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백 MBC PD수첩 PD는 ‘질긴 싸움의 끝’을 기다리고 있다. 2012년 파업 이후 5년은 부당한 사측 지시에 반발하다가 정직을 받고 비제작부서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세월이었다. 

그에게 내려진 사측 조치가 ‘부당 전보’였음을 대법원에서 확인받고 나서야 다시 돌아온 PD수첩. 그는 ‘제작 중단’을 선언했다. 한국의 노동 현실을 다루겠다는 제작 의도는 “당신들이 당신들의 수장(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감옥에서 꺼내기 위해 아이템을 하는 것은 방송법에 저촉된다”는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의 모욕적 언사로 처참히 깨졌다. “제작 중단의 시작이 된 이번 노동 아이템은 99도에 더해진 1도의 열에 불과하다”는 이 PD 말에선 MBC에서 상시적이었던 아이템 통제 실태를 가늠하게 한다.

지난달 21일 PD수첩 PD 10명이 아이템 통제와 검열에 저항하며 선언한 제작 중단 이후 지지가 잇따랐다. MBC PD수첩 작가들도 예외일 순 없었다. 고용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지위임에도 PD수첩 작가 12명은 지난 2일 “집필은 중단됐지만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이아미 메인작가는 “과거 PD수첩에서 YTN 해직 사태나 시사저널 사태를 다루면서 MBC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언론 통제’라고 생각했다”며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작가들의 창의력 자체를 말살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제작과 집필을 중단하고 있는 이 PD와 이 작가를 지난 4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났다.

▲ 지난달 21일 제작 중단을 선언한 이영백 PD수첩 PD가 4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제작 중단 이후 대기발령 2개월 통보를 받은 그는 방문증을 끊고 건물을 드나들어야 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달 21일 제작 중단을 선언한 이영백 PD수첩 PD가 4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제작 중단 이후 대기발령 2개월 통보를 받은 그는 방문증을 끊고 건물을 드나들어야 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사측과 이 문제를 두고 논의를 한 적이 있나?

이영백(이하 이) : “제작 중단을 선언하고 대기발령 2개월을 받아 사무실에도 못 들어가고 있다.(웃음) 장형원 부장이 보직 사퇴하고 후임이 왔는데 제작 쪽에는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작가들하고 새 부장과 면담은 했었는데 특별한 대책이나 입장은 없었다.”

이아미(이하 미) : “현재 취재 작가(편집자주 : PD수첩에는 11명의 제작PD와 4명의 메인작가, 8명의 취재 작가, 3명의 조연출, 3명의 FD가 있다)들은 출근하고 있다. 언제든 제작이 된다면 방송을 해야 하니까. 부장은 이 사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국장은 우리를 만나기 싫다는 입장이다.”

이 : “작가들은 사무실에 나오면서도 불안한 상태다. 회사가 나오지 말라고 하면 포기하고 다른 일이라도 찾을 텐데…. 나오긴 하면서도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할 것이고.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

미 : “메인작가야 늘 사표를 품고 있고 언제든 이런 싸움이 발생하면 참여할 수 있지만 취재 작가들은 그렇지 않다. 방송에 입문한 지 몇 개월 밖에 안 된 친구들이다.”

- 그런 작가들이 제작 중단 지지 성명을 낸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인데?

미 : “PD들이 제작 중단을 결정할 때 고민이 있었다. 취재 작가들의 임금이나 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 작가끼리 따로 비밀투표를 해 한 명이라도 성명서를 내는 데 반대하면 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원이 ‘기명으로 성명을 내자’고 했고 오히려 성명에 ‘MBC라서 죄송했다’는 메시지를 넣어달라고 했다. 일상적인 통제에 억눌렸던 것이다.”

- 감옥에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매개로 노동 이슈를 다루려 했다가 불허된 뒤 제작 중단 선언이 이어졌다.

