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에 올라탈 것인가, 스스로 플랫폼이 될 것인가
플랫폼에 올라탈 것인가, 스스로 플랫폼이 될 것인가
플랫폼과 콘텐츠의 길항 관계… 무너진 경계와 시작된 악몽, 달라진 세상에 적응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스타벅스가 미디어 기업이 됐다(Today, Starbucks is becoming a media company).” 지난해 9월 스타벅스가 ‘업스탠더스(Upstanders)’라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하자 테크크런치가 이렇게 평가했다. 조영신 SK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더 이상 미디어가 미디어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면서 “경계가 한 번 허물어지면 그 뒤부터는 우후죽순으로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게 된다”고 전망했다.

‘업스탠더’는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a person who acts to make positive change)’이라는 의미로 스타벅스가 만든 말이다. 스타벅스는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와 영상, 팟캐스트로 만들어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출신의 라지프 찬드레이스카란(Rajiv Chandrasekaran) 부사장이 스타벅스의 미디어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이것은 홍보나 마케팅과는 상관없는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시민의식, 예의 등을 공유하고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짜 미국인의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테크크런치의 평가와 달리 “결코 미디어 기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미디어와 오리지널 콘텐츠로 브랜드와 경험을 확장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속내를 감추지는 않았다.

▲ 스타벅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업스탠더스'.
▲ 스타벅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업스탠더스'.

스타벅스가 직접 미디어를 조직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건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 언론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기업의 책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은 긍정과 낙관, 리더쉽이 필요하다. 이 영상이 공공 기업과 개인에게 각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스타벅스 뿐만 아니라 코카콜라와 레드불, GE 같은 기업들이 뉴스룸을 만들고 브랜드 저널리즘을 확장하고 있다. 브랜드 저널리즘이란 브랜드 스토리텔링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이다. ‘코카콜라 저니(Journey)’로 재미를 본 코카콜라는 “우리의 목표는 보도자료를 없애는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레드불이 만든 ‘레드불레틴(Red Bulletin)’은 익스트림 스포츠의 포털 같은 곳이다. 레드불이 후원하지 않는 행사는 격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GE는 GE리포트라는 이름으로 GE의 첨단 기술과 혁신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GE리포트의 편집장 토마쉬 케너(Tomas kellner)는 “우리의 경쟁자는 ‘인텔 매거진’이 아니라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와이어드”라면서 “독자들이 뉴스와 브랜드 저널리즘을 구분해서 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주류 언론의 기사만큼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일찌감치 현대카드가 ‘채널 현대카드’를 시작했고 CJ가 ‘채널 CJ’, 현대자동차가 ‘HMG저널’, SK는 ‘미디어SK’라는 이름으로 브랜드 저널리즘을 시도하고 있다. 신세계는 홈페이지를 아예 ‘SSG 블로그’로 대체했다. 아직까지는 외주 업체에 맡기는 곳이 많고 본격적인 브랜드 저널리즘이라 할 만한 사례는 많지 않지만 기업이 직접 미디어를 조직하고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건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채널 현대카드’를 론칭하면서 페이스북에 쓴 글이 화제가 된 적 있다. “과거에는 광고에서 매체 전략은 부차적이었다. 광고안이 정해지면 ‘TV, 신문, 잡지는 각각 몇 억’하는 대충의 산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매체 전략이 모든 마케터들의 악몽이다. 공중파, 종편, 본방 사수, 다운로드, 인쇄, SNS, 유투브, 극장, 온라인, 모바일의 복잡한 방정식에 아무도 자신있는 정답이 없고 각사의 입장과 역량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있다.”

