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이 또 다시 개정논의의 물살을 타고 있다. 거대 양당 체제에서 다수당 체제로 바뀐 만큼 그에 맞는 국회선진화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안인 만큼 정략적 차원에서의 개정 논의는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선진화법의 개정 논의의 불을 지핀 것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20대 국회가 국민의 불신을 극복하고 신뢰받는 국회, 일하는 국회가 되려면 국회선진화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 또한 김 원내대표는 “선진화법은 여야의 주고받기식 협상카드로 전락하고, 식물국회의 근거가 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처럼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국회가 쟁점법안 처리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짚으며 “(선진화법상) 신속처리안건이 지정돼도 처리까지 최대 331일이 걸리게 돼 국회 후진화를 유발한다”며 “이제 다당제 현실에 맞게 (기준을) 단순 과반으로 고치고 민생 최우선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우 원내대표는 23일 원내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회선진화법은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난관이 있지 않나. 4당 체제에선 굉장히 어려움이 있다”라며 “야당의견을 반영해 함께 논의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반면 보수야당들은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여당의 일방독주와 독선에 철로와 고속도로를 깔아주게 된다”며 “여야 4당 체제에서 협치의 정신부터 되살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도 23일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국회선진화법 개정이 양당체제하에서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협치의 정신은 오히려 양당제보다 지금의 다당제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선진화법의 개정을 시사하는 목소리는 도입 직후부터 계속 불거졌다. 처음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한 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당시 박 비대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에 치러진 2012년 총선 때 국회선진화법을 공약으로 내세워 정치 개혁의 이미지를 부각했다.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는 좋았다. 양당제 하에서 과반을 차지한 하나의 다수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합의 없이 직권상정된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를 막으려 나머지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던 상황을 막기 위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가 합의하지 않아도 본회의 직권상정을 통해 ‘신속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한 의석수를 재적의원 5분의3인 180석으로 제한했다. 국회선진화법이 없었을 때 당시 한나라당이 강행해 통과된 대표적인 악법 중 하나가 2009년 종합편성채널의 탄생의 기반이 된 ‘미디어법’이기도 하다.

▲ 2010년 12월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단상을 지키기 위한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 2010년 12월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단상을 지키기 위한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이후 새누리당의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입장은 이와 달라졌다. 2016년 20대 총선 결과로 과반 의석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던 규제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됐다.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 개정 요구를 넘어, 2016년에는 헌법재판소에 국회선진화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권한쟁의 심판 청구까지 냈지만 헌재는 각하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당이 국민의당이 꺼내 든 국회선진화법 개정 요구에 반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사실 당시 새누리당의 입장과 같은 여당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시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부 추진 과제와는 다르긴 하지만, 촛불혁명 이후 국민적 개혁과제를 추진해야 하는 입장인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입장에서는 번번이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감수해야 한다. 뿐만아니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과의 협치도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입지에 놓였다.

이를 두고 우원식 원내대표는 23일 “120석에 불과한 소수 여당의 원내대표로서 여소야대의 신 4당 체제를 원만하게 조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한 가지 사안을 두고도 각 당의 입장에 따라 경우의 수가 수십가지에 이를 정도로 원내협상은 고차원 방정식 같았다”며 그 고충을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다당제라는 구조에서 빚어지는 고차방정식을 풀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룰을 바꾸는 것이 가장 빠른 결단일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국민의당이 꺼내든 국회선진화법 개정 논의가 결국 국민의당의 몸값 높이기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원내 교섭단체가 반대하는 법안을 본회의에서 강행하기 위해 필요한 의석수를 180석에서 150석으로 줄이면 120석 민주당 입장에서는 40석의 국민의당 손만 잡으면 된다. 반대로 국민의당 입장에서도 민주당의 ‘구애’를 받는 입장이 되면서 캐스팅보터로서의 존재감을 한껏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매번 여야 공수가 바뀔 때마다 국회 운영 룰을 바꾸자는 논의가 나오는 상황이 국민들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결국 원내 정당 의석수에 따른 이해관계를 고려한 개정 논의라는 점에서다.

국회선진화법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뿐만아니라 당시 민주당을 포함해 여야 국회의원들이 합의를 통해 도입했다. 국회선진화법 중 안건조정위원회 절차는 소수당의 의견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이기도 하다. 굳이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돼 180인 이상의 찬성을 통해 통과시키려 하지 않아도 각 상임위 회의를 통한 논의를 이끌 수 있는 기반이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다당제 구도가 정착 과정에 있는 만큼 벌써 국회 운영 관계 법을 바꾸는 건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있다.

김삼수 경제정의실천연합 정치사법팀 팀장은 통화에서 “국회가 날치기 통과 등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여야 합의를 통해 스스로 도입한 법이고 실제로 날치기 법 통과도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국민들 입장에서 법의 불합리성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하며 정치권이 정략적 차원에서 먼저 개정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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