이 : “PD수첩에서도 비정규직 조연출 동료가 2년 일하고 해고된 적이 있었다. 계약·파견직으로 2년 일하면 정규직이 돼야 하는 게 비정규직 보호법 취지인데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일을 그만두게 됐다. 이 친구는 ‘MBC 앞에서 전단지라도 뿌릴 테니 불러달라’고 했다. 프리랜서로 계약해 끝까지 함께 하고 싶었지만 윗선에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제작비가 낮아 프리랜서를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울러 급식 노동자에 대한 국회의원의 막말, 버스 노동자의 졸음운전 사고,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대법원 실형 선고 등 노동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생각을 다루고 싶었다. 일하는 국민 가운데 상당수는 한 위원장이 폭력시위를 주도했으니 실형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가 죄가 없으니 석방하라는 취지가 아니라 노동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시선을 다루고 싶었다.”

PD수첩 제작진들이 밝힌 아이템 통제 실태는 상상을 초월했다. 세월호·국정원·교과서 국정화·고 백남기 농민·4대강 등의 정치 아이템은 방송이 불허되거나 축소되기 일쑤였다. 반사회적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사이트를 모니터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인터뷰이에 대한 검열도 상시적이었다. 간부들은 심상정·표창원 의원 인터뷰 삭제 지시는 물론이고 “MBC를 공격하는 사람을 왜 쓰냐”며 인터뷰이조차 적군과 아군으로 나누곤 했다. 박용찬 전 시사제작국장은 여성 전문가 인터뷰에 대해 “비디오에도 신경을 좀 쓰세요”라는 성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 작가는 “여성 문제를 다루는 데 없으면 안 되는 인사였다”며 “이런 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이 PD수첩을 관리하는 간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말했다.

▲ 이아미 PD수첩 메인작가가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고심에 잠겨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이아미 PD수첩 메인작가가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고심에 잠겨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PD수첩인데 정치 이슈를 못 다루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5년 넘게 지속됐다.

미 : “2008년 YTN 해직 사태와 2007년 시사저널 파업 아이템을 다루면서 MBC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언론 통제’라고 생각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MBC는 일순간 무너져 내렸다. 막내 작가들은 ‘원래 MBC가 이렇구나’라고 생각한다. 신문을 봐도 정치면이 아니라 사건면에서 아이템을 둘러보게 된다. 어차피 정치 이슈는 안 될 걸 아니까. 창의력 자체를 말살시키는 일이 지속돼 왔던 것이다.”

이 : “2014년 10월 (교양국 폐지 이후)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받은 뒤 2년 반 만에 PD수첩에 배치됐는데 그 사이 퇴행이 있었다. 단순히 정치 아이템을 다루지 못하는 걸 떠나 일상적인 제작 방식에 검열이 작동했다. 조연출에게 ‘예고편 만든 것 좀 보자’고 하면 ‘굳이 왜 보세요. 어차피 부장님이 보시고 다 고칠 건데’라는 답변이 돌아오고, 막내 작가들도 ‘부장님이 새로 쓰실 텐데 대충 쓸래요’라는 반응이다. 자율성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더 이상 참고 견디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노동 이슈를 기획한 나와 조윤미 PD였지만 제작 중단은 PD수첩 작가와 PD 모두 부당한 것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공감대였다. ‘저 팀이 싸우니 도와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더 이상 분노를 참기 어렵다는 폭발이 제작 중단 선언이다.”

PD수첩 제작진의 반발은 MBC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 5년 동안 뭐하다가 이제와 일어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이 질문을 던지자 이 PD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일관되게 저항하고 피터지게 싸웠다”는 것. 그의 동기 가운데 3명(강지웅·정영하·박성제)이 해직됐을 만큼 MBC 언론인들은 저항의 몸부림을 쳤고, 이에 비례해 강한 탄압과 징계가 뒤따랐다. 이 PD도 2012년 ‘발레오만도’ 사업장의 인권 침해를 고발하는 아이템을 방송하려다 간부들과 갈등을 빚었고 ‘지시 불이행’을 이유로 정직 3개월을 받았다. 2014년 10월 PD수첩에서 MB 정부의 자원외교 부실을 고발한 뒤 비제작부서로 배치됐다.