정 부회장은 “매체 전략이 모든 마케터들의 악몽”이라고 말했지만 거꾸로 말하면 광고 전략이 모든 언론사들의 악몽이라는 의미도 된다. 미디어 뿐만 아니라 광고도 푸쉬(push) 방식에서 풀(pull)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많이 노출하고 밀어낸다고 해서 효과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수백 년 동안 이어내려온 미디어와 광고의 공존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 한국은 뉴스 사이트 직접 방문자 비중이 세계 최저 수준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 한국은 뉴스 사이트 직접 방문자 비중이 세계 최저 수준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영국의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과 함께 소셜 미디어와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읽는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반면 소셜 미디어에서 뉴스를 읽을 때 브랜드를 인지하는 비율은 가장 낮다. 한국의 콘텐츠 기업들은 특별히 더 힘든 싸움을 치러야 한다. 브랜드 패키지가 해체되고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공짜 콘텐츠에 광고 끼워 팔기는 이른바 양면 시장(two-sided market)의 작동 원리였으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최근 이마트가 만든 웹 드라마 ‘나의 소중한 세계’는 무너져 내리고 있는 광고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캔 맥주 하나씩만 사올게”라던 남편이 카트에 산처럼 맥주를 들고 나타나는 반전과 함께 “이마트에서는 하나씩만 사도 수입 맥주가 400여종”이라는 광고 문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0여일 만에 페이스북에서만 조회 수가 86만 건, 공유가 3000건을 넘어섰다. TV 광고 부럽지 않을 강력한 바이럴 효과를 만들어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상파 방송사 전략 담당 임원은 “이번 이마트 광고는 대형 광고주들의 이탈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지상파 광고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엄청난 광고 효과를 끌어낸 경험이 광고주들의 이탈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주류 미디어의 메시지 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비밀도 아니지만 관행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최근 출간된 ‘플랫폼 레볼루션’에서 상지트 폴 초더리 플랫폼싱킹랩스 소장은 “많은 기업들이 파이프라인 기업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전통적인 선형적 가치 사슬에서 플랫폼의 복합적인 가치 매트릭스로 급격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이 책에서는 ‘플랫폼 레볼루션’의 핵심이 양면 네트워크 효과(two-sided network effect)에 있다고 설명한다. 양면 시장이 양면 네트워크 효과로 진화하는 과정을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미디어 기업들은 전형적인 파이프라인 기업이었다. 콘텐츠를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전달했고 기업들은 그 파이프라인에 광고를 실어 보냈다. 과거에는 파이프라인 기업들끼리 경쟁을 했지만 이제는 플랫폼 기업들이 파이프라인 기업들을 집어 삼키고 있다. 누구나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고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굳이 낡은 파이프라인을 통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네트워크 효과. CC0.
▲ 네트워크 효과. CC0.


네트워크가 확장하려면 양쪽 시장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성장의 문법 자체가 다르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가 늘어나면 쿠폰이나 할인을 늘려 게스트를 모았고 우버는 승객 중에서 운전자를 모집했다. 페이팔은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가입만 해도 10달러를 지급하는 이벤트를 벌였고 우버는 30달러짜리 쿠폰을 무더기로 뿌렸다. 운전자가 충분히 확보돼야 고객이 늘어나고 고객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운전자도 더 늘어날 테니까.

‘플랫폼 레볼루션’에서는 “플랫폼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게 미래는 없다”고까지 단언한다. 다음과 같은 대목도 인상적이다. “커뮤니티가 자원을 공급한다. 혁신은 사내 전문가들과 연구 개발팀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크라우드 소싱과 플랫폼에 있는 독립적인 참여자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일어난다. 생태계 거버넌스를 생산 최적화보다 강조하고 외부 파트너를 설득하는 것을 내부 직원을 통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플랫폼과 콘텐츠의 불화는 최근 디즈니가 넷플릭스에서 탈퇴해 독립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데서 드러난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에서 해마다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저작권료를 받았으나 독립을 선언했다. 픽사와 마블, 루카스 등을 결합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미국 OTT(스트리밍 비디오) 시장은 코드 세이빙에서 코드 컷팅으로, 그리고 중복 가입으로 확장하고 있다.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주가는 동반 하락했다.

한국에서도 넷플릭스가 저력을 드러내고 있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은 넷플릭스에 회당 20만 달러에 팔렸다. 36억원 규모다. 덕분에 본방 한 시간 뒤에 다시 보기를 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에게 5000만 달러를 투자해 오리지널 콘텐츠 ‘옥자’를 만들어 독점으로 내보낸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MBC와 SBS는 2014년 SMR(스마트미디어랩)을 설립하고 유튜브와 저작권료 협상을 하다가 전면 공급 중단과 함께 포털에만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 36억원을 받고 본방 직후 넷플릭스에 송출한 tvN 드라마 '비밀의 숲'.
▲ 36억원을 받고 본방 직후 넷플릭스에 송출한 tvN 드라마 '비밀의 숲'.

