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출범으로 본격화하고 있는 탈원전 논의와 관련해 지난해 활동을 종료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초안에도 2046년까지 탈원전을 달성하는 시나리오가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 특조위는 이 보고서 초안에서 신규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노후한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해 30년 후인 2046년에 탈원전을 달성하는 단계별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세월호 특조위가 지난해 9월 안전사회소위원회 자문위원과 전문위원 명의로 공개한 ‘안전사회 실현과제 보고서(초안)’을 보면, 세월호 참사 원인 뿐 아니라 ‘영역별 위험통제 및 안전대책’ 분야에 원전 영역의 안전대책에 정부의 원전정책에 대한 대안이 제시돼 있다.

세월호 특조위는 최종 보고서를 내기 전에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지난해 9월 활동종료를 앞두고 보고서 명칭에 ‘초안’을 붙인 채로 공개하기로 의결했다고 박종운 당시 안전사회소위원장(변호사)가 26일 전했다.

세월호 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회는 보고서 초안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위험영역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영역 중 하나로 많은 전문가들이 원전 사고를 지적했다”며 “안전의 외주화 문제에서부터 나라 전체를 강타했던 부품비리까지 세월호 참극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문제들이 원전 운영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특조위 소위는 “원전 사고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와 사회적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국가안전의 문제”라며 “더 이상 원전 안전 문제를 사고 가능성이 낮다는(확률적으로 절대 낮지 않지만) 이유로 외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특조위 소위는 “세월호 참사에서 경험했듯이 다양한 사고의 근본원인들이 조그마한 사고를 낳고, 그 사고들이 모여 엄청난 재난을 초래한다”며 “원전 영역의 주요 문제점들을 점검해보고 원전 사고 예방을 위한 대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원전정책에 대해 세월호 특조위 소위는 “과거의 핵사고들은 원전 개수에 의해서 그 확률이 증가했다”며 “핵사고의 규모는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고 있어, 핵사고의 확률을 줄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안전성 증진에 크나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위는 “사고 확률을 줄이는 방법은 원자력 발전소의 개수를 줄이는 것만이 근본적인 방법”이라며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수십 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탈원전 정책을 우리나라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경주 월성 1호기 전경. 지난 2015년 2월27일 촬영. 사진=연합뉴스
▲ 경주 월성 1호기 전경. 지난 2015년 2월27일 촬영. 사진=연합뉴스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벨기에, 스위스,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등의 나라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점차로 줄여 결국 완전히 없애는 ‘탈원전’을 결정한 것을 들어 세월호 특조위 소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전 개수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증진시키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전 축소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국민들의 우려에 대해 특조위 소위는 “많은 국민들은 정부의 왜곡된 원전 홍보로 원전 축소가 불가능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며 “하지만, 원자력 발전의 세계적인 추세가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이며, 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전축소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조위 소위는 수십 년 전부터 원전을 축소해온 선진국들이 수요관리와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통해 결국 탈원전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 역시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조위 소위는 특히 에너지 정책에서 원전비중을 낮추겠다는 것은 박근혜 대선 후보시절의 공약사항이라는 점을 들면서 “이는 원전의 개수를 줄이겠다는 공약과는 차이가 있다”고 썼다. 전체 전기 생산량 중에서 원전의 비중을 점차로 낮추겠다는 의미이므로 전기소비가 늘면 원전 개수를 줄이지 않아도 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 전기수요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원전비중 축소”라는 박근혜의 공약이 지켜지려면 원전 수가 줄어야 하지만 끝내 지켜지지 못한 채 본인은 구속되고 그 정권은 끝났다.

특조위 소위는 탈원전이 하루아침에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수십년에 걸친 준비와 대책마련이 이뤄져야 하므로 ‘탈원전 시나리오’가 필요하다고 썼다. 특조위 소위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탈원전을 결정한 독일,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 이탈리아 등의 나라들도 모두 수십 년의 계획 아래에서 정책이 수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의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탈원전에 시간이 필요한 이유에는 크게 전기 공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과 경제적인 대비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조위 소위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전기 공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경제적인 대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탈원전 정책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재정문제, 한전의 전기공급단가 상승문제 등 다양한 경제적인 문제들을 야기하므로 이러한 문제들을 시간을 두고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원전 축소의 부작용은 상당히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조위 소위는 “이 때문에 탈원전 정책에는 충분한 시간과 논의가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은 탈원전 정책 시나리오의 원칙을 제안했다.

① 신규원전 건설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② 현재 건설 중인 3개 원전은 건설을 마무리하여 총 28기의 원전을 운영한다.
③ 노후 원전인 고리1호기, 고리2호기, 월성1호기 등을 필두로 안전성 평가에서 하위에 있는 원전부터 순차적으로 폐쇄를 한다.
④ 원전 개수의 점진적 축소를 통하여 30년 후인 2046년에는 탈원전을 달성한다.
⑤ 폐쇄된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는 재처리하지 않고 “직접 처분”한다.

▲ 세월호 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회 작성 보고서 초안 표지
▲ 세월호 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회 작성 보고서 초안 표지
이와 관련해 당시 세월호 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장을 맡았던 박종운 변호사는 21일,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탈원전에 동의한다”며 “세월호 특조위에서도 30년 정도의 계획을 가지고 차근차근 탈원전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다만 급격한 조치는 조심스럽다고도 그는 전했다.

박 변호사는 “탈원전은 생명과 안전의 문제 + 에너지 수급의 문제+현재와 미래와의 갈등 문제”라며 “탈원전을 시행하려면, 중장기적인 플랜을 제시하여 공감대를 형성한 후, 원전시설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접근하고 (예컨대, 계획/설계 단계는 중지, 시공이 시작된 단계는 허용, 오래된 원전은 폐쇄), 그 사이에 대체에너지 산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월호 특조위가 탈원전 논의를 한 이유에 대해 박 변호사는 “세월호 특조위가 특별법에 따른 재난 예방과 대응책 마련을 하는 중에, 업무 범위를 분명히 하기 위해 10대 과제-32대 세부과제를 설정했다”며 “특별히 4대 위험영역에 대해 연구했고, 그 중 원전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조위 결과물인 ‘안전사회 실현과제 보고서’가 초안으로 남게 된 것에 대해 박 변호사는 “지난해 9월 중순부터 내부적으로 ‘완성이 안돼서 내지 말자’는 견해도 있었지만, 있는 것이라도 만들어 자료집이라도 내야 한다고 판단해 부랴부랴 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상규명 소위원회에서 개별 신청사건이 다 통과되고, 전체 사건을 모두 조사한 뒤 보강하고, 공청회 및 전문가 검토 등 공론화과정까지 마져야 종합보고서를 낼 수 있었는데, 준비하는 도중에 해체됐다는 것.

그는 “소위원회에서 이 같은 자료집을 제작해 공개하기로 9월 회의서 의결해 공개했다”며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과정에서 홈페이지 관리자인 파견나온 공무원이 비밀번호를 바꾸는 바람에 ‘소위원회 활동란’에 공개했다. 활동이 종료된 이후엔 홈페이지 자체를 폐쇄했다. 그럴 줄 알고 미리 내용은 다 다운로드 받아놓았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특조위는 10월1일자로 해체됐다.

▲ 세월호 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회 작성 보고서 초안
▲ 세월호 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회 작성 보고서 초안
▲ 박종운 변호사. 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안전사회소위원장. 사진=이하늬 기자
▲ 박종운 변호사. 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안전사회소위원장. 사진=이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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