- 일각에선 ‘왜 이제야 행동에 나서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 : “저항했던 사람들은 해고되고 비제작부서로 배치된 후에도 그 자리에서 싸워왔다. 나 역시 갑자기 몽둥이를 든 게 아니다. 현재 PD수첩 PD들도 마찬가지다. 강효임 PD의 경우 파업에 참여한 뒤 제작에서 배제됐다. 그는 홍보부에 있기도 했는데, 자신도 PD이면서 다른 드라마 PD들에게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양심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 부서로 올 수 없었던 것이다. 5년 만에 제작부서로 돌아왔다. 조윤미 PD도 아이템 통제에 항의하다가 1년 동안 제작 부서를 떠나야 했다. 서정문 PD도 3년 만에 돌아왔다. 얌전하게 회사 눈치를 보다가 이번에 터진 것이 아니다. 상당수는 회사랑 계속 부딪히고 싸우고 찍혀 비제작부서를 떠돌아야 했다.”

미 : “강효임 PD는 입버릇처럼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다. 5년 동안 하고 싶었던 제작을 못하고 어떻게 참았을까. 너무 가슴이 아팠다. (기자 질문 : 이 작가는 어떻게 버텼나?) ‘PD수첩이 어디까지 망가지나 내 눈으로라도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걸 낱낱이 가감없이 지켜보고 증언하고자 했다. 그게 지금 PD수첩 작가로서 느끼는 소명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막내·취재 작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꿈꾸지 못했던 희망이 생겼다. 다시 예전의 PD수첩으로 돌아갈 거라는 믿음이 커졌다.”

▲ 이아미 PD수첩 메인작가(왼쪽)와 이영백 PD가 4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이아미 PD수첩 메인작가(왼쪽)와 이영백 PD가 4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정치 환경이 바뀌었다. MBC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 : “(정치 환경이 바뀌지 않았다면) 징계를 내리고 업무방해라면서 벌써 끌어갔을 거다. 또 소리 소문 없이 당했을 것이다. 우리가 제작 중단으로 대응하면 원래 저쪽에서 큰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소리가 안 들린다. 대기발령을 내린 뒤 어떠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환경이 바뀌었다. 동료들의 참여도 커지고 있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커지고 있다. PD수첩 제작진이 김장겸 사장 등 경영진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는데 서울중앙지검에서 바로 배당해 조사를 시작했다.”

- PD수첩 제작진 투쟁 승리할까?

이 : “이번 싸움은 단순하다. 저널리스트로서 우리 양심을 지키고 싶다. 팀원과 함께 고민한 결과물을 두고 ‘민주노총 위원장이 너희의 수장이냐’, ‘수장을 위한 구명 방송을 하겠다는 거냐’는 식의 발언은 저널리스트 양심을 짓밟는 행위였다. 부끄럽게도 우리의 수장은 김장겸이다. 그가 수장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방송도 못하게 됐지 않나.(웃음) 양심을 지키고자 나선 우리 싸움이 ‘점’이라면 시사제작국 차원의 투쟁은 ‘선’이고 곧 MBC 언론인이 ‘면’으로서 나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 언론 지형에 조금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미 : “다시 한 번 PD수첩에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다. 작년 촛불집회 국면에서 PD수첩이 제 역할을 했다면 국민들이 그리 깊은 비극을 겪었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 언론이 이런 식이면 안 된다. 하루빨리 김장겸 사장이 퇴진하고 제대로 일 좀 했으면 좋겠다. 그가 하루하루 버티는 게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 : “인사권을 쥔 경영진의 전횡으로 우리 목소리는 시민들에게 제대로 닿지도 못했다. 지난해 촛불로 인해 지금은 목소리가 닿는 것 같다. 숨통이 조금 트였을 뿐이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신 것이다. 시민들께서 조금만 더 지지해주신다면 현 체제와 프로그램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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