성 논리인 것 같다”며 “다양한 투자처가 나올 수 있기에, 투자가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 대기업 위주 영화 환경이 ‘대형 영화’를 만드는 데만 집중돼 있기에 영비법을 시급하게 개정해 다양한 주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윤철 영화감독(‘말아톤’, ‘대립군’ 등 영화 연출)은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는 한국 영화의 양적 성장에 기여하긴 했으나 질적 변화는 이끌지 못했다”며 “전체 산업이 극장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짜여지기 때문에 창작자, 투자자들 모두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대형 영화에는 특정 감독과 배우만 나온다. 주윤발, 장국영만 나오다가 망한 홍콩 영화판처럼 될 것”이라며 “대기업은 투자만 하게 하고, 배급은 전문적인 유통업자에게 맡겨야 극장에게 꼼짝 못하는 같은 그룹의 배급사들이 내부자 거래를 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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