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중인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새로운 방송법 개정안이 진행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방송법 개정안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통과가 되더라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한국형 공영방송 모델’을 검토하도록 7가지 제안을 한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현재 방송법은 여야 간 이사 추천 숫자 차이가 많아 지나치게 정파적”이라며 “정파적인 싸움을 피할 수 없어 덜 정파적인 구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대안으로 ‘덜 정파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더 정파적이고 덜 정파적이라는 판단’은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또 다시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방송의 불공정성, 정파성 때문에 파행을 하는데 ‘덜 정파적’인 것 정도로는 안될 것이다. 한국 같이 정치과잉, 승자독식 구조속에서 정파성을 없애는 것은 곧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의미한다. 방송의 고질적인 정파성을 차단하고 공정방송을 강화하는 ‘한국형 공영방송 모델’을 위한 7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과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과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첫째, 여야 구성비 : 공영방송 이사 여야 구성비는 1:1로 같게 하여 정파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현재 여야가 6:3의 비율을 5:4로 조정하고 사장 선임을 3분의 2가 찬성하는 절대다수제로 개정하더라도 정치적 독립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차선책으로 제시된 개정안이지만 사장 뽑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여야는 이사 선임 비율을 공평하게 1:1로 하고 추천 인원수도 한명씩만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포기내지 양보해야 하는데, 매우 어려운 숙제가 된다. 현재나 개정안처럼 국회의원과 정치인에게 이사 추천 전권을 맡겨놓는 식으로는 절대로 정파성을 탈피할 수 없다. ‘덜 정파적’이어서도 안된다. 여야가 다투다가 야야끼리 서로 한명씩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후진국형 정치다툼은 또 다른 파행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사 자격조건 : KBS·MBC 공영방송 이사 선임 자격조건을 강화한다

현재처럼 각당 밀실에서 학교후배, 이념성향을 따져 묻지마식 이사선임으로는 공영방송의 독립과 공정방송을 담보할 수 없다. BBC의 경우 이사나 경영진에 대해서 △사리사욕금지 △청렴성 △객관성 △책임성 △공개성 △정직성 △통솔력 등 7개의 소위 ‘놀란 원칙(Nolan Principles)’을 적용한다. 정치권에서 추천, 선임된 이사들도 ‘BBC에 들어오는 순간, BBC의 명예와 신뢰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고 할 정도로 한국의 추천이사와는 인식과 태도가 다르다. 한국에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 조건은 최소한 도덕성, 정직성, 전문성, 책임성 등은 따져야 한다.

▲ 영국 BBC 정문. 사진=정철운 기자
▲ 영국 BBC 정문. 사진=정철운 기자
셋째, 이사 선임방식 : 이사 선임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당위성을 명시해야 한다

이사 자격조건도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최소한의 절차적 검증과정없이 선임되는 방식은 공영방송의 불행을 잉태하는 것이다. 공영방송 독립은 이사 선임 절차에서부터 투명해야 한다. 검증된 사람이 제도를 살리는 법이다. 이사 추천의 폭은 넓히더라도 방송통신위원회 내부에서 독립적인 소위원회를 구성, 공개된 절차와 방식을 통해 청문회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검증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넷째, 이사 인원 : 공영방송 이사를 현재의 숫자에서 최소 33인으로 늘여야 한다

현재처럼 공영방송 이사수가 9~11명의 경우, 청탁이 쉬워지고 학연이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을 내리기가 쉬워진다. 대신 상징적인 숫자지만, 33인 이상이 될 경우, 비밀 유지도 어려워지고 청탁은 쉽지 않게 된다. 33인은 국회 여야 1인씩 추천 이사를 포함,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지역대표 등 범위를 확대하여 방송의 공영성과 공공성, 독립성을 확보하도록 한다.

독일 공영방송 사장 선임권은 독립적 감독기관인 방송위원회(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가 갖는다. 방송위원회는 정당대표, 사회단체, 종교단체 등 다양한 이해집단의 대표 77명으로 구성되며 사장 선임은 이들 위원들이 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기 쉽지 않다.

▲ 9월1일 저녁에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에 입장하는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9월1일 저녁에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에 입장하는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다섯째, 중간평가제도 : 공영방송 사장 중간평가 제도를 도입한다

중간평가는 내부 구성원들의 평가 50%와 시청자 여론조사 50%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일정 지지율을 얻지 못할 경우 임기중이라 하더라도 해임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향후 방송독립이 이루어지면 이런 중간평가 제도가 필요 없어진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한시적으로 이중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과 제도만이 인간의 일탈과 무책임함을 통제할 수 있기때문이다.

여섯째, 시청자위원회 : 시청자 위원회 구성을 독립적으로 하도록 한다

개정된 방송법으로 시청자 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각 방송사 시청자 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방송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견제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어 파업상황을 키운 셈이다. 심지어 방송사 사장 친구나 탄핵당한 대통령 변호사 등을 시청자 위원으로 선정 ‘기득권자들의 사랑방’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마저 받는다. 시청자 위원회는 방송사 제작 책임자들을 불러 불공정방송 등을 따지고 시정을 요구하는 또 다른 형태의 강력한 견제장치지만 그것을 무력화시켰다. 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아울러 살펴야 할 제도개선 분야이다.

마지막으로, 옴부즈만 프로그램 : 옴부즈만 프로그램을 옴부즈만답게 만들도록 하라

개정된 방송법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자사 프로그램을 비판, 견제하도록 옴부즈만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방영하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자사 프로를 비판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서로 제작을 꺼릴 뿐만아니라 방영시간대도 일반 시청자가 보기 힘든 시간에 편성하는 등 이 역시 유명무실화 됐다. 좋은 제도가 현실에서 이처럼 자사 비판은커녕 오히려 자사 홍보수단으로 전락하는데 대책이 없다. 옴부즈맨 프로의 아이템 선정과 제작, 편성 등을 독립적으로 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시급하다. 그러나 법만으로 이 모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법과 함께 이미 도입된 선진제도를 무력화시키는 방송사 경영진들의 부도덕, 무책임함을 이중, 삼중으로 감시할 수 있는 기존제도를 활성화 시키는 방안도 동시에 검토해야 법이 실질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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