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대학살이 자행된 1년 후, MBC 기자로 들어가 온갖 파란과 신산함을 겪으며 인생의 황금기, 모멸의 어두운 시간들을 두루 보내다가 34년 6개월 만에 퇴직하다.”

이우호 전 MBC 논설위원실장(60) 페이스북 첫 머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문구다. 그가 35년 동안 MBC 저널리스트로서 ‘온갖 파란과 신산함’을 겪으면서도 놓지 않았던 것은 ‘권력 비판’이었다. 방송 논평을 통해서 ‘민간인 사찰’,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등 MB 정부의 실책과 실정을 끊임없이 비판했기 때문일까. MB 정부의 원세훈 국가정보원은 이 전 실장을 단 한 줄로 낙인 찍었다.

“6·25 남침유도설 언급 등 친북좌파.”

그는 원세훈 원장 지시로 2010년 3월 작성된 MBC 장악 문건(‘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가운데 학살 대상 간부 명단에 올랐다. ‘좌편향 인물과 문제 프로그램 퇴출→노조 무력화→민영화’로 압축되는 문건 내용은 외부 인사들이라면 쉽게 알 수 없는 사찰 정보가 빼곡 담겨 있었다.

2010년 3월 취임한 김재철 MBC 사장은 국정원 문건대로 지역사 사장들을 대폭 교체했고 국·부장급 간부들에 대한 물갈이 인사에도 착수했다. 이 전 실장은 회사 게시판에 “MBC의 독립성을 파괴해선 안 된다”는 글을 썼다가 넉 달 만에 논설위원실에서 특집TF팀으로 발령이 났다. 

2012년 장기 파업 때도 이 전 실장은 회사가 아닌 후배들 편에 섰다. 파업의 대가는 혹독했다. 대기발령 후 ‘신천교육대’라 불렸던 MBC 아카데미에서 ‘브런치 교육’ 등 모욕적인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후 수원총국에서 영업을 담당하다가 미래방송연구소에서 사실상 MBC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그는 “모멸의 어두운 시간”을 끝으로 2015년 12월 MBC에서 정년퇴임했다.

▲ 이우호 전 MBC 논설위원실장이 지난 35년 동안 MBC 저널리스트로서 온갖 파란과 신산함을 겪으면서도 놓지 않았던 것은 ‘권력 비판’이었다. 그는 방송 논평을 통해서 ‘민간인 사찰’,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등 MB 정부의 실책과 실정을 끊임없이 비판했다. MB 정부의 원세훈 국가정보원은 이 전 실장을 단 한 줄로 낙인 찍었다. ‘친북좌파.’ 사진=김도연 기자
▲ 이우호 전 MBC 논설위원실장이 지난 35년 동안 MBC 저널리스트로서 온갖 파란과 신산함을 겪으면서도 놓지 않았던 것은 ‘권력 비판’이었다. 그는 방송 논평을 통해서 ‘민간인 사찰’,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등 MB 정부의 실책과 실정을 끊임없이 비판했다. MB 정부의 원세훈 국가정보원은 이 전 실장을 단 한 줄로 낙인 찍었다. ‘친북좌파.’ 사진=김도연 기자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이 전 실장은 국정원 문건에 대해 “영화 ‘달콤한 인생’ 대사처럼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라며 “방송은 물론이고 사석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초창기 MBC 노조 활동도 하고 ‘시사매거진 2580’ 신설 기획도 했는데 그런 활동이 그들에게 ‘이 사람은 삐딱하고 극단적 성향이다’라는 인식을 준 게 아닌가 싶다”며 “그럼에도 국정원이 개입했을 줄은 전혀 몰랐다”고 술회했다.

다음은 이 전 실장과의 일문일답.

- 국정원 문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어땠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다. 왜 내게 ‘친북좌파’ 딱지를 붙였을까.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면 ‘저한테 왜 그랬어요’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딱 그 심정이다. 논설위원으로서 논평을 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4대강 사업 등 MB 정부 실정을 비판했고 MB 최측근인 최시중·이상득 등의 권력 남용에 대해서 지적했을 뿐이다.”

- 엄기영 전 사장 시절이었는데.

“2008년 3월부터 논설위원실장을 했는데 김재철 사장 때와 비교하면 그래도 ‘엄기영 체제’에선 자율성이 있는 편이었다. 정부 입장에서 껄끄러웠을 논평이 있어도 사장과 본부장은 간여하지 않았다. 2009년 8월 김우룡씨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에 임명되고 뉴라이트 인사들이 대거 방문진에 포진하면서 회사 분위기가 몹시 안 좋아졌다.”

- 국정원 문건에 “정상화 저항 제작본부 산하부서·논설위원실은 대폭적 물갈이 인사”라는 대목이 있다.

