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원을 해고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반발이 커지고 있지만 사태 해결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회의를 진행하고 안건을 의결해야 할 입주자대표들이 해고 결정안건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주민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는 태도로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전 전민동 엑스포아파트에서는 경비인원 감축방안을 철회하라는 주민들의 반대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독단적인 결정으로 주민들을 무시하는 입주자대표회의를 규탄하고 경비원 인원감축에 대한 주민 찬반투표를 실시하라’는 내용이다.

엑스포아파트는 1만6천명의 주민을 대표한 32명의 입주자대표가 회의를 통해 안건을 결정한다. 지난 15일 입주자대표회의는 내년 12월까지 3차례에 걸쳐 경비원 68명 중 절반 이상 감축하고 무인경비시스템으로 대체하겠다는 안건을 의결했다.

또한 기존의 만 70세였던 정년을 만 67세로 단축시키기로 했는데, 아무런 사전 통보나 상의를 하지 않아 만 67세 이상인 경비원 41명(만 70세 이상 8명 포함)이 당장 다음 달에 퇴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주민들은 경비원 감축 대안인 무인경비시스템 운용의 실효성과 입주자대표회의의 독단적 의사결정과정에 대해 당혹스러워 했다. 이에 자발적으로 ‘경비원 아저씨를 지키는 모임’(이하 경지모)을 조직했다.

‘경지모’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제시한 경비원 감축 이유가 대통령 공약인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경비원들의 임금도 연 7.3% 올라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계산해보니 가구당 추가부담은 월 2500원 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경비원을 대체할 무인경비시스템도 오류가 많다고 지적했다. 설치할 때 예산이 얼마나 소요되는지도 불분명하고 경비원들의 경비 외 업무(화단정리, 제설작업, 주차관리 등)는 무인시스템이 대체할 수 없으니 예산이 경비원 임금보다 더 들어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입주자대표회의의 투명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회의록도 작성되지 않았고 녹화파일이라도 보여 달라 요청했더니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경지모’ 김소영 대표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입주자대표회의가 안건의결권을 가지고는 있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 수고해주신 경비원분들이 일방적인 통보로 쫓겨난다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말했다.

또한 “주민들이 입주자대표회의 내용도 열람할 수 없는 것이 이상하고, 결정에 대한 반대 여론이 심화되는데도 입주자대표 측은 협상하려는 의지도 없고 연락 한 통 없다”며 소통 의지가 없는 입주자대표회의 측을 비판했다.

▲ 대전 전민동 엑스포아파트 입주자 자녀가 입주세대를 대상으로 경지모 활동과 경비원들에 대한 응원을 호소하는 호소문을 부착하고 있다.
▲ 대전 전민동 엑스포아파트 입주자 자녀가 입주세대를 대상으로 경지모 활동과 경비원들에 대한 응원을 호소하는 호소문을 부착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2200여명의 반대 서명을 받아냈다. 적지 않은 반대 여론이니만큼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조속히 협상을 해줄 때까지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지모’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은 반대 서명운동 뿐만 아니라 1인 시위를 비롯해 집집마다 해고 반대 내용을 담은 편지를 전달해 반발이 커지고 있다. 주민들의 반대 운동에 힘입어 경비원들도 자필로 쓴 호소문을 게시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해고 결정을 찬반투표에 부쳐야 한다는 ‘경지모’ 측 요구에 응하지 않고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 미디어오늘은 관리사무소를 통해 입주자대표회의 측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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