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언론인들이 총파업을 선언한 지난달 30일, 이상호 MBC 해직기자(2013년 1월 해고)가 연출한 영화 ‘김광석’(15세 관람가)이 개봉했다. 자살로 알려진 가수 김광석(1964~1996, 향년 31세)의 죽음을 20년 추적해 1년 편집한 이상호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영화 ‘김광석’은 김광석의 목소리가 흐르는 ‘음악영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공지영 작가 표현대로 “미저리 이후 최고의 서스펜스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21년 전 MBC에서 싹을 틔웠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는 ‘김광석’ 영화평을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그에 따르면 김광석이 사망한 1996년 1월6일 토요일, 박성제 기자는 마포·서대문·은평 지역을 담당하던 3년차 사건기자였다. 야근하던 중 수습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가수 김광석이 전기 줄로 목을 맨 채 있었다는 소식이었다.

자살로 처리해 평범한 스트레이트로 보도한 며칠 뒤, 수습기자가 박 기자에게 ‘타살 같다’고 보고했다. 자살동기나 유서도 없고, 자살현장도 이상했을 뿐 아니라 수습기자는 김광석이 사망 몇 시간 전 새 음반을 계약했다는 사실까지 취재해 보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타살 혐의가 없다고 결론 냈고, 사건은 묻혔다. 당시 수습기자는 불만이 많아보였지만 박 기자는 ‘그러다 말겠지’싶었다고 했다. 그 수습기자는 이상호였다.

영화 ‘김광석’이 제기하는 의혹들 때문인지 박영수 특검팀, 이재명 성남시장, 가수 전인권 등 사회각계 인사들이 영화에 관심을 보였다. 이 감독은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제가 만들긴 했지만 관객들이 보고 스스로 알리는 ‘관객들의 영화’”라며 개봉 3일이 흐른 시점에서 “분위기가 매우 뜨겁다”고 말했다. ‘김광석’은 전국 195개 개봉관, 210개 스크린으로 시작했다.

▲ 영화 '김광석' 포스터
▲ 영화 '김광석' 포스터

이 감독은 김광석의 아내 서해순씨와 3차례(1996년, 2002년, 2003년) 진행한 인터뷰를 영화에서 공개했다. 김광석 죽음에 대한 서씨의 표현은 조금씩 변했다. 서씨는 사건 3시간 반 정도 지난 시점 세브란스 병원에서 ‘실수’였다고 표현했지만 이후엔 ‘자살’이라고 주장했다. 이 감독은 “최초 목격자이자인 서씨가 주장했던 증거들이 타살 의혹을 반증하는 자료”라고 말했다.

영화는 김광석의 자살을 주장하는 서씨를 용의자 위치에 올려놓고 있다. 이 감독은 “자살이라고 했던 근거가 우울증이 심했다는 것과 여자관계가 있었다는 것인데, (김광석) 신체에서 우울증 약도 안 나왔고, 여자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반대(서씨의 남자)문제가 있었던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한 “자살에 쓰였다고 (서씨가 주장한) 전선은 턱없이 짧아서 목에 맬 수도 없었다”며 “(김광석이 자신의 목에) 전선을 세 바퀴 감았다고 하는데 목에 흔적 남은 건 한 줄이고 목 뒤쪽에는 줄 자국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그밖에도 충격적인 사실들을 보여준다. 서씨가 김광석 아버지에게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김광석이 남긴 재산의 규모, 서씨의 남자관계 등 이 감독은 그간의 취재를 82분에 걸쳐 풀어냈다.

추적과정에서 이 감독의 취재공간인 고발뉴스 사무실이 침수돼 취재자료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다. 이 감독은 “복구가 안 돼 못 쓴 것도 제법 있고, 다시 취재한 것도 있다”며 “기자로서 매우 아픈 기억”이라고 말했다.

▲ 영화 '김광석' 예고편 갈무리
▲ 영화 '김광석' 예고편 갈무리

이 감독은 김광석 저작권·초상권을 소유한 게 서씨라 김광석의 자작곡은 영화에 사용할 수 없었다. 이 감독은 “아마 서씨도 지금쯤은 영화 내용을 접했을 텐데 서씨에게 소송이 들어와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며 “영화는 그밖에도 다양한 팩트들을 통해 서씨를 압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서지 않고 있는 게 의아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서씨가 영화에 대해 답을 해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 사건이 김광석만의 사건으로 끝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 해 3만 명이 넘는 변사자가 나오는데 제대로 된 진상규명 없이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선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감독은 “더 많은 분들이 영화를 봐서 용의자에 대한 수사를 가능하게 하는 ‘김광석법’ 동력이 확보되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광석법’이란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할 만한 중대한 단서가 발견될 경우, 해당 사건에 한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을 말한다. 이 감독은 홈페이지 ‘김광석.kr’을 통해 ‘김광석법’ 입법청원 서명을 받고 있다.

이 감독은 “10만 명이 서명하면 입법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며 “안민석·박주민·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 등이 이 법에 관심이 많고 시사회에도 와주셨다”고 말했다.

영화는 김광석 죽음에 대한 추가적인 제보를 기다린다는 메시지로 마무리한다. 김광석 죽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로 보인다. 이 감독은 그 외에도 “전두환 문제도 취재 중이며, 박근혜 7시간은 취재 마무리 단계”라며 “자본의 횡포와 독재에 대해서도 계속 취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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