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언론의 유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충기 문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머리를 조아리며 협찬금과 아들 취업을 청탁하는 언론사 간부들의 비굴함, 자사 기자 보도는 막으면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안위를 걱정하는 경영진의 행태, 노골적으로 자리 하나 달라던 전직 간부의 뻔뻔함.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당연했다.

시사주간지 시사IN의 ‘장충기 문자’ 단독 보도가 공개된 지(7일) 일주일이 지났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엔 언경유착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여론은 문자 내용에 대한 비판으로 들끓고 있는데 주요 종합 일간지 및 경제지 지면은 묵언수행 중이다.

진보 성향의 언론 지면에서도 관련 보도는 쉽게 찾기 어려웠다.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주요 종합 일간지 가운데 ‘장충기 문자’와 관련한 보도를 실었던 언론은 한겨레뿐이었다. 한겨레 역시 연합뉴스 간부를 비판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지면 하단 사진 기사로 처리(12일)하거나 언론인들의 삼성 청탁을 비판한 민주당의 입장(11일)을 인용 보도했을 뿐이다.

▲ 한겨레 15일자 2면.
▲ 한겨레 15일자 2면.
한겨레는 15일자 2면에서 “장충기 문자속 ‘삼성의 힘’… 이재용 재판 ‘막판 변수’ 되나”를 통해 문자 내용 일부를 다뤘으나 언론의 유착에 초점을 맞춘 기사는 아니었다. 경향신문 지면의 경우 외부 필진의 칼럼을 제외하면 관련 보도는 전무했다. 두 언론사는 온라인 기사를 통해서는 시사IN 보도를 세세하게 인용했다. 온라인 기사와 지면 보도의 괴리가 나타난 것.

진보 성향 언론의 한 기자는 “보도 가치만 따지면 지면에서 즉각적으로 다뤘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언론사 스스로 독자들의 비난과 비판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4일 모니터 보고서를 통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는 ‘장충기 문자’ 보도와 관련한 지면 기사를 내놓지 않고 있다”며 “이 가운데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는 장충기 문자 보도를 언급한 온라인 보도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보수·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지면 보도가 삼성 광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동종업계에서 발생한 민감한 이슈라는 점, 나머지 언론사 간부들 역시 ‘장충기 문자’에 연루됐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점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방송 언론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메인 종합뉴스를 기준으로 JTBC, KBS(11일자 “삼성에 ‘청탁 문자’… 위법은 아니다?”), SBS(13일자 “‘장충기 문자’ 파문… 재판 영향은?”) 등이 보도했지만 JTBC를 제외한 두 언론사의 보도는 다소 늦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JTBC ‘뉴스룸’은 시사IN 단독 보도 직후인 지난 8일에 이어 12일 “‘MBC에 청탁 정황’ 삼성 장충기 문자 공개”에서 삼성의 MBC 인사개입 의혹도 제기했다.

▲ JTBC 뉴스룸은 시사IN이 추가 공개한 삼성의 MBC 인사 개입 의혹 기사를 12일 인용 보도했다. 사진=JTBC
▲ JTBC 뉴스룸은 시사IN이 추가 공개한 삼성의 MBC 인사 개입 의혹 기사를 12일 인용 보도했다. 사진=JTBC
MBC, TV조선, 채널A, MBN의 메인뉴스는 14일까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언론사는 자사 간부나 관계사 간부들이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문자에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 MBN은 시사인 보도 이후 “삼성그룹과 언론사가 그동안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알려주는 문자메시지가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며 누리꾼 반응을 소개한 기사를 노출했다가 삭제해 논란이 일었다. ‘장충기 문자’에는 MBN의 최대주주인 ‘매일경제신문’ 소속 삼성 출입기자가 장 전 차장에게 보낸 것도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5일 “자사 간부가 연루돼 있어서 보도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이는 언론 스스로 ‘자정 능력’을 잃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장충기 문자에서 언급되지 않은 언론들이 이 문제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 현상 역시 삼성이라는 금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며 “삼성 이외의 대기업에 언론인들이 청탁 문자를 보냈을 것이라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특히 광고 협찬 청탁의 민낯이 불거지고 언론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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