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6일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 임시이사회는 ‘2016년도 MBC경영평가보고서’ 승인을 부결시켰다. 6인의 다수 이사들은 바로 1년 전 그들이 보여주었던 말과 행동을 모두 뒤집으면서 끝내 보고서 채택을 반대했다.

지난해 방문진이 ‘2015년도 MBC경영평가보고서’를 채택할 당시 보고서에는 MBC에 불리하거나 부정적인 조사결과가 대거 빠져 있었다. 다수 이사들이 경영평가단을 일방적으로 구성해버린 상황이어서 편향된 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3인의 소수 이사들은 이사회에서 보고서의 수정・보완을 강하게 제기했지만 6인의 다수 이사들은 단 한 자도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제기된 의견을 보고서에 담을 수 없다면 보고서의 부록에라도 담자는 수정제안까지 나왔으나 6인의 다수이사들은 이마저도 단호히 거부했고 결국 보고서는 표결에 의해 그대로 통과됐다.

당시 6인의 다수 이사들은 “외부에 맡겼을 때는 외부 전문가들이 독립적으로 평가해 달라는 취지다”, “마음에 안 든다고 이쪽저쪽 이야기 집어넣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은 틀렸다’, ‘저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등의 주장을 쏟아냈다. 이사회의 의장인 고영주 이사장도 “평가단이 종합해서 결과보고서를 냈는데 너희는 못 믿겠다며 따로 부록을 써서 내겠다는 것은 안 맞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랬던 6인의 이사들이 ‘2016년도 MBC경영평가보고서’의 의결을 위해 열린 26일 임시이사회에서는 180도 태도를 바꿔 보고서 내용에 강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특정 분야의 특정 사항을 통째로 옮기거나 들어내라는 등 작심하고 보고서 승인을 거부했다. 앞서 보고서에 불만을 품은 경영평가소위원회 일부 이사들은 방송I, 방송II, 기술, 경영, 재무・회계 등 5개 분야 중에서 유독 김세은 교수가 작성한 방송II 분야(보도・시사 분야)에 담긴 사항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노사 관련 사항을 경영분야로 옮겨줄 것, 소송 사항은 삭제할 것, 일부 거친 표현은 순화시킬 것 등의 주문을 했다. 그러나 김 교수가 이를 거부해 보고서가 원안 그대로 이사회에 상정되자 이사회의 다수를 점한 6인의 이사들이 걸고 넘어간 것이다. 당시 소위원회는 집필자인 김교수의 동의를 구하되 김 교수가 수용할 의사가 없으면 원안대로 접수하는 것으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의 다수 이사들은 재차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사회에서는 소위원회에서보다 더 강경하고 터무니없는 요구들이 나왔다. “JTBC가 준거의 틀이 되어서는 안 된다”, “MBC의 보도・시사를 JTBC와 비교한 것은 적절치 않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MBC가 권력 감시를 소홀히 했다는 주장은 수용할 수 없다”, “MBC가 ‘친 정부·여당 보도를 하며 중립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등 보도・시사 분야에 기록된 내용과 표현 하나하나에 대해 근거 없는 억지 주장을 편 것이다. 1년 전 일체의 자구수정을 거부했던 그들이 지금 보이고 있는 자태는 자기모순과 자기기만으로 가득 차있다.

방문진은 매년 1년 동안의 MBC경영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고서를 작성하여 국민들에게 알리고 향후 경영의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하고 있다. 경영평가보고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위원들이 작성하며 작성된 보고서는 경영평가소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이사회에 상정된다. 이사회에서는 ‘사실 관계’에 오류가 있거나 과도하게 편향된 내용이 없는 한, 각 분야의 해당 평가위원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원안대로 채택하는 것이 원칙이다.

방문진의 다수 이사들이 이번 경영평가보고서를 손보려는 데는 매우 불순한 정치적 배경이 깔려있다. 이 보고서가 김장겸 현 MBC사장의 책임 문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2016년 보도・시사 분야는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그의 실질적 지휘 하에 있었고 부진의 직접적 원인 또한 부당인사와 노조탄압 등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6인의 다수 이사들이 노사 관련 사항을 경영분야로 옮기라고 억지를 부리고 소송 사항을 삭제하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책임의 문제가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만한 노사관계와 미래지향적 조직문화 정립을 통해 공영방송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위해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는 보고서의 뼈아픈 지적에 대해 “보도·시사 부문이 아니라 경영 부문에서 다뤘어야 한다”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수 이사들의 태도에서는 전 보도본부장 김장겸의 책임문제를 결사적으로 방어하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는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꼼수일 뿐이다. 보도・시사의 부진이 부당전보, 부당징계 등의 부당인사에 원인이 있고 수십 건에 달하는 소송 역시 거기서 파생되었음은 세상에 다 알려진 사실이며 어불성설의 논거로 감추어질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하지만 다수결은 소수의 생각을 존중하고 토론을 통해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방문진 6인의 다수 이사들이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통상 사용하는 방식이 ‘묻지마 표결’이다. 한두 차례 의견이 개진된 뒤에는 으레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르다”,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등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며 토론을 기피하고 오로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묻지마 표결’은 하루 빨리 청산되어야 할 적폐의 모습이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진리는 다수결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MBC의 보도・시사가 경쟁력과 신뢰도에서 꼴찌를 기록하고, 부당전보, 부당징계로 MBC가 처참하게 망가졌다는 것은 ‘사실’이지 누구의 ‘의견’이나 ‘입장’이 아니다. 경영평가보고서는 그 ‘사실’을 담은 증언록이다. 다수의 힘으로 보고서의 내용을 뜯어고친다고 해서 “MBC가 망가졌고 MBC뉴스가 편파적이다”는 사실이 바뀔 수는 없으며 그 책임이 소멸되지도 않는다.

지난 28일 MBC에 특별근로감독관이 파견됐다. 역사상 유례없는 노조파괴 공작이 자행됐던 MBC의 흑역사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 특별근로감독관의 철저한 조사로 MBC가 기나긴 터널에서 하루 속히 빠져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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