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태프는 죽어도 기사가 안 나간다. 과로사는 물론이고 잠을 못자서 교통사고도 많이 나고, 몽롱한 상태니까 조명을 떨어뜨린다든지 하는 자잘한 사고도 많이 난다. 심장병, 뇌질환도 다반사다. 산업재해 인정도 못 받고 죽어간 드라마 스태프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은규 MBC 전 드라마국장은 1982년 MBC 드라마국에 입사했고 2014년 퇴직했다. 그 역시 드라마국에서 일하면 90일간의 제작기간 중 53일은 밤을 새가며 찍었다고 했다. 그 또한 미니시리즈 위주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걸어서 하늘까지’, ‘행복’, ‘사막의 샘’, ‘못난이 송편’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어느덧 한국 드라마계의 살아있는 역사가 된 이은규 전 국장에 따르면 미니시리즈의 경우 일평균 노동시간 19시간, 1주당 1일 휴식, 평균 4개월 내외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말 그대로 ‘살인노동’이 무한대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은규 전 국장은 MBC재직당시 드라마PD협회장으로서 ‘주 2회 드라마 편성’이 드라마 현장을 열악하게 한다며 현장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드라마PD들의 인권을 위해 한국드라마PD연합회장까지 맡으며 노력했지만 살인적 노동 강도만큼은 바꾸지 못했다.

그는 최근 CJ E&M의 故이한빛PD 사건을 접한 뒤 “드라마PD로서, 나도 못할 짓을 했구나”라며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가 현장을 떠났음에도 드라마현장의 변화를 원하는 이유다.

▲ 지난 4일 이은규 전 MBC 드라마국장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4일 이은규 전 MBC 드라마국장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드라마국 처음 왔을 때부터 같이 일한 스태프가 있다. 박 모 씨. 여성이고 40대다. 어느 날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현장에서 목욕 바구니를 들고 축 늘어진 채 걸어가더라. 그날 밤도 샜나보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죽었다고 하더라. 과로사로. 그 후로 계속 괴로웠다. 그런데 최근 故이한빛 PD의 기사를 접하고 나서는, 그 둘이 자꾸 떠올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의 시작은 1990년대 모든 장면을 야외촬영만으로 제작하는 미니시리즈 장르가 보편화 된 이후, 촬영 ‘때깔’이 PD능력의 기준처럼 되면서 밤샘을 시작한 것이 출발이라고 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촬영 시간이 꾸준히 늘어났음에도 촬영일수가 관습적으로 고착돼 하루 노동시간이 증가해왔다고 한다. 생존을 위한 시청률 압박이 감당하기 어렵게 강해지면서, 촬영 기간이 늦어지더라도 스타 작가나 배우를 잡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럴수록 촬영기간은 줄고, 노동시간은 늘었다고 한다.

최근 ‘특례업종 개정’(특정 직업은 연장근로를 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는 제도)과 관련해 현행 26개의 특례업종을 10개로 축소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은 여전히 ‘특례업종’으로 남아있으며, 축소대상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은규 전 국장은 방송업이 특례업종에서 빠지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말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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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특례업종에서 빠지는 게 맞다. 방송업이 특례업종인 이유가 방송이 펑크 나면 안 되고, 마감시간이 엄격하기 때문이라는데, 어떤 제품이든지 출시 기간은 있는 것이다. 방송이라고 특별 취급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드라마PD들의 특권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류라느니 천만 명이 본다느니, ‘링거 투혼’이라느니. 1년 전부터 준비하는데 막바지에 가서 욕심내면서 스태프들 잠도 안 재운다.”

이 전 국장은 특례업종에서 빠지지 않는다면 최장근로시간을 정해놓고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솔직히 말하면 방송업이 특례업종에서 빠질 것 같지가 않다. 게다가 갑자기 주 52시간만 일하라고 하면 엄청난 반발이 나올 거고 지켜지지도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 사실상 드라마 스태프들은 하루 20시간 정도를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하루 쉬기 때문에 주 단위로 계산해보면 120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그러니 52시간 일할 수가 있겠나. 정말 웃긴 말이지만, 일주일에 80시간으로만 줄여도 굉장히 인간적인 상황이다. 하루에 1~2시간 자는 상황인데, 4시간이라도 재우라는 거다. 그리고 그것도 안 지키면 강하게 처벌하자는 것이다.”

“드라마 현장의 특성상 주별 노동시간을 제한하기보다는 월별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게 맞을 것 같고, 1년 정도 처벌 유예기간을 두면 적응할 것 같다. 사실 드라마 스태프들은 노동조합도 없지, 표준 계약도 안하지, 주당 노동 몇 시간 어떻게 지키나. 그러니 일주일에 80시간 정도라도, 정말 최소 마지노선이라도 정해놓고 그걸 안 지키면 처벌을 강력하게 해야 한다. 방송현장이 치외법권인 것도 아니지 않나. 죽도록 일 시켜도 아무도 처벌을 안 받는다, 지금.”

▲ 지난 5월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고 이한빛PD) 사망사건 대책위’가 서울 상암동 CJ E&M 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던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5월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고 이한빛PD) 사망사건 대책위’가 서울 상암동 CJ E&M 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던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은규 전 국장은 현장을 떠나온 사람으로서, 이렇게 강력하게 말하는 것이 후배PD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죄책감도 느낀다고 한다. 그는 “나도 PD출신이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 이제는 드라마현장이 정신 차리고 변화해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마 PD들도 변화를 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도 먼저 시작을 안 하니까, 시청률 압박에 커리어가 망가질까봐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

“PD들은 체념 단계에 왔다고 보면 된다. 시청률 압박이 너무 심하고, 한 프로그램이 망하면 PD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신인스타하고 비슷한 압력이 있는 거다. 그래서 자기가 힘들어도 밤을 새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을 4개월 정도 하고 메인PD는 쉴 수 있다는 거다. 그 밑에 조연출은 2~3주 정도 쉰다. 스태프는 일주일 정도 쉰다. 직급이 낮을수록 쉴 수가 없다. PD는 4개월 견디면 되지만, 스태프는 평생 그러고 사는 거다. 그래서 PD들이 현장을 고칠 생각을 안 한 거다.”

그는 드라마 현장을 ‘재난현장’으로 묘사했다. 재난현장에선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재난 현장을 바꿀 수 없다.

“방송에 쫓기기 시작하면 인사불성이다. 개인으로서 복지, 인간관계, 동료의식을 따질 수 없는 재난이 일어난 상황이다. 폭탄이 떨어졌는데 무슨 동료가 어디 있나. 나 살아야지. 그래서 강력한 강제가 필요한 거다. 너무 원론적이지만 법률이 국민의 목숨을 지켜줘야 하지 않나. 드라마현장에서 노동법을 지키지 않으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는 이미 자신이 현장을 떠나왔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만약 현장 안에 있었다면 자신도 시청률 압박에,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故이한빛 PD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내가 너무 죄지은 사람같이 느껴졌다. 이제 현장을 떠나오니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드라마 현장에서 죽은 스태프들이 자꾸 생각난다. 사극을 찍다가 서너 달 잠을 못자서 뇌에 종양이 생긴 PD, 뇌졸중 와서 그만둔 PD, ‘화정’ 찍다가 죽은 드라마 스태프, 졸면서 운전하다가 교통사고 난 스태프…그런데 이제, 이렇게 할 바에야 산업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이든, 방송통신위원회든, 이제는 강제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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