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언론장악 적폐 청산을 위한 부역자 명단 3차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명단에 오른 인물 41명을 회사별로 보면 KBS 15명, MBC 12명,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4명, YTN 6명, 연합뉴스 3명, 국제신문 1명이다. 이들 41명 가운데 국제신문 사장을 빼면 KBS와 MBC의 지역방송사나 계열회사 사장과 임원 또는 간부가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 KBS 이사장, 방문진 이사장, KBS와 MBC 사장, 연합뉴스 사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 같은 ‘거물급 부역자들’은 언론노조가 지난해 12월 14일 발표한 1차 명단(10명)에 이미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언론노조는 지난 4월 11일 2차로 부역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거기에는 ‘거물급과 준거물급 부역자’ 50명이 나와 있었다. 1~3차 명단에 거명된 ‘부역자’ 총수는 101명이다.

법적으로 또는 실질적으로 ‘공영언론’이라고 불리는 KBS, MBC, 연합뉴스, YTN의 사장들과 방송통신정책 집행의 ‘사령부’ 격인 방통위의 위원장, 그리고 KBS와 방문진 이사장을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부역자’라고 평가받던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언론노동자들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책무를 다하기는 불가능했다. 청와대의 하수인이나 나팔수가 된 부역자들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사익추구집단’의 부정과 부패를 은폐하면서 국정농단의 실체가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외면하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데 앞장섰다.

▲ 언론노조는 지난해 12월14일 1차 언론장악 부역자 명단 10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4월11일 오후 언론의 정치적 독립과 보도 공정성, 제작 자율성을 훼손하고 언론인 탄압에 앞장 선 전·현직 경영진과 이사회 이사, 보도책임자들을 대상으로 2차 명단 50명을 발표했다. 사진=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 언론노조는 지난해 12월14일 1차 언론장악 부역자 명단 10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4월11일 오후 언론의 정치적 독립과 보도 공정성, 제작 자율성을 훼손하고 언론인 탄압에 앞장 선 전·현직 경영진과 이사회 이사, 보도책임자들을 대상으로 2차 명단 50명을 발표했다. 사진=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언론노조는 지난해 12월14일 ‘부역자 1차 명단’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오늘날 공영언론을 이렇게 만든 가장 큰 책임은 자신의 대선 공약인 ‘공영언론 지배구조 개선’을 취임과 함께 내팽개친 박근혜에게 있음. 그리고 언론을 ‘대통령 심기불편 관리 대상’ 정도로 취급하며 온갖 탄압과 통제로 장악하려 한 김기춘과 김성우가 언론장악 컨트롤타워임. 이들의 지시를 받아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뉴라이트 인사들을 공영방송 이사회 이사와 이사장으로 선임한 최성준과 공안, 청부, 편파 심의로 언론자유를 가두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박효종은 기관장의 탈을 쓴 언론장악 대리인이라 할 수 있음. 고영주와 이인호는 공영방송 이사회라는 공적 영역에서 뉴라이트 사관과 가치관을 제한 없이 표출하며 공영방송을 청와대와 뉴라이트의 사유물이자 놀이터로 만들 수 있는 부역자를 사장으로 선임함. 고대영, 안광한, 배석규, 박노황, 백종문은 언론인 출신으로 자신들에게 부과된 사명과 공적 책임을 ‘사장 자리’와 맞바꿔 먹고 국정농단 주범 박근혜·최순실 체제에 모든 걸 다 바쳐 충성하고 부역함.”

언론노조가 3차에 걸쳐 발표한 ‘부역자 101명’ 가운데 지금까지 현직에서 사퇴한 사람은 YTN 사장 조준희 한 명밖에 없다. 6월 16일 현재까지 전·현직을 막론하고 이명박·박근혜에게 부역한 데 대해 국민과 언론인들을 향해 사죄하거나 반성한다고 말한 사람은 전혀 없다. 그러니 그들이 KBS와 MBC를 비롯한 공영언론의 경영과 관리·감독권을 아직도 독점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언론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한 언론노조 MBC 본부는 지난 5월 29일 ‘김장겸·고영주 퇴진! 우리의 힘으로 쫓아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뒤 6월 2일 오전 본사 앞 상암광장에서 ‘김장겸·고영주 퇴진 행동 / MBC 선언의 날’ 행사를 열었다. 그날 이후로 조합원들은 본관 로비에서 수시로 “김장겸과 고영주는 물러나라”고 외치고 있다.

KBS의 ‘양대 노조’는 지난 5월31일부터 6월5일까지 사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국내 근무자 4975명 가운데 3292명(투표율 66.2%)이 응답했는데, “현 상황에서 고대영 사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은 2896명(88%)이었다. “현 상황에서 이인호 이사장이 사퇴하거나 이사회가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90%가 동의했다. 이렇게 압도적 다수의 사원들이 사퇴를 요구하는 현실에서 사장과 이사장이 거대한 조직인 KBS를 더 이상 운영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 고대영 KBS 사장(왼쪽)과 김장겸 MBC 사장. 사진=ⓒ 연합뉴스, 이치열 기자
▲ 고대영 KBS 사장(왼쪽)과 김장겸 MBC 사장. 사진=ⓒ 연합뉴스, 이치열 기자
한국사회에는 여러 부류의 부역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면서 식민지배자들에게 빌붙어 개인적 ‘영달’을 누리던 자들과 그 후손들이 아직도 수구기득권층의 최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동아일보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한국사회를 ‘평화적으로 뒤흔든’ 촛불혁명은 현재진행 형이다. 촛불시민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부정과 부패, 반민주적 행위의 핵심적 ‘부역자’로 검찰과 언론을 꼽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검찰 개혁은 날이 갈수록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언론계는 요지부동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은 지난 12일 ‘웃지 못할 코미디’를 선보였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강효상이 의원총회에서 “어제 정우택 원내대표와 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의 관심과 격려하에 방송장악저지 투쟁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투쟁위 위원장을 맡았다는 그는 “원내에서 심재철, 박대출, 이우현, 주광덕, 김성태, 송희경, 민경욱 의원 등과 언론 출신 전직 의원, 변호사 출신의 많은 분들로 투쟁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의 부역자들이 지금도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이제 그것을 ‘저지’하겠다니 ‘형용 모순의 극치’라고나 할까?

온 세계의 찬사를 받은 한국의 ‘촛불혁명’은 미완성이다.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하나의 요소는 ‘부역자 청산’을 통해 언론계를 개혁하고 민주화하는 과업이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