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조명균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4년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삭제) 사건의 진상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됐다.

조명균 후보자는 이 사건의 당사자로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검찰로부터 징역 2년의 구형까지 받았지만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 모두 조 후보자에 무죄를 선고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만 보면 당시 박근혜 정권 초기의 국정원과 새누리당에 이어 검찰까지 나서서 기소한 사건이 실체 없는 사건이 돼 있는 상태다.

애초 이 사건은 18대 대선이 한창이던 2012년 10월 정문헌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에서 NLL 포기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대선 선거운동 유세 과정에서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도 대화록 발췌본을 읽는 등 선거용 의제로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뒤 국정원의 댓글 대선개입 사건이 검찰에 기소되자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정원 보유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추진했다. 결국 2013년 6월24일 국정원이 발췌본과 원본을 모두 공개했다. 문제는 대화록 어디에도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겠다는 발언이나 유사한 대목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자 이후부터는 회의록 폐기 쪽으로 국면이 바뀌었다. 국가기록원을 열람한 결과 회의록 최종본이 이관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여권은 이 사건을 ‘사초 실종’으로 규정, 회의록 폐기로 사건을 끌어갔다. 보수단체가 정상회담 대화록 증발사건 고발장을 제출하고,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서로 맞고발을 했다. 검찰은 국가기록원 압수수색까지 하면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결국 그해 11월1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조명균 후보자가 회의록을 삭제하고 대통령기록관(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았다며 조 후보자와 백종천 전 실장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의원 등 다른 참여정부 인사들은 기소하지 않았다.

이 재판의 쟁점은 두가지였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문서 초안(초본)을 삭제(폐기)한 것이 대통령기록물을 무단 파기한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인지, 공용전자기록물을 손상한 행위인지 등이다. 또한 재판의 쟁점은 아니지만 최종 완성된 회의록이 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았는지도 관심사였다.

▲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친 후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친 후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이원형 부장판사)는 지난 2015년 11월24일 조 후보자와 백 실장의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사건 선고공판에서 두 사람 모두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결재하지 않은 회의록은 대통령 기록물로 생산된 것이 아니며 최종 완성본 이전 단계의 초안이나 수정본을 삭제 또는 폐기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대통령기록물의 기준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e지원시스템상의 문서관리카드에 첨부된 회의록을 ‘열람’ 항목을 누른 순간 전자문서명 및 처리일자가 표시됐으므로 이는 보고가 이뤄진 것이고, 이 문서는 결재가 이뤄진 대통령기록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대통령기록물을 폐기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결재권자의 결재가 예정된 문서’의 경우에는 결재권자의 ‘결재’가 있을 때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되는 것인 반면, ‘보고’된 것만으로 ‘생산’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일이 첨부된 이 ‘문서관리카드’는 결재가 예정되어 있는 문서이므로 ‘결재’가 되어야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된다고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의 최종 결재가 이뤄지지 않은 문서관리카드와 첨부 문서파일이 대통령기록관으로 보존돼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관된 모든 문서가 대통령기록물인지 여부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 이관됐다고 볼 수 없다”며 “대통령기록물의 생산요건을 갖추지 않은 기록물도 역사적 가치에 의해 대통령기록관에 보존되는 점에 비춰보면, 이관됐다고 해서 다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문서관리카드에 대한 대통령의 결재 의미와 관련해 재판부는 “결재권자의 내심의 의사는 불가결한 요소”라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11월21일 오전 11시23분경 정상회담 회의록 파일이 첨부된 문서관리카드의 문서처리 항목 중 ‘열람’을 누르긴 했지만, 처리 의견란에는 “수고 많았습니다. 다만 내용을 한 번 더 다듬어 놓자는 뜻으로 재검토로 합니다”라고 기재하고, 11시56분경엔 회의록 파일의 내용을 수정‧보완해 e지원시스템에 탑재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보고서의견-남북정상녹취록.hwp’ 파일을 작성 첨부했다. 노 대통령이 열람을 눌렀으나 내심의 의사는 재검토를 한 것이므로 결재한 문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처리의견란에 별도의견이나 재검토 지시 등이 있는지 여부를 종합해 기록물 생산의사나 공문서 성립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열람, 시행, 재검토, 보류, 중단’의 어느 하나를 선택해 처리했다고 해 반드시 기록물로 생산하거나 공문서로 성립시킨다는 의사로 (처리)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재한 처리의견 및 첨부 파일의 내용은, 문서관리카드에 첨부된 회의록 파일을 다듬어 정확하고 완성도가 높은 대화록으로 정리하여 달라는 것으로, 문서관리카드와 첨부된 회의록 파일을 공문서로 승인하지 않는 취지임이 명백하다”며 “이 문서관리카드는 결재권자가 결재를 하지 아니한 이상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공용전자기록을 손상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삭제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일이 완성본 이전의 초본임이 명백하고, 수정보완된 회의록이 노 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며 “완성된 회의록을 폐기 또는 유출하려 했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이 회의록 파일은 더 이상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설령 조명균 후보자가 문서관리카드에 관한 정보를 삭제하였다고 해도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을 무효로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2008년 1월 생산) 표지. 사진=노컷뉴스
▲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2008년 1월 생산) 표지. 사진=노컷뉴스

