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영방송’(실제로는 ‘사영방송’이나 다름없음)을 대표하는 MBC와 KBS에서 요즈음 세계 그 어느 나라의 언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시민들이 평화적으로 이룬 촛불혁명의 소산으로 민주평화체제를 지향하는 새 정부가 들어선 대한민국, 세계인들이 ‘민주주의 최선진국’이라고 찬양하는 바로 그 나라의 두 거대 언론사에서 블랙 코미디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비극적 희극’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는가? 먼저, 슬픈 코미디의 규모가 가장 큰 MBC부터 보기로 하자.

MBC 사옥 안에서 “김장겸(사장)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거듭 외쳤다는 이유로 1개월 자택 대기발령을 받은 김민식 PD는 지난 13일 열리는 인사위원회에서 질의·응답 과정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고 본사 건물로 들어가다가 로비에서 경비원들에게 촬영을 저지당했다. 일일시트콤 ‘뉴논스톱’과 미니시리즈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한 바 있는 그는 인사위원들의 질문에 대비해 A4용지로 55쪽이나 되는 자료를 준비했다. 리허설을 해보니 그 자료를 모두 읽는 데 5시간도 모자랄 것 같아 김민식 PD는 중간에 화장실에 가지 않을 작정으로 기저귀를 찼다. 그런데 사측은 인사위가 시작된 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정회를 선언했다. “밥 먹을 때가 됐으니 그만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회의장에서 나온 뒤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멘탈이 약한 분들이다. 징계 대상자의 소명조차 가만히 앉아서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MBC 기자와 PD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명줄을 끊어놓고 있었다.”

▲ 김민식 MBC PD가 7월21일 오후 인사위원회 출석을 위해 서울 상암동 MBC 사옥을 찾아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김민식 MBC PD가 7월21일 오후 인사위원회 출석을 위해 서울 상암동 MBC 사옥을 찾아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김민식 PD는 지난 21일 오후에 열리는 두 번째 인사위원회에 들어가기 앞서, 상암동 사옥 앞에서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저는 30분 시트콤 제작에 익숙한데 오늘은 50부작 대하사극을 찍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55쪽 분량의 소명 자료와 MBC 경영진을 향한 국민들의 메시지가 담긴 문서(70여쪽), 그리고 근래 5년 동안 발간된 노조 민실위 보고서를 들고 입장했다.

3시간 가까이 사측 대표들을 상대로 설전을 펼친 김민식PD는 그날 저녁 7시부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돌마고 불금파티’에 참석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한 214개 언론·시민단체가 지난 13일 결성한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 주최한 그 모임은 ‘돌아오라 마봉춘(MBC)과 고봉순(KBS)’의 약어인 ‘돌마고’의 첫 번째 파티였다. 김민식은 200여명의 언론인과 시민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인사위에서 겪은 일들을 보고했다. 사측을 대표한 경영진은 그가 장문의 소명 자료를 얼마 읽지도 않아 못 견디겠다는 듯이 퇴장하는가 하면 다시 돌아와서도 “당신이 징계 대상자인데 왜 우리를 심문하느냐”고 힐난했다고 한다. 김민식 PD는 다양한 증거와 자료를 제시하며 “MBC의 주인인 국민들이 징계하고 심판할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라고 반박했다. 김민식 PD에 이어 무대에 오른 개그맨 노정렬(돌마고 멘토단의 일원)씨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가성으로 역사와 시국을 풍자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김민식 PD처럼 걸출한 개그맨이 나왔으니 저희 앞날이 걱정됩니다.”

돌마고 파티에서 마이크를 잡은 성재호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장은 최근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미디를 개탄스런 어조로 소개했다. 지난 5주 동안 성재호를 비롯한 조합원들이 사장 고대영이 출근하거나 퇴근하기로 예상되는 시간에 사퇴를 촉구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가 상시 출근하던 오전 9시보다 이른 새벽 시간에 사장실로 ‘잠입’하는가 하면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옥 6층 옥상의 요새 같은 사장실로 몰래 들어갔다가 어디인지 모를 곳을 통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인호 KBS 이사장 역시 최근 사원들의 사퇴 요구를 피하려고 사장실 옆으로 사무실을 옮겨 고대영과 ‘이웃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 100여 명 안팎의 언론인들과 시민들은 7월21일 오후 이상호 KBS 아나운서와 최원정 아나운서의 진행 속에서 고대영 KBS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김장겸 MBC 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언론 정상화 투쟁을 약속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100여 명 안팎의 언론인들과 시민들은 7월21일 오후 이상호 KBS 아나운서와 최원정 아나운서의 진행 속에서 고대영 KBS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김장겸 MBC 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언론 정상화 투쟁을 약속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KBS 양대 노조와 10개 직능협회가 지난 5월31일부터 6월5일까지 전 직원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3292명 가운데 88%가 고대영 사퇴를, 90%가 이인호 퇴임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언론노조 MBC 본부와 43개 직능단체들이 본사와 16개 지역사 직원 전체(임원 제외, 보직자·계약자 포함)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장 김장겸 퇴진 찬성’은 95.4%,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고영주 사퇴 찬성’은 95.9%였다. 국정을 파탄 상태로 몰아넣은 박근혜가 임명한 고대영·이인호와 ‘청와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김장겸·고영주는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직후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는 것이 두 회사 사원 절대 다수의 요구인 것이다.

언론노조 MBC 본부와 43개 직능단체로 구성된 ‘김장겸·고영주 퇴진 MBC 비상행동’은 지난 19일자 한겨레 1면과 19면 하단에 각각 ‘마봉춘 구출대작전 /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고영주와 김장겸 반드시 끌어내리겠다’라는 제목으로 이색적인 광고를 내보냈다. 19면의 광고문안은 다음과 같다.

“한때는 사랑했습니다. 뉴스, 시사, 드라마, 라디오 모두 최고의 방송이었습니다. 용감하게 고발하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은 우리를 마봉춘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MBC를 파괴했습니다. 뉴스를 사유화하고 저항하는 언론인들을 학살했습니다. 해고 10명, 중징계 110명, 유배 157명, MBC는 지금도 겨울입니다.

언론자유를 위한 최후의 전쟁을 준비합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95.4%가 그들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반드시 승리해 MBC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 100여 명 안팎의 언론인들과 시민들은 7월21일 오후 이상호 KBS 아나운서와 최원정 아나운서의 진행 속에서 고대영 KBS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김장겸 MBC 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언론 정상화 투쟁을 약속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100여 명 안팎의 언론인들과 시민들은 7월21일 오후 이상호 KBS 아나운서와 최원정 아나운서의 진행 속에서 고대영 KBS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김장겸 MBC 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언론 정상화 투쟁을 약속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첫 번째 ‘돌마고 파티’에서 언론노조 KBS 본부장 송재호와 MBC 본부장 김연국은 무대에 나란히 서서 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우리 두 노조는 지금 경영진을 먼저 끌어내리는 경쟁을 하고 있지만, 이 역사적 과업이 마무리되면 공정방송과 자유언론을 더 열심히 실현하는 선의의 경쟁을 벌이겠습니다.”

‘국민의 방송’인 KBS와 MBC에서 사장과 이사장이 펼치고 있는 ‘코미디 대행진’은 국민들이 실소와 분노를 억누를 수 없게 하는 ‘비극적 희극’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 전반의 대개혁에 발맞추어 언론노동자들이 그들을 무대에서 끌어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촛불혁명의 정신을 실천하는 당연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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