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한달 동안의 의미있는 진전들을 객관적으로 부정하긴 어렵다. 국정교과서 폐기, 세월호 기간제교사 순직 인정, 원전 건설 중단, 위안부 재협상 공식화, 성과연봉제 폐지, 일부 진보적 인사들의 입각…

좌파의 덕목은 이걸 없는 셈치고 못 본 척하는 게 아니라, 이걸 가능하게 한 핵심 동력이 어디서 왔는지 말하는 데 있다. 이 요구들을 위해 힘겹게 투쟁해 온 사람들의 땀과 눈물을 기억하고 함께 기뻐하는 데 있다. 일부 좌파들처럼 문재인 정부를 칭찬할 수 없다는 강박 때문에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다’고 냉소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성과를 인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아래로부터 투쟁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투쟁이 없었다면, 무엇보다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문재인이 예전처럼 김종필이나 정몽준 같은 세력과 손잡지 않고, 이처럼 유리한 구도 속에 집권하는 것은 가능치 않았다. 우파와 기득권 세력이 이처럼 고립, 분열, 위축된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코너에 몰린 (자유당과 바른당 등) 우파는 문재인 정부의 약점과 허점들을 필사적으로 두들기고 있다. 심지어 반부패, 5.18정신, 여성주의까지 훔쳐가 공격 무기로 쓰고 있지만 그 효과는 매우 작다. 독재후예, 부패원조, 최강여혐에 존재 자체가 ‘내로남불’이자 적폐인 세력이 말하는 ‘협치’ 운운에 귀 기울이고 박수쳐줄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다.

▲ 지난 14일 오후 국회 교문위 회의실에서 도종환 문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청문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노트북에는 보은코드인사, 협치파괴, 5대원칙훼손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14일 오후 국회 교문위 회의실에서 도종환 문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청문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노트북에는 보은코드인사, 협치파괴, 5대원칙훼손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기본으로 맘에도 없는 ‘사회정의, 성평등’ 등을 떠들다보니 영 어색하고 손발이 안 맞아 비웃음도 커지고 있다. 안경환의 경우는 우파의 공격이 먹히는 사례라기보다는 ‘뿌리깊은 여혐에는 좌우가 없다’는 여성주의적 시각이 옳다는 것만 보여 줬다. 강경화 결사 반대를 외치는 우파에게 여성주의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다.

결국 이들은 익숙한 곳으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군 감사 콘서트의 무산, 성주 시위대의 군차량 검문, 북한 무인기 발견이 쟁점이 됐다. ‘고마운 미군에 감사하려는 자리를 종북세력이 막았고, 시위대가 군차량까지 검문하며 치외법권을 휘두르고 있으며, 사드 사진을 찍고 돌아가던 북한 무인기가 언제 화학무기를 달고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군 장갑차에 죽어간 학생들의 15주기에 미군 감사 잔치를 벌이는 게 왜 문제인지 이해도 못하는 사람들이 ‘성주는 공산당이 장악한 지역이냐’며 난리치는 걸 보면 기가 막힌다. 특히 무인기에 대한 호들갑은 보면 볼수록 웃긴다.

구글어스로 다 볼 수 있는 데 북한은 왜 그런 조잡한 무인기를 보냈으며, 그 장난감 같은 무인기가 500킬로미터를 날아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였다는 것도 그렇다. 20킬로미터 정도의 무인기에 수백 킬로미터의 폭탄을 실어 보낼 수 있다는 황당한 상상력도 놀랍다.

이걸로 우리가 ‘충격과 공포’에 빠져야 한다면 인공위성과 첨단 무인정찰기로 나라 전역을 24시간 샅샅이 감시당하는 북한은 뭐란 말인가. 그래서 우파의 이런 낡은 카드들도 당장은 효과가 별로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 재벌, 주류언론, 공안기관, 국가기구 등에 뿌리를 둔 부패우파는 여전히 이 체제의 핵심세력이다.(일부 좌파 학자들은 선출·통제되기 어려운 이런 권력자들을 ‘심층 국가’라고 부른다.) 잠시 엎드려 있는 이들의 존재 기반에서 지지율은 핵심이 아니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정부와 자유주의 세력도 여전히 이들의 눈치를 본다. 이명박근혜의 경제정책을 계승한 관피아 김동연은 자유당의 적극적 지지 속에 경제부총리가 됐다. NLL 사수파이자 사드 찬성파인 송영무가 국방장관 후보로 등장했고, 론스타 먹튀 주범인 김석동은 금융위원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미군 감사 콘서트를 추진한 의정부 시장은 민주당 소속이었고, 조중동이 난리치자 문재인 대통령은 콘서트 무산에 유감을 표했으며, 성주 시위대 검문소에 경찰력을 배치했다. 자유당이 떠드는 ‘야당 무시’와 ‘협치 파괴’는 엄살의 성격이 있는 것이다.

사드 문제와 다가오는 한미정상 회담은 주요 고비가 될 것 같다. 일단 문재인 정부는 사드 추가배치를 막고 환경영향평가로 1년 정도의 시간을 벌었다. 현재 사드는 레이더와 발사대 2기만 임시 배치된 상태고, 그마저 전력 공급이 잘 안 돼 정상 가동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성주 주민들과 사드반대 운동이 거둔 성과다.

하지만 미국, 중국, 보수, 진보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순 없다. 결국 결단의 순간은 올 것이고, 문재인 정부가 이 나라의 뿌리깊은 한미동맹과 친미우파의 거대한 압력을 거스르려면 더 큰 압력과 여론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과 진보좌파 진영의 상호존중과 토론, 협력이 지속될 필요는 여기에 있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 정부 앞에 여전히 수많은 걸림돌이 있다는 걸 잘 알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도, 적폐세력의 반대를 허물기 위해서도 더 큰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가만히 믿고 기다려 보라’며 아래로부터 투쟁 건설을 가로막는 비난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문재인을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어느 방향에서 나오는 것이든 무조건 막아내자는 단순 논리는 위험하다.

진보좌파는 아래로부터 압력이 없다면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포기하고 우파에 굴복하기 쉽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우파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서는 안 되고, 그보다는 우파를 공격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타협 시도를 비판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자본주의 정부이니 우파와 다를 게 없고 똑같이 공격하자는 단순 논리도 위험하다.

얼마 전 한 집회에서 세월호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님이 한 발언은 전적으로 타당했고 지금 상황의 핵심을 담고 있었다.

‘문재인이 해줄테니 기다리라는 가슴아픈 말은 더 듣고 싶지 않다. 이 정부를 지지하지 않거나 못 믿어서가 아니다. 더 강력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은 문재인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야 개혁 반대 세력도 막을 수 있다. 우리에게 기다리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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