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마이크를 빼앗긴 MBC 아나운서들의 손을 KBS 아나운서들이 잡았다. 서울 상암동 MBC 로비에서 마이크를 쥔 KBS 아나운서들은 MBC 아나운서들을 격려하며 오는 4일 KBS·MBC 동시 파업에서도 연대를 이어갈 뜻을 밝혔다.

31일 오전 KBS 아나운서들 20명은 MBC를 지지 방문했다. 이들은 오는 4일 KBS와 MBC 동시 파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방송 KBS와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두 공영방송을 되살리자”고 호소했다.

윤인구 KBS 아나운서는 “MBC 아나운서들이 없는 KBS 아나운서는 생각한 적 없다”며 “(MBC 아나운서들은) 시청률을 다투며 선의의 경쟁을 했다. 서로 존재하기 때문에 위안이 되고 든든한 존재”라고 말했다.

윤 아나운서는 “이들이 라디오에서 안 보인 지 오래됐다. 지금은 친구들에게 마이크를 돌려줄 때”라며 “영원한 맞수이자 강력한 조력자인 KBS 아나운서들이 있기에 MBC 아나운서들은 외롭지 않을 것”이라며 지지의 뜻을 밝혔다.

마이크를 이어 받은 이범용 아나운서도 연대 발언을 이어갔다. 이 아나운서는 “저도 저성과자로 낙인찍히기도 했고 원하는 방송을 못 만드는 상황도 겪었지만 KBS 아나운서 직함은 완전히 뺏기지는 않았다”며 “MBC 아나운서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난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감히 힘들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 31일 오전 KBS 아나운서 20명이 MBC 사옥을 방문해 MBC 아나운서들과 연대의 뜻을 밝혔다. 사진=정철운 기자
▲ 31일 오전 KBS 아나운서 20명이 MBC 사옥을 방문해 MBC 아나운서들과 연대의 뜻을 밝혔다. 사진=정철운 기자
KBS 아나운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최원정 아나운서도 “2012년 파업 당시 함께 했던 동지여러분들은 너무 피투성이가 된 채 (MBC로) 돌아가야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MBC 아나운서들은 상식적이라는 이유로 TV와 라디오에서 사라졌다”며 “좋은 세상이 와 ‘2017년 9월’이 어느 때보다 푸르고 뜨거운 웃음으로 가득했던 때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스포츠취재팀 기자들이 ‘돌아와요 마봉춘’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맞춰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31일 오후 열리는 이란과의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있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 유니폼을 입고, 중계 화면에 잡힐 만한 곳에 앉아 국민들에게 공영방송 정상화 뜻을 알릴 계획이다. 이들은 “9월 중순 잠실야구장에서도 외야 한 블록을 점령할 예정”이라며 “야구는 풀샷이 있어 대형 펼침막을 펼치면 (중계 화면) 풀샷에 안 걸릴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MBC 스포츠취재팀 기자들이 '돌아와요마봉춘'이라는 글귀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있다. 사진=정철운 기자.
▲ MBC 스포츠취재팀 기자들이 '돌아와요마봉춘'이라는 글귀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있다. 사진=정철운 기자.

2015년 4월 경력 사원으로 입사한 경영 부문의 김경태 조합원도 연대 발언을 했다. 김장겸 사장 첫 출근날부터 피켓을 들고 사장 퇴진을 요구했던 김 조합원은 “지난 몇 년 동안 MBC는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많은 폭력을 저질렀고 경영진은 나의 선배들과 동료들을 짓밟았다. 동료들을 대체하기 위해 저희 같은 경력사원을 뽑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MBC 경영진)을 위해 그 자리에 앉아있던 게 부끄러워 피켓을 들고 외쳤다”며 “많이 늦어 죄송하지만 이제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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