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을 제보한 전 국정원 직원 김상욱씨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나와 국정원 직원들의 불법 행위를 고발하게 된 경위를 밝혔다.

김씨는 지난 19일 저녁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사건, 판도라를 열다’ 토크콘서트에 특별 게스트로 나와 지난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댓글 등 대선개입 공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제보를 하게 된 경위를 소개했다.

2009년 3급 부이사관으로 국정원을 퇴직한 김씨는 2012년 초부터 국정원 옛 동료들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여러 명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 중 한 직원은 김씨에게 ‘과장님(김씨의 국정원 퇴직 전 직함) 인터넷에 지금 직원들이 작업하고 다니는데 이걸 막지 못하면 (야당이) 대선에서 무조건 집니다’라고 말했다.

그 직원은 또 ‘청와대와 군(사이버사령부)이 전부 같이 (여론 공작을) 하고 있어 어떡하든 막아야 한다’고 사태의 시급성을 알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씨는 약 20명의 국정원 직원을 접촉하며 추적을 시작했고, 그 중 한 명은 이른바 ‘오피스텔 국정원녀’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경찰에 발각될 뻔하기도 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 직원은 국정원의 도움으로 경찰 수사를 피한 후 해외 연수를 떠났다.

지난 2012년 12월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민주당 관계자와 중앙선관위·수서경찰서 직원들이 국가정보원 직원이 오피스텔에서 댓글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사실 확인을 위해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며 기다리고 있다.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었던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오른쪽) ⓒ연합뉴스
지난 2012년 12월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민주당 관계자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수서경찰서 직원들이 국가정보원 직원이 오피스텔에서 댓글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사실 확인을 위해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며 기다리고 있다.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었던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오른쪽) ⓒ연합뉴스
최근 세계일보 보도로 드러난 국정원의 ‘SNS 장악 문건’이 작성된 건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등 10·26 재·보궐 선거 직후 11월이다. 이 당시 최재성 전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이 대북심리정보국을 설치해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고 문제제기했고, 2012년 10월 국감 때도 유인태 전 의원이 ‘국정원 대북심리정보국이 댓글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냐’고 물었지만 국정원은 모두 부인했다.

김씨는 “국정원 심리전단은 2011년 11월에 심리정보국으로 바뀌었는데 민병주씨(전 심리정보국장)는 (댓글 공작) 일이 불거진 후에도 계속 국회에서 자신을 ‘국장’이 아니라 ‘단장’이라고 하면서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고 한다”며 “원세훈 전 원장이 TV에 나와 ‘북한이 있는데 국가안보를 위해 그럼 심리전을 하지 말아요?’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선 원장을 폄하하는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문재인 정부에서 서훈 국정원장 취임 후 국정원 적폐청산TF에서 선정한 13건의 조사 항목 중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할 사건으로 18대 대선 댓글조작 사건을 꼽으며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유우성(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만들었고, 또 이걸 감추기 위해 해킹(민간인 사찰) 사건과 임 과장 자살 사건이 벌어졌는데 재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 ⓒ 연합뉴스
▲ 원세훈 전 국정원장 ⓒ 연합뉴스
김씨는 국정원 개혁 방안과 관련해선 “국정원이 유일하게 대외적으로 가진 칼이 대공수사권인데, 대공수사권을 가지고 불순(테러)분자·죄익세력 색출을 이유로 국회를 비롯해 경제계 등 국내 어느 곳이든 국정원이 기능을 못하는 곳이 없다”며 “직제를 개편하는 것만으론 국정원 정치개입을 근본적으로 근절할 수 없고,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봤듯이 아무리 말단 직원이라도 철저한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상사의 부당 지시에 항명할 근거가 생긴다”고 주문했다.

김씨는 20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도 출연해 “국정원이 특정 조직을 확대 개편할 경우에는 확대의 필요성과 목적에 대해서 반드시 청와대의 승인을 받게 돼 있다”며 “(국정원 댓글팀의 존재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암묵적인 지시가 아닌 직접적인 지시와 교감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이명박 정부는 2008년도 광우병 촛불시위를 겪은 직후부터 ‘이거 안 되겠다. 우리가 종편도 장악했는데 SNS를 장악하지 못했구나. 이래서는 원활한 국정운영이 힘들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면서 “최측근인 원세훈을 국정원장으로 앉힌 뒤부터 꾸준히 온라인상의 여론 조작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하며 국정원 심리전단의 업무 내용을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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