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저녁 6시30분 쯤,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 주관하는 7차 ‘돌마고 불금파티’에 참석한 1000여 명의 시민과 언론인들이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을 가득 채웠다. 사회자(오언종 KBS 아나운서)가 행사 시작을 알리려고 하는데, KBS와 MBC 노조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관중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6시35분쯤 무대 위의 대형 스크린에 진기한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 방송사 노조원 200여명이 63빌딩 안의 대연회장 입구에서 “고대영은 나와라”를 외치는 것이었다. 고대영 KBS 사장은 그날 오후에 열린 ‘방송의 날’ 행사를 ‘공범자들’과 함께 진행한 뒤 축하연회장으로 옮겨 가다가 그들을 보고 혼비백산해서 복도 옆의 작은 방으로 숨어버렸다고 한다. 

성재호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장은 일행을 대표해서 고대영 사장이 ‘셀프 감금’ 당한 방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사장님, 얼굴 좀 보여주세요. 6월 말부터 사장님이 몰래 출퇴근을 시작한 이래 저희 사원들은 단 한 번도 사장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빨리 나오시죠.” 30분 가까이 버티던 고대영 사장은 경찰을 불러 ‘호위’를 받으면서 방에서 나왔다. 양대 공영방송 노조원들은 “고대영은 물러나라”를 연호하며 물리적으로 그와 접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고대영 사장은 언론사 카메라 기자들의 플래시가 폭죽처럼 터지는 사이를 가까스로 비집고 연회장으로 사라졌다.

▲ 9월1일 저녁에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에 입장하는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9월1일 저녁에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에 입장하는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고대영 사장의 ‘탈출극’이 시작되기 전인 그날 오후에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연회장에서 그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수행원들과 함께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바로 이튿날인 9월 2일 오후 ‘희대의 코미디’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사건이 터졌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김장겸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는 방송 장악 음모”라며 지난 1일 시작된 정기국회 일정에 일절 참여하지 않기로 결의한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지금 이 정부에서 추진하는 방향을 보니까 더 이상 지켜보다가는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 가운데 핵심은 이런 것이었다. “요즘 보면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연상시킨다. 강성 귀족노조를 앞장세워서 한국사회 전체를 강성 귀족노조 세상으로 만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게 언론노조다. 민주노총의 언론노조가 중심이 되어 MBC·KBS를 노영방송으로 만들어서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겠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 19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걸핏하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좌파’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그런 흑색선전에 아랑곳하지 않고 홍준표 후보가 얻은 것보다 570만 표 이상을 문재인 후보에게 줘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그런 참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는지, 홍준표 대표는 한 동안 외국에 나가 있다가 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되어 정계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막말과 ‘좌파 망국론’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심해졌다. 그 절정이 이번 의원총회에서 드러난 셈이다. 그는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 발부는 “우리 언론을 장악하려는 이 정부가 좌파 포퓰리즘 독재정권으로 가는 시동이 걸렸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러한 작태를 보고서 올바른 소리를 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대한민국이 올바르게 갈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자유한국당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대표의 이런 주장은 적반하장과 후안무치의 극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왜 그런지를 간략히 따져보겠다.

▲ 지난 6월18일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여의도에 위치한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새 대표 선출을 위한 7·3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사진=노컷뉴스
▲ 지난 6월18일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여의도에 위치한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새 대표 선출을 위한 7·3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사진=노컷뉴스

1961년 5·16 쿠데타 이래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한 ‘주체’는 박정희와 민주공화당, 전두환과 민주정의당, 노태우와 민주자유당, 이명박과 한나라당, 박근혜와 새누리당이었다. 자유한국당은 그 보수정당의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자처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보수언론에 대해 ‘유화책’으로 일관하다 임기 중반을 앞두고 조선·중앙·동아·한국일보사 경영책임자들을 세무조사하라고 지시한 끝에 감옥에 보내기는 했지만 끝내 그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거센 반격에 시달려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대중보다 강하게 극우보수언론에 맞섰으나 그들의 융단폭격에 밀려 ‘죽음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1960년대 이래 정권의 언론 탄압과 장악은 박정희부터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보수정권이 주도했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홍준표 대표는 뜬금없이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 발부를 문재인 정부의 ‘정치공작’인 듯이 선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권력은 언론을 장악해서는 안되고, 관련 기관들과 국민들이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말이다.