“김우룡씨가 방문진 이사장이 된 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잘 아는 지인이 김씨를 사석에서 본 적 있는데 ‘실장이 누구인지 MBC 논설위원실에 문제가 많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거다. 초창기 MBC 노조 활동도 하고 ‘시사매거진 2580’ 신설 기획도 했는데 그런 활동들이 그들에게 ‘이 사람은 삐딱하고 극단적 성향이다’라는 인식을 준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보직이나 중요 자리에서 제거할 필요성이 있었던 게 아닐까 의심한다. 김재철 사장 이후 부장급 이상 인사들에 대한 개인별 성향 분석 파일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많았지만 국정원이 이런 식으로 개입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MBC 논평을 다시 찾아보니 ‘민간인 사찰’,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등 MB 정부의 실정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등 국정원 문건에서 언급된 라디오 방송에는 라디오 논평이 있었다. 우리는 TV·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MB 정부의 실정을 비판했지만 절제된 어조였다. 무리한 논평은 없었다. 뜨거운 정치적 쟁점을 피하지 않았을 뿐이다.”

▲ 이우호 전 MBC 논설위원실장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우호 전 MBC 논설위원실장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문건에는 “공정방송노조(제2노조)를 통해 노조 배후 인물들의 부도덕성 등 내부 비리 폭로 독려” 등의 대목도 있다. 노노 갈등을 유발하기 위함인데 실제 사내에서 제2노조는 어떠했나. 

“공정방송노조는 다른 매체와 비교하며 MBC 보도나 PD수첩을 논평하고 그랬다. 그땐 그냥 말이 안 되는 소리라 무시하고 그랬는데 문건에 언급된 것을 보면, (국정원과) 제거 작업을 함께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일보고’라면서 터무니없이 사내 비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공정방송노조를 활용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는 지난 20일 “공정방송노조를 활용하려던 국정원의 계획은 실패했다”며 “한때 부장급 이상 간부 100여 명이었던 공정방송노조 조합원은 현재 1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 2012년 파업에도 참여했다. 그 대가는 ‘신천교육대’였다.

“당시 10여 명 이상의 30년차 안팎 MBC 기자들이 나락으로 빠진 회사를 위한 해결책은 김재철 사장 퇴진뿐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고 파업에 가담했다. 대기발령을 받은 뒤 후배들과 함께 3달 간 MBC 아카데미에서 강제 교육을 받았다.”

- 지난 30년 동안 MBC 저널리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브런치 교육’을 받았을 때는 어떤 심정이었나.

“물론, 모멸감이나 굴욕감이 들기도 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MBC 영향력을 키웠던 후배 기자·PD·아나운서들 100여 명이 현장 아닌 곳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고 서글펐다. 파업 참여 인력에 대한 인사 배제를 주도하면서 사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서로 감시하게 만들었던 MBC 고위 간부들이 끼친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은 콘텐츠 경쟁력이나 방송사 신뢰도나 영향력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은 완전히 망가져서 ‘무관심 매체’로 전락한 것이 MBC다. 정작 해고되거나 변방으로 쫓겨난 친구들이야말로 1990년대 중반부터 전성기를 구가한 MBC의 주역들 아닌가. MBC 경영진은 해고 복직 판결이 나도 뭉갰고 기자·PD들에게 스케이트장 관리를 맡겼다. MBC 개혁 과제로 ‘적폐 청산’이 필요한 이유다. (방송장악에 대한) 확실한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그 토대 위에서 바로세우기를 해야 한다.”

▲ 지난 5일 오전 서울 마포 고용노동부 서부지청에 출석한 김장겸 MBC 사장. 그는 MBC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5일 오전 서울 마포 고용노동부 서부지청에 출석한 김장겸 MBC 사장. 그는 MBC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5공 시절 MBC에 입사했다. 그때도 방송기자로서 자괴감은 컸을 것 같다.

“언론인 70~80명에 대한 신군부의 대량 해직이 이뤄진 뒤 1981년 MBC에 입사했다. 5공 시절 스포츠 취재부에서 프로야구를 담당했다. 독재 정권의 ‘3S 정책’ ‘우민화 정책’에 복무한 셈이다. 땡전뉴스 일선 현장에선 한 발 비껴 있었지만 나 역시 떳떳하지 못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며 민주화 요구가 들끓던 그때 입사 7년차 동기생 6명과 함께 ‘청와대 파견 관선 경영진 퇴진’을 촉구하며 방송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했다. 안기부, 보안사 등 기관원들과 청와대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해 12월 노조가 생겼고 이듬해인 88년 8월 방송사 최초로 파업에 돌입하면서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했다. 기자와 PD들을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가 보도·제작 자율성으로 이어졌다. 5공 시절부터 타성에 젖은 간부들이 후배들을 피곤하게 했지만, 그럼에도 보도국이나 시사 부문 모두 시끌시끌했다. 살아있는 조직이었다. MBC가 1990년대 중반부터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배경이 됐다.”

- 당시 김장겸 사장은 어떤 인물이었나.

“밖에서는 그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MBC 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스타일이다. 주목할 만한 인사는 아니었다.”

- 후배들은 5년 만에 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승리할 수 있다고 보나.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 밀려나 있는 인재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면 걱정하는 것보다 MBC가 빠르게 회복될 거라고 생각한다. 본래 기자·PD들은 보수, 진보를 떠나 리버럴한 존재들이다. 자꾸 위에서 간섭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콘텐츠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조직 내 만연했던 ‘공포’가 제거돼야 한다. 현재 후배들의 총파업은 MBC를 되살릴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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