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공항 보안검색요원 A씨는 몇 달 전 승객으로부터 모욕을 당했다. A씨가 액체 젤류인 ‘홍삼 엑기스’ 반입을 제지하면서 “짐으로 부치고 오시겠냐, 반입 포기하시겠냐”고 물었더니 승객이 뚜껑을 열어 검색대 위에 내용물을 다 퍼낸 것이다. 승객은 A씨에게 ‘너희가 먹을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버리고 간다’고 말했다.

#. 또 다른 보안검색요원 B씨는 근무 중 성희롱을 당했다. 보안검색대에서 “주머니에 있는 소지품을 꺼내달라”고 말한 B씨에게 한 남성 승객이 ‘XX는 안 꺼내도 되느냐’고 답한 것이다. B씨는 갑작스런 모욕에 충격을 받았으나 길게 늘어선 승객 대기줄을 보며 근무를 지속해야했다. (공공운수노조 제보 사례 재구성)

▲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3층 8번 게이트 앞에서 “당신의 말이 당신의 인격입니다” 캠페인을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3층 8번 게이트 앞에서 “당신의 말이 당신의 인격입니다” 캠페인을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인천공항공사 노동자들이 심각한 ‘감정노동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승객들로부터 폭언을 듣거나 모욕적인 대우를 받기 일쑤인데다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동료 정규직원의 하대에도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공사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지난 5월 중순부터 한 달 여 간 인천공항공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피해 사례를 제보받은 결과 반말·폭언·성희롱 등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승객과 직접 접촉 기회가 높은 보안검색요원의 경우 심각한 모욕·하대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승객은 ‘주머니 소지품을 꺼내달라’는 한 보안검색요원에게 ‘미친 계집애가 아침부터 땍땍거린다’고 폭언을 퍼부었다. 치약 반입을 금지한 직원에게 ‘아가씨 손 좀 펴보세요’라고 말하며 치약을 직원 손에 다 짜고 게이트를 통과한 승객도 있었다. 한 승객은 김치통 반입을 제지한 보안검색 직원 앞에서 통 뚜껑을 열어 가래침을 뱉고 통을 던져버리기도 했다.

반말·하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특히 집중됐다. 공항 내 보안경비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노동자 C씨는 순찰 중 승객으로부터 “야 앞 좀 보고 다녀라”는 말을 들었다. 뒤에서 카트를 밀고 오던 한 탑승객이 카트로 C씨를 치고 가면서 한 말이다.

승객들의 ‘다짜고짜 화풀이’도 비일비재했다. 시설관리 노동자, 청소노동자, 보안경비 노동자 등 비정규직 직원들은 ‘유니폼’을 입고 공항 내를 돌아다니기에 승객과 접촉할 기회가 많다. 승객들이 유니폼을 입은 직원을 불러 세워 길, 탑승 절차 등을 묻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제보자들은 “잘 모르겠다” “안내데스크에 가서 문의하시면 된다”고 답할 경우 “어떻게 공항에서 일하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되레 화를 내는 승객들이 많다고 밝혔다.

일부 공사 직원들의 ‘비정규직 직원 무시’ 사례도 발견됐다. 공사 직원들이 직원 전용 보안검색대에서 원칙대로 물품을 검색하는 보안경비 직원에게 반입금지 품목을 집어던지거나 반말로 불쾌함을 표출할 때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제보자는 세관 직원으로부터 ’상주직원인데 왜 빡세게(강도 높게) 검색하냐’ ’관복(세관복)을 입은 공무원인데 기분나쁘게 왜 신체에 손을 대냐’ 등의 말을 들었다며 “진상 상주직원이 많아 힘들었던 사연을 보낸다“고 밝혔다. 

▲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3층 8번 게이트 앞에서 “당신의 말이 당신의 인격입니다” 캠페인을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3층 8번 게이트 앞에서 “당신의 말이 당신의 인격입니다” 캠페인을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이와 관련해 인천공항지역지부는 19일 오전 11시 인천국제공항 3층 8번 게이트 앞에서 “당신의 말이 당신의 인격입니다” 캠페인을 열고 공항 측에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노조는 △고객 대상으로 ‘감정노동자 보호’ 캠페인을 열 것 △감정노동 고통 유발 시 쉴 수 있는 휴게시설을 마련할 것 △폭언·모욕 등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 등을 요구했다.

특히 노조는 ‘노동자 권리보호센터’ 설치를 강조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공항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 수를 추산하면 3만 명 정도 된다. 공항 뿐만 아니라 항공사, 면세점, 호텔 등의 정규직·비정규직, 화물운송 노동자 등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많다”면서 “공항을 하나의 지역으로 보고 특별히 이 공항지대를 대상으로 한 노동센터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감정노동네트워크 이성종 집행위원장은 지난 1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노동자들이 자기 감정과 별개로 특정한 감정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다 보면 ‘감정 부조화 상태’가 되는데 심리적으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라면서 “대책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갑질 소비자’ 문화, 무조건 친절을 요구하는 경영 방침이 바뀌고 노동자의 감정을 보호하는 직무교육, 감정노동자 스스로가 일에 대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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