플랫폼 레볼루션에서는 “실패한 기업들의 특징은 가격 효과나 브랜드 효과에 의존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몸집을 키우자, 키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논리는 과거에는 통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은 양면 네트워크를 효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이다. “오직 네트워크 효과만이 락인(lock-in) 효과를 만들고 선순환을 끌어내고 영구적인 사용자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이야기다.

미디어 기업들은 이제 콘텐츠 경쟁력 못지 않게 플랫폼 전략과 네트워크 효과를 절실하게 고민해야 한다. 양면 시장은 급격히 붕괴하고 있다. 독자가 먼저 사라졌고 광고주들도 떠나고 있다. 네이버와 페이스북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플랫폼에 올라타지 않고서는 독자들을 만날 방법이 없다. 낡은 관행과 생존을 위한 타협이 변화를 외면하게 만들고 고객들을 떠나게 만들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한국에서는 구글과 페이스북 뿐만 아니라 네이버와 카카오라는 거대한 플랫폼을 피해갈 수 없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유튜브를 떠나 토종 포털과 손을 잡았지만 정작 네이버는 모바일에서 뉴스 비중을 계속 줄여가고 있다. 언론사들에 해마다 200억 원씩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저널리즘 생태계의 포털 종속을 고착화한다는 우려가 크다. 네이버는 강력한 플랫폼 기업이지만 네이버의 통제 메커니즘은 전형적인 파이프라인 기업들의 독점 전략이었다.

우리는 특별히 글랜스TV와 쉐어하우스의 실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직접 플랫폼을 구축하고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내는 콘텐츠 기업들이다. 올드 미디어 종사자들은 동영상 하나로 1억 뷰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노하우를 연구해야 한다. 조선일보 잡앤과 매일경제 여행플러스의 실험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털 하청업체로 전락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 문법과 수익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MCN을 넘어 MPN(멀티플랫폼네트워크)으로 진화하고 있는 다이아TV 역시 플랫폼 레볼루션의 케이스 스터디 사례다. TV 밖에서 TV의 진화를 추동하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 종사자들은 뛰고 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MCN 100만 공유의 비밀’의 저자 이은영 아샤그룹 대표는 “콘텐츠 기업은 회전초밥집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플랫폼에 올라타되,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콘텐츠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다.

돈 내고 독후감을 쓰게 만드는 트레바리는 콘텐츠로써의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많은 미디어 스타트업들이 커뮤니티 구축을 수익모델의 단계로 보고 있지만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열정에기름붓기와 디에디트는 광고와 마케팅의 미래를 보여준다. 규모는 작지만 개성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강한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미디어 스타트업들이다. 우리는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어느 것도 팔리지 않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 플랫폼에 올라탈 것인가. 스스로 플랫폼이 될 것인가. 위키커먼즈.
▲ 플랫폼에 올라탈 것인가. 스스로 플랫폼이 될 것인가. 위키커먼즈.


언론은 이제 돈 버는 문제에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욕하면서도 버즈피드나 허프포스트에서 배울 게 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쿼츠가 네이티브 광고에서 미래를 찾는 것도 좀 더 건강한 수익모델을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 때문이다. 한국 사례도 있다. 헤럴드경제 인스파이어는 주목할만한 모델이다. 기업들 팔을 비틀어 광고를 받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지면을 파는 게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팔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준비가 돼 있는가?

기업이 미디어를 조직하고 언론사가 스토리텔링을 파는 시대다. 저널리즘과 비즈니스의 경계가 무너지고 플랫폼이 콘텐츠를 지배하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저널리즘 원칙과 언론의 사명이다. 질문을 시작할 때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멈춰서 있으면 퇴행하고 퇴행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변화를 따라잡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며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를 모색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다.

이정환 편집인 bl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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