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지금껏 ‘중3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사를 쉽게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오며 연차를 채워나갔다. 이것은 일종의 기사쓰기 공식과 같았다. 돌이켜보면 이 공식은 뉴스수용자들 대부분이 중3 수준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습된 공중이 요구하는 저널리즘의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오늘날 뉴스는 배포(distribution) 모델에서 발견(discovery) 모델로 가고 있다. 뉴스를 발견하는 사람들의 리터러시(독해능력) 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입맛’도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제는 성실함과 의지에 따라 누구든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정보의 접근성에 있어 공중과 기자는 동등한 입장이 되었다. 기자의 불성실함은 금방 들통 난다.

페이스북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포털사이트를 통해 뉴스가 등장하면 스마트폰을 통해 즉자적으로 반응한다. 뉴스플랫폼은 첨삭이 쉬운 구조로 바뀌었다. 오보는 빠르게 전파된다. 뉴스수용자들이 뉴스를 비평하는데 있어 시공간의 제약은 사실상 사라졌다. 완전무결한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비춰보면 기자들은 점점 지는 싸움에 끌려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6월5일자 한겨레 칼럼 ‘전문가는 결코 죽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가 강제하는 뉴스의 형식적 제약은 뉴스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 영향은 전문가의 죽음을 촉진할 것인바, 언론에 남은 선택은 두 가지다. 전문가의 죽음을 전제로 한 언론으로 가는 길과 기존 노선을 완전히 바꿔 전문성을 주장할 수 있는 언론으로 가는 길이다.”

기자들이 더욱더 전문화되는 일은 직업인으로서의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뉴스룸이 현실적으로 이 같은 방향성을 가져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인은 ‘인물과사상’ 7월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독자가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는데 이 뉴스를 보도한 곳이 한겨레인지 경향신문인지 모른다. 뉴스의 가치와 멀어지고 뉴스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다. 기업 삥 뜯기 광고를 하거나, 비판 기사를 빼며 거래하고 있다. … 한국의 브랜디드 콘텐츠는 여전히 보도자료를 베껴 넣는 것이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우리 언론계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포털사이트의 하늘 아래 살고 있다. 그 하늘 아래서 품질 좋은 기사를 통한 브랜디드 콘텐츠 전략이란 한낮 한가한 이야기다. 데이터분석을 통한 독자기반(audience-based) 회사로의 변신은 그저 해외의 낯선 사례로만 다가올 뿐이다.

강준만 교수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뉴스유통구조의 근본적 변화나 미디어기업의 수익모델 변화 없이 우리의 젊음을 갈아 기사를 찍어내는 와중에 틈틈이 “전문! 전문!”을 외쳐봤자 그것은 허망한 일이며 단지 ‘번 아웃’을 앞당기는 데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앞선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인이 얼마 전 미국 뉴욕서 열린 INMA총회에 다녀왔다. 편집인은 독자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총회보고서를 써냈다. 해외의 많은 언론사가 데이터 분석을 강화하며 독자들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시사점이 컸다. 그래서 물었다. “미디어오늘의 독자는 누구입니까.” 나도 울고 편집인도 울었다.

고민은 또 있다. 독자를 알고 나면, 이후엔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독자의 성향에 맞는 ‘편들기 저널리즘’(advocacy journalism)을 해야 하나. 독자맞춤형 뉴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현장의 기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것은 혁신일까 검열일까. 게으른 기자는 이래저래 머리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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