다만, 남는 의문은 그렇다면 완성된 최종 완성본은 왜 이관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이 완성본은 국정원에 한 부 보관돼 있고, e지원시스템의 복제시스템인 ‘봉하 e지원시스템’에 한 부 있었다. 최종본 파일이 e지원시스템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지 않은 경위에 대해 판결문에는 분명하게 설명돼 있지는 않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 후보자가 2008년 1월2일까지 회의록을 완성한 다음 노 전 대통령에 보고해 승인받았다”며 “종이형태의 완성된 회의록 사본을 1월2일 국정원에 제공했고, 국정원은 이 사본을 바탕으로 자체 수정‧보완을 거쳐 최종 회의록을 작성한 다음 1월3일 이를 1급 비밀로 생산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조 후보자가 e지원시스템 구조상 ‘종료처리’를 선택해 문서관리카드를 등록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고 있다가 1월30일 ‘계속 검토’로 처리했다고 전했다. 

특히 재판부는 “2008년 2월14일 11시30분경 e지원시스템의 URL이 변경돼 로그인 화면이 아닌 ‘기록물관리시스템으로의 e지원 데이터 등 이관 작업 때문에 잠시 접속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임시화면으로 전환되면서 일반 이용자들은 e지원시스템으로 접속이 불가능한 일명 ‘셧다운(shut down)’ 상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오후 5시55분경 조 후보자가 e지원시스템에 접속해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수정 보고’ 제목의 메모보고를 작성해 노 전 대통령 수신으로 e지원시스템에 등재했다. e지원시스템의 데이터는그날부터 이튿날(2월15일)까지 복제시스템인 봉하 e지원시스템에 복사돼 2월18일 노 전 대통령 사저로 옮겨졌다고 재판부는 전했다.

앞서 이 사건의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동근 부장판사)도 2015년 2월6일 조 후보자와 백 실장의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

조명균 후보자 등이 최종 완성본 이전의 초본, 수정본 등을 삭제 또는 폐기한 것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 파일 내용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수정 보완을 지시했으므로 이 파일은 완성본이 아니다”라며 “녹음자료를 기초로 대화내용을 녹취한 자료의 경우 최종적인 완성본 이전 단계의 초본들은 (별도로) 사용될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완성된 회의록 파일과 혼동될 우려도 있으므로 폐기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공용전자기록의 손상이 아니라 정당한 권한에 의해 폐기된 것이라고 이 재판부는 밝혔다.

노무현재단은 1심 판결이 나온날 논평을 내어 “NLL 포기는 물론, 대화록 폐기도 없었다”며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전직 대통령의 헌신을 날조하고 왜곡해 정략적으로 활용한 행태가 ‘사실’로 확인됐다. 이제 심판은 정치검찰과 새누리당이 받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노무현재단은 “검찰은 정작 대화록을 불법 유출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던 새누리당 인사들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리거나 약식 기소로 처리했다”며 “검찰이 왜 정치검찰인지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사건은 검찰이 항소심 패소 후에 상고함에 따라 현재 대법원 2부에 배정돼 심리 중에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이 사건의 법리검토를 개시한 뒤 같은해 6월9일 오전 10시15분 최종 판결선고기일을 잡았으나 선고하지 않았다. 대법원2부는 지난해 12월23일 쟁점에 관한 재판부 논의중이라고만 밝혀놓은 상태이며, 아직 선고일자를 잡지 않은 상태이다. 

▲ 지난 2015년 2월6일 조명균 통일부장관 후보자와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혐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지난 2015년 2월6일 조명균 통일부장관 후보자와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혐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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