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던 시민들의 외침은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감옥으로 보냈다. 그러나 시민들이 외친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발걸음은 이제야 출발선에 올랐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도 갈길이 멀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차별은 여전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년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민생 안정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2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촛불혁명,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다’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난 촛불 혁명의 뜨거운 열망을 돌아보고, 정권 창출 이후 촛불 집회 당시 터져나온 한국 사회의 개혁과제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로 구성됐다.

촛불집회를 주관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대변인을 맡았던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촛불집회와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전하며 큰 도움을 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당시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 참여인원을 집계하는 과정에서 서울시는 광화문 주변 지하철역 하차 인원을 10월29일부터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안 처장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공개안해왔던 것을 박 시장이 정보공개 원칙에 따라 시민들에게 보내준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경찰은 참석인원을 축소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역시 지방정부를 잘 뽑으면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덕분에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00만명이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2017년 3월까지 촛불집회 참석 누적인원이 국민의 3분의 1에 달하는 1700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집계할 수 있었다. 안 처장은 “보통 두 명에서 네 명이 사는데, 사실상 집집마다 한 명은 나온 셈이다. 촛불집회에 범국민적으로 참여한 것이라는 것이 수치와 통계로 드러났다”고 소회를 전했다.

촛불집회 당시 퇴진행동의 대변인으로 활동한 안 처장은 중국 관영방송사인 CCTV 등 해외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마다 대변인이 아니라 ‘집회조직자’(CCTV)나 ‘프로테스트 리더(protest leader)’ 등의 ‘무시무시한’ 호칭으로 불렸다는 웃지못할 일화도 전했다. 안 처장은 “저는 리더가 아니라 국민들이 리드했고, 이를 옆에서 실무한 옆지기였다. 국민들이 편안한 집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안 처장은 독일의 에버트재단이 민주시민상 후보로 대한민국 국민 전부를 올렸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안 처장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절대권력을 감옥에 보내고, 박근혜씨보다 더 큰 권력인, 한번도 실형을 받은 적 없는 삼성 일가를 감옥에 보냈다. 물론 아쉬운 판결이지만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며 “바로 여러분들이 해내셨다. 우리 국민들과 같은 국민이라는 게 자랑스럽고 든든하다”고 극찬했다.

▲ 지난 3월11일 열린 마지막 박근혜퇴진 촛불집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이끌어내기까지의 민주시민들의 노고를 자축하는 폭죽 퍼포먼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3월11일 열린 마지막 박근혜퇴진 촛불집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이끌어내기까지의 민주시민들의 노고를 자축하는 폭죽 퍼포먼스. 사진=이치열 기자.
최상훈 뉴욕타임즈 기자는 외신 기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의 촛불혁명을 소개했다. 외신기자들 사이에서도 세월호 참사라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 이후에도 한국 사회가 싸우는 듯한 모습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결국 한국사회에 큰 일이 벌어질 수 밖에 없겠구나”하는 상상을 했다고 전했다.

특히 외신기자들은 촛불집회를 즐거운 축제의 장이면서 동시에 정치권을 직접 움직였던 시민의 힘이 발휘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한편으로 한국 사회는 공권력 등 엘리트 집단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매번 사회문제가 생길 때마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 정치권을 움직여야만 했다는 점에서 ‘데모를 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나라’라는 평가도 있다.

최 기자는 “70~80년대부터 한국을 취재해온 외신기자들은 (한국을) ‘데모를 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나라’라고도 한다”며 “시민들은 기득권이나 검찰, 정부, 정당, 국회 등에 대한 신뢰성이 없는 것 같다. 엘리트들이 해야 하는데 (시민들은) 우리라도 나서서 외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는 것이 외국의 시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이 원한 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업그레이드되고 한국 사회에 지속된 문제점을 해결하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번에도 중요한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세계가 주목하고 극찬했던 촛불혁명이었지만 이제 과거에 켜켜이 쌓인 적폐를 어떻게 걷어내느냐가 관건이다. 국회가 얼마나 국민의 촛불 열망을 반영한 입법과제를 실현해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정치권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시민들이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도 촛불 시민들에게 남은 역할이라는 지적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외국학자의 시선에서 촛불시민을 향해 “우리의 운명은 국민에게 달려있다”는 조언을 내놓았다. 임마누엘 교수는 특히 시민들에게 “‘촛불시민은 위대’하다고 부추기는 언론의 감언이설을 조심하라”며 “밤낮으로 정치인을 관찰하고 감시해보라”고 전했다.

임마누엘 교수는 언론에 대해 “24시간 내내 최순실 사태를 자극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정작 한국을 위태롭게 하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외교적 도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게 했다”며 “보수 매체든, 진보 매체든 의회를 통과한 법안, 정부 지원금을 받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이 정책에 대해 말해 주지 않으니, 우리도 알 길이 없다”고 비판했다.

언론이 정책과 법안에 대한 감시의 칼날을 들이대지 않은 결과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무감시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임마누엘 교수는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이들이 갈취한 금액은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쏟아부은 21조원이나 자원 외교에 낭비한 수십조원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며 “그런데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멀쩡하고 박근혜는 탄핵됐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정책을 결정할 때 정부 관련 기관을 중간에 끼고 진행해 대통령 개인의 비리가 감춰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헀다.

▲ 지난 3월11일 마지막 박근혜퇴진 촛불집회에서 집회가 끝난 뒤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던 중 한 시민이 경복궁 담벼락에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글귀를 띄웠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3월11일 마지막 박근혜퇴진 촛불집회에서 집회가 끝난 뒤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던 중 한 시민이 경복궁 담벼락에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글귀를 띄웠다. 사진=이치열 기자.
촛불 개혁을 위해서는 물론 정치권의 역할도 중요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까지 이어진 탄핵 연대가 지금 개혁 입법연대로 이어지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다”며 “촛불 집회로 인해 한국 보수 정당은 1948년 이후 가장 허약한 상황이다. 촛불 시민이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인데, 촛불 연대가 해체되면 보수가 재결합된다. 민주개혁세력이 87년에 이어 또 한번 실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범계 의원도 “앞으로 다시는 이와 같은 국정농단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수동적 민주주의의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결정집행에 참여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촛불 민주주의이며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제1의 국정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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