검사 출신이자 변호사이기도 한 홍준표 대표는 긴급의원총회에서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 발부에 대해 사실과 동떨어지는 주장을 나열했다. “중대성·긴급성이 없는데도 방송의 날을 기습적으로 선택해 영장을 청구해 공영방송을 노영방송으로 만들려고 한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영장청구를 결정할 수 있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면밀한 시나리오를 갖고 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노동부 특별사법경찰관(근로감독관)이 체포영장을 청구한 사례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현행법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은 지난 6월29일부터 MBC 전·현직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뒤 지난 17일 백종문 MBC 부사장과 최기화 기획본부장, 24일 안광한 전 MBC 사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그러나 김장겸 사장은 3~4차례나 소환 요구를 받고도 불응하다가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이다. 근로감독관은 피의자가 3번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통상적으로 체포영장 청구를 검찰에 신청해 법원의 결정을 받는다고 한다. “홍 대표는 팩트에서도 헛발질을 했다. 

한겨레가 관련 통계를 확인해 본 결과, 특별사법경찰인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신청한 체포영장이 검찰의 청구로 법원에서 발부된 사례는 지난해에만 1459건에 달한다. 구속영장을 신청해 발부된 건수도 19건이 있다. 올해에도 근로감독관 신청으로 872건의 체포영장과 26건의 구속영장이 각각 발부됐다.”

▲ 김장겸 MBC 사장이 직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지난 9월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방송의날 기념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 사장이 직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지난 9월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방송의날 기념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전국언론노조를 비롯한 237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은 두 회사 노조와 함께 언론장악의 ‘공범자들’을 퇴진시키는 운동을 강력히 펼치고 있다. 핵심 표적은 고대영 KBS 사장과 이인호 KBS 이사장, 김장겸 MBC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이다. 언론단체들과 두 노조의 고소·고발에 따라 이 4명은 모두 형사피의자가 되어 있다.

자유한국당(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언론을 장악하고 탄압하면서 KBS와 MBC를 ‘청와대방송’으로 전락시킨 ‘공범’이라는 증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도 그들은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 발부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투의 선전을 계속하고 있다. 3일 오전 북한이 폭발력 500kt의 핵실험에 성공하는 대형 사건이 터졌는데도 자유한국당은 정기국회 보이콧 결정을 고수하겠다고 한다. 민생과 안보를 비롯해 온갖 난제를 해결하고 과거의 적폐를 청산해야 하는 역사적 과업을 앞두고 있는 정기국회를 그들의 정치적 계산 때문에 보이콧하는 작태는 주권자 대다수의 엄중한 비판에 부닥칠 것이 분명하다. ‘공범자들과 자유한국당의 카르텔’은 촛불혁명이 일으킨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한낱 불씨처럼 사그라질 것이다.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는 4일(월요일) 0시부터 총파업에 들어갔고 , KBS노동조합(구노조)이 7일부터 뒤를 잇는다. 그 투쟁은 공영방송을 권력에 바치려는 것이 아니라 언론노동자들이 기나긴 세월 갈구해온 공정방송과 자유언론을 쟁취하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다.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그들의 결의는 지금 하늘을 찌르고 있다.

※ 소개 말씀: 8차 ‘돌마고 불금파티’가 오는 금요일(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립니다. 6차(청계광장)에 이어 광화문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것입니다.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을 계기로 언론에 대서특필된 자유한국당의 정기국회 보이콧이 빚어낸 홍보 효과 덕분에 많은 시민들이 촛불혁명의 뜨거운 기억을 되살려 불금파티에 